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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한인 모임- 두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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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야기(중국한국)&문답 스크랩 북경 지하 방공호
김봉선 추천 0 조회 161 07.04.16 14: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북경 시내의 지하 방공호

           北京地下城(北京地下長城)

 

 

제대로 읽지도(看不懂)못하는 주제에 이런 저런 정보 혹시 무엇 하나라도 얻어볼까 하는 생각에 작년 그러니까 06년 10월부터 新京報라는 북경일간지를 받아보고 있다. 그때 마침 신문배달원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고, 이 친구가 지금 구독료를 할인하는 행사기간이라고 보채는 통에 그냥 못이기는 척하고 받아들여 보게 된 것이다. 신문구독료는 가판대에서 사는 것이나 일년 구독하는 것이랑 값은 똑 같다. 모두 한 부당 1원씩이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통에 눈으로 보는 것은 그나마 아는 한자가 나오면 대강 그 뜻을 헤아려보고 이해를 한다. 더러는 맘 먹고 앉아 사전 찾아가면 한 줄 한 줄 더듬어 보기도 하고.

 

 그 신경보에 일주일에 3회정도 '北京地理' 라는 코너가 있다. 이 지면은 북경 근교의 여러 지역을 두면에 걸쳐 소개한다. 대부분 북경 근교로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그 중에 지난주(4월 9-13일) 사이에 '探究北京地下空間體系' 라는 시리즈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八里庄地道網이었고 그 다음 호에는 大柵欄地道網이었다. 그 두 번째가 바로 북경지하성이라고 불리는 방공호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 전에 일부 카페에서 소개한 것을 보곤 했다. 그래서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신문에 소개되면서 이번에 가보자 하고 맘먹고 일요일 가방을 메고 나선 것이다.

 4월 15일 일요일 날은 대체로 맑은 편이다. 집 앞에서 623번 버스를 타고 동직문에서 내려 지하철 2호선을 갈아탄다. 前門역으로 향한다. 치앤먼 역에 내리니 바로 천안문 광장 남측이다. 正陽門 두 개가 바로 보인다. 치앤면 역 출구 C로 나선다. A와 B 출구는 공사중이라 막혀있다.

 출구로 나서니 바로 前門大街가 나온다. 내가 알아본 자료상으로는 이 길을 통해 북경지하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큰 대로는 양 옆으로 공사중이다. 온통 가림막을 해놓고 공사중이라 제대로 감상을 할 수가 없다. 그 공사판 뒤로 시장도 형성이 되어 있고 사람들로 붐빈다. 길 입구에 前門大街라는 큰 대문으로 길을 알리고 있다 그 아래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보니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광고판에 작게 붙인 실크시장이라는 안내판이다. 이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보니 길이 약 20M정도의 실크의류 시장이 있다. 난 꽤나 큰 시장이려니 하고 들어갔는데, 아니다. 그저 한 골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장을 다시 돌아나와 작은 골목이 있어 들어가니, 이번엔 동인당 약방이 있다는 표시가 나온다. 이 역시 큰 길을 뒤로한 골목길이다. 안경, 신발, 의류 등 갖가지 흔히 볼 수 있는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골목길 시장이다. 작은 콘크리트 대문이 하나 서 있는데 이름하여 珠寶市이다. 여기 역시 갖가지 상품들을 진열하고 판매한다. 이 골목길이 大柵欄商業街로 가는 길목인 셈이다.  大柵欄商業街는 제법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동인당 약방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瑞趺祥이라는 유명한 비단가게도 있었다. 신발가게, 비단상품 가게, 차가게 등등 여러 항목의 상가들이 즐비하게 있다. 난 그냥 점포를 들어가보진 않고 그냥 겉에서 간판만 보고 만다. 오늘 목적은 이곳이 아니기에. 계속 내가 찾는 북경지하성을 가기위해 가져간 신문스크랩도 보고 소개글도 보고 눈을 두리번 두리번 한다. 조금 가다보니 천진의 꼬우부리 만두집도 보인다. 이어서 그 옆에는 찻집도 또 차주전자를 파는 즉 紫紗壺를 파는 점포가 있다. 가게 이름은 이게 아닌데, 그 가게내의 물건은 온통 찻잔과 차주전자이다. 말로는 크게 오늘 하루만 판매한단다. 내일은 문을 닫는다고. 개당 10원하는 것에서부터 360원까지 하는 가격이 있다. 세트로 파는 것도 낱개로 파는 것도 있다. 이곳에 들어가 가만 살펴본다. 그리곤 紫紗壺 3개를 고른다. 그러면서 북경지하성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잘 모른단다. 결국 입구쪽으로 나가 물어보라고 한다. 비닐주머니에 준 물건을 들고 다시 나온다. 그리곤 입구로 나와 어떤 여관주인에게 물어보니 모른단다. 아니 “없다”고 한다. 이런?

