(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성도의 귀한 교제가 있게 하옵소서.
자격 없는 자,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진리를 보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2.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5.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6.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9.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10.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2.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본문 주해)
1~3절 : “훈계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지만, 책망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짐승같이 우둔하다.
선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지만, 악을 꾀하는 사람은 정죄를 받는다.
사람은 악행으로 터를 굳게 세울 수 없지만, 의인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새번역)
훈계와 징계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훈계와 징계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성경조차도 자기 취향대로 취사 선택하거나 왜곡되게 해석하고 적용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훈계와 징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은총을 받는 자이며, 지금 훈계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정죄를 받는 자이다.(2절)
‘악으로 세운다’(3절)는 것은 하나님의 훈계를 싫어하면서 살아온 모든 것, 즉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그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것으로 자신의 존재 기반을 삼은 것을 가리킨다. 이런 자는 굳게 서지 못하고 결국은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여호와의 훈계를 받아들이는 의인은 그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존재 기반은 자신의 삶의 철학이나 신념이 아니라,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의 말씀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4절 :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지만, 욕을 끼치는 아내는 남편의 뼛속을 썩게 한다.”(새번역)
갑자기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호와의 교훈을 받는 자 또는 그렇지 않는 자의 맥락으로 보면,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들으면 여호와의 영광이 되지만,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썩게 하는 것이다.
5~6절 : “의인의 생각은 곧지만, 악인의 궁리는 속임수뿐이다.
악인이 하는 말은 피 흘릴 음모뿐이지만, 정직한 사람의 말은 사람을 구하여 낸다”(새번역)
사람들이 정직한 자의 말보다 악인의 말에 잘 속는 것은 그것이 언제나 달콤한 유혹으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한다.
그런데 인간의 육신적인 본성들은 정직한 자의 말보다 악인의 말에 솔깃하기 마련이다.
7~8절 : “악인은 쓰러져서 사라지지만,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서 있다.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지만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멸시를 받는다.”(새번역)
악인이 아무리 세상에서 형통하게 보여도 결국은 엎드려져 소멸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인은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만 의인은 무너지지 아니할 그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결국 칭찬을 받는 자와 멸시를 받는 자로 결론 내려진다.
칭찬을 받는 자는 그 지혜를 따라 산 자들이다.
그러나 마음이 굽은 자는 지혜의 말씀도 굽게 보기에 그 결국이 멸시를 받는 것이다.
9절 : “업신여김을 받더라도 종을 부리는 사람은, 스스로 높은 체하면서 먹을 빵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새번역)
실상을 버리고 허상을 추구하는 자들, 겉으로 외식하고 꾸미는 자들에 대해 비꼬는 말이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2:9)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환난과 궁핍을 당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는 실상은 부요한 자인 것이다. 이들은 핍박하고 비방하는 유대인들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신다.
실상과 허상을 구별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이다.
10절 : “의인은 집짐승의 생명도 돌보아 주지만, 악인은 자비를 베푼다고 하여도 잔인하다.”(새번역)
하나님께서 긍휼의 많으심을 보이시기 위하여 안식일에 짐승도 쉬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의인이라면 가축의 생명도 돌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육되는 가축들은 인간의 탐심으로 인하여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당하고 있다.
11절 : “밭을 가는 사람은 먹을 것이 넉넉하지만, 헛된 것을 꿈꾸는 사람은 지각이 없다.”(새번역)
단순히 부지런하게 일할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 아니라, 생명에 관한 부지런함과 게으름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더 풍성하게 하신다. 생명의 풍성함을 받아 누리는 자는 시편 1편의 말씀대로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마르지 않고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12절 : “악인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만,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는다.”(새번역)
불의로 이익을 탐하는 자들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한다. 불한당은 땀을 흘리지 않고 이익을 가로채는 자들을 말한다.
타락한 이후의 인생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땀을 흘리지 않고 먹고 살려고 하는 자들이 많기에 세상은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한다.
의인의 뿌리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린다.
13절 : “악인은 입술을 잘못 놀려 덫에 걸리지만, 의인은 재난에서 벗어난다.”(새번역)
악인은 진리에 속하지 않기에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이것이 그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리는 것이다.
진리에 속하지 않는 자는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말하게 되고, 이것이 곧 거짓인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자기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진리를 말한다.
이런 자들은 물론 이 세상에서는 진리를 말함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영원한 환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14절 : “사람은 열매 맺는 말을 하여 좋은 것을 넉넉하게 얻으며, 자기가 손수 일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새번역)
“입술을 잘 열면 좋은 것으로 배부르고, 반드시 자기 손이 행하는 대로 보상을 받는다.”(쉬운 성경)
바른 진리를 전하는 것이 영원한 복록을 누리는 것이다.
손이 행하는 대로 보상을 받는다는 것도 그 입의 열매대로 받는다는 의미와 같다.
그 입의 말이 거짓된 것이라면 결국 헛된 것을 받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15절 :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행실만이 옳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새번역)
미련한 자는 자기의 행위가 옳다고 여기기에 어떠한 바른 말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는다는 것은 자기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자의 권고를 받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16절 : “미련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모욕을 참는다.”(새번역)
미련한 자는 당장의 분노를 말이나 행동으로 쏟아낸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 지혜로운 자(슬기로운 자)는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기에 그러한 수욕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묵상)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1절)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주님께 훈계받고 책망받기 위함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훈계받거나 책망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내가 절대 사함 받지 못할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런 나를 구속하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그분의 훈계와 책망은 분명 나를 살리는 것이요, 또한 양약이니 기꺼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내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임을 알게 되니 더더욱 변명하거나 게으름을 피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나아가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이미 구원받은 존재이긴 하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전히 죄의 세력이 나를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말씀 앞에 나아가 고백할 때 주님은 다시 정결한 주님의 옷으로 갈아입혀 주시니 어찌 이 훈계와 책망이 아프기만 할까? 지지리 못난 나를 볼 때 분명 아픔으로 시작했지만, 주님은 기쁨의 새 마음으로 단장시켜 주신다.
어제도 아침에는 기쁨으로 말씀 묵상을 했지만, 밤이 늦어서는 사람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았다.
공이로 찧어도 벗겨지지 않는 이 어리석음을 주님 앞에 고백하며, 나는 역시 주님 없이는 한 시도 반듯하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뿐이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님을 찾는 것은 나로 하여금 짐승같이 우둔한 존재로 살아가지 않도록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짐승처럼 살아갔을 나를 주님의 신부로 삼아주시고, 오늘도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주시는 나의 주님께 무한한 사랑의 마음을 올려드린다.
(묵상 기도)
주님,
훈계와 징계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니 이것이 은혜받은 증거입니다.
이 훈계와 징계가 아프지만
저를 깨끗하게 하시고, 강건케 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