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니 담을 넘어갔나 봅니다
정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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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평소 안면이 있는 갈비 가게 사모님이 집 월세를 구해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가구가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하신다. 줄자를 가지고 가서 재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신다. / 근데 마침 그 손님이 하던 가게가 며칠 전 철거하던 게 생각났다. 얼른 그 사모님께 전화하여 가게 임대인 연락처를 알아냈다. / A4 용지 절반 크기로 임대문의와 내 전화번호를 넣고 붙이러 갔다. / 근데 우리 건물에 같이 있는 부동산 연락처가 먼저 붙여져 있는 게 보였다. 나도 그 상가 임대를 놓고 싶었다. / 그 부동산은 그 건물 맥주 가게며 이동통신 대리점까지 세를 놓곤 했다. 우리 부동산에서는 한 개도 못 맞추어 나도 세를 맞추고 싶었다. 임대인에게 전화했더니 나에게도 손님을 맞추어 보라고 하신다. / 인터넷에 올리는 것보다는 빈 그 상가에 직접 써 붙이는 게 더 빨리 세를 놓을 것 같았다. 옆 부동산에서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붙이고 왔다. // 한 30분이 흘렀을까. 따르릉 전화가 왔다. 바로 옆 부동산이었다. 왜 우리 전화번호를 붙여 놨냐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임대인 허락 하에 붙여 놓았다고 하니 임대인이 자기네 부동산에게만 의뢰했다는 것이다.
“그럼 제 것 떼어 놓겠어요.” 하고 힘없는 어조로 전화를 끊었다./ 영 맘이 편치 않았다./ 잠시 후 그 빈 상가로 가 보니 이미 내가 붙인 종이는 없어진 후였다./ 밥을 먹어도 돌을 씹는 듯하고 맘이 영 불편했다. 옆 사무실로 가서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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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어나 보니 옆 부동산에서 실망스럽다는 장문의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배고프니 담을 넘어갔나 봅니다.” 하고 답장을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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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문학 39호, 342~345 페이지. 2022년)
[작가소개]
정영자 『지필문학』수필 등단(2015). 김포문인협회 회원. 서곶문화예술제 인천 서구 구민 백일장 산문 장원 수상(2012), 동 예술제 인천 서구 구민 백일장 산문 은상 수상(2014).
[시향]
이글은 공인중개사인 정영자 수필가의 수필 <배고프니 담을 넘어갔나 봅니다>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부동산 중개법에 상도의에 관한 사항의 유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현행 중개법과 명문화하지 않은 상도덕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서로 협조하며 사는 사회야말로 가장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이미 공실이 된 가게 임대인은 조급한 마음에 여기저기에 임대를 의뢰하게 된다 그 중 경제 사정이 어려운 중개사는 한 건의 계약이라도 체결하고 싶지만, 어딜 가나 모리간상배(謀利奸商輩) 같은 사람이 있어, 명문화하지 않았음에도 임대인의 의뢰를 독점하는 경우가 있다 임대인으로부터 중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음에도, 먼저 중개 의뢰를 받은 사업자의 방해 전화를 받음으로써, 중개할 수 없게 된 작가는 텅 빈 상가 창에 붙였던 연락처를 스스로 떼어내기로 한다 얼마 후 가게에 가 보니 자신이 붙여놓았던 쪽지는 떼어지고 없었다 씁쓸했지만 법을 떠나 동종 업계로부터 받게 될 비난과 낙인이 무서워 오히려 찾아가 사과했음에도, 다음날 ‘실망스럽다’는 장문의 문자를 받는다
‘배고프니 담을 넘어갔나 봅니다’ 라고 답을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왠지 자꾸만 씁쓸하다
글 : 박정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