 

 

<북경지하성 입구>

 

 

<지하 터널내의 화보들>-모택동과 손문

 

 

터널 입구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터널 표시도

 

 

 

다시 따자이란 상가로 와서 이번엔 경찰아저씨에게 물어본다. 그러니 이 양반은 치앤먼따지에로 나가서 왼쪽으로 가란다. 내가 찾아가는 주소는 西大磨胡同62호이다. 큰길로 나와 다시 경찰차가 서 있길래 물어본다. 그러니 다시 50m를 가 오른쪽으로 꺽어지란다.

 

암만 봐도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온통 주변이 공사중이라서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 그래도 길 찾는데는 내가 선수인데 말이다.

 

 두 번째 경관의 말대로 50여 미터를 지나서 우회전을 한다. 우회전 하기전 바로 코 앞이 내가 지하철역에서 내린 그 앞이다. 좌우로 공사장인 사이를 지나니, 내가 찾던 주소가 나온다. 西大磨廠282호로 나온다. 치앤먼따지에서 동쪽으로 난 길이 이 길인 모양이다. 계속 나아간다. 그러니 조금 앞에 잘 장식된 담벼락이 나온다. 이 담벽이 前門東側路이다. 양 편의 담벽에 글도 있고 그림도 새겨져 있다. 그 동측로를 건너 작은 골목길을 계속 나아간다. 번지수가 점점 줄어든다. 다시 조금 걷다가 폐품 모으는 아저씨가 있어 물어본다. 그러니 계속 나아가란다. 그래 나아가보자. 길 양 옆은 폐허이다. 마구 허물어진 주택들이 즐비하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건물들도 낡고 오래되어 보인다. 아무래도 이 지역이 재개발지역인 모양이다. 마구 헐어진 것도 아직은 손도 대지 않은 상태이다. 한 블록 너머는 천안문 광장이고 번화가인데, 그 이면에는 이렇게 도심속의 낡은 곳이었다. 공군 초대소도 있고 또 다른 해방군 초대소도 있다. 또 旅館간판을 단 건물들이 많다. 아까 따자이란 골목에도 이런 저런 작은 여관들이 많이 눈에 띄었었다. 아무래도 이 지역이 여관 밀집지역이었나 보다. 그 이유를 잘 모르지만.

 

 전문동측로를 지나 약 15분 정도 두리번 두리번 이곳 저곳을 살피면서 걸으니 과연 내가 찾던 바로 그것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 간판도 초라하고 그 이정표도 없다. 다른 곳은 간단한 이정표며 푯말들이 즐비한데, 이곳은 아무런 표시도 없다. 저 멀리 입구에서도 북경지하성과 관련된 실마리를 하나도 없었다. 그저 달랑 번지수 하나 가지고 찾아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기 전에는 정말 숨박꼭질 하는 것 같다.

 

 허름한 대문에, 간판도 어느새 색이 바래 낡았다. 그 옆 건물은 北京辰宇實業總公司건물이다. 이 이름외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붙어 있는 다목적 건물인가보다. 2층 흰타일 건물인데, 그 벽에 북경지하성이라고 붙인 표지가 오래되어 일어나 있었다. 사찰의 일주문처럼 처마를 만든 기와지붕 아래 북경지하성이라고 흰색으로 간판을 달았다. 그 아래는 작은 돌사자 두 마리가 좌우로 버티고 있다. 아마도 개방하면서 만든 것으로 짐작이 된다. 정말 각고 끝에 찾은 것이다.

 

 출입문은 작은 유리가 끼어진 문으로 좌우로 반씩 나누어져 있어 밀고 들어간다. 들어가니 표 파는 곳도 따로 없다. 우리 예비군 복 같은 얼룩무늬 입은 아주머니 그리고 아가씨 또 청년이 서넛이 있다. 이들이 좌우로 앉아 있다. 한쪽에 작은 캐비넷이 있고 그 옆에 바구니에는 패찰이 가득 있다. 아마 단체관람객이 오면 달아주는 것인 모양이다. 난 표값이 얼마냐고 묻는다. 20원이라고 한다. 20원인줄 알고 갔지만, 그래도 한 번 물어본 것이리라. 달랑 20원 받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표가 없냐”고 하니. 한 아가씨가 탁상달력 뒤에서 한 번 사용한 표를 준다. 그냥 기념삼아 받아 든다. 그러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다시 “중국말 하냐”고 묻는다. 늘상 대답하듯이 “그저 조금 한다.”고 대답한다.

 

 <터널 시작하는 곳-북경지하장성이라고 씌여져 있다. 지금은 모주석 작은 동상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앞에>

 

 

 

 표를 사고 내려가는 입구

 

 

전시물

 

막 계단을 내려간 입구-여기서부터 터널 여행 시작

 

 

 

 

이곳은 단체관람객이든 개인 관람객이든 반드시 이곳 직원 가이드가 한사람씩 따라 붙는다.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내가보기에는 설명이라

보다는 개인적으로 들어가서는 길을 잃어버릴까 하는 걱정도 있고 또 내부에서는 사진을 못찍게 되어 있어 사진을 찍는 것도 방지하는 차원인 듯싶다. 내 생각엔 후자보다는 아무래도 미아가 될까 그러는 것 같았다. 물론 방공호 설명도 덤으로 해주니 고맙지.

 

 작은 계단을 내려가니 바로 입구가 나온다. 모택동이 사진 액자가 있고 왼쪽엔 흰 돌의 모택동 전신상이 있다. 그 위엔 ‘北京地下長城’ 이라고 빛바랜 액자가 있다. 이곳부터 ‘북경지하성’ 즉 옛날 방공호(防空洞)이다. 1969년부터 파기 시작하여 1979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자그마치 10년 동안 판 방공호란다. 나를 따른 아가씨가 자세히도 설명을 한다. 그러나 난 반정도만 그저 알아듣는다. 그리곤 알아듣는 것처럼 “응” 하고 대꾸를 하고 머리를 끄덕인다. 이곳 입구는 지면 폭이 5m는 되어 보인다. 바닥도 매끄럽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바닥은 즉 관람통로는 대부분 바닥에 빨간 카펫을 깔아놓았다. 물이 나오는 곳도 마찬가지고. 이 지하터널은 폭이 5m가 되는 곳과 또 약 2m가 되는 곳으로 구분이 되었다. 큰 폭은 성인 5명이 옆으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너비이고 작은 곳은 3명이 옆으로 서서 걸을 수 있는 폭이다. 터널의 양 옆과 지붕은 현재 개방된 곳은 말끔하게 벽을 바른 탓인지 처음 터널 같지 않다.

 

 천정에는 등을 달아 터널 안은 매우 밝은 편이다. 그리고 양 옆 벽에는 각종 사진과 포스터 들이 부착되어 있다. 각 나라의 전투기, 탱크 등 무기 사진이 액자로 장식되어 매달려 있기도 하고, 모택동, 유소기, 주덕 등 중국 혁명 1세대들의 사진도 걸려 있으며, 터널 작업을 형상화한 포스터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터널 내부가 습한 탓인지 그림이며 사진 등은 구석구석 습기가 먹어 바래거나 망가진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터널 내부는 서늘한 기운이 있었다. 아마 여름에는 제법 시원한 피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 통로는 5m의 폭을 유지했고 주 통로에서 갈라지는 간선 굴들은 대부분 2m 정도의 폭을 유지하고 있었다. 터널의 일부만 관람객에게 개방이 되어 있는지라, 군데군데 막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공적으로 폐쇄시킨 모습이었다.

 

 입구를 조금 들어가자 바로 터널 내부 표지판이 나온다. 너털 내부지도인 셈이다. 터널 안에는 민병지휘부, 병원, 영화관,  노년활동구역, 탄약고, 전시도서관, 피난구, 방화학무기고, 저장고, 戰備醫院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각 명칭이 있는 곳은 그 터널입구만 보여주고 있었고 모두 폐쇄되어 있어 볼 수가 없었다. 각 팻말만 그 앞에 붙어 있었다.

 

 가이드 아가씨의 말을 빌리면, 이 지하방공호는 천진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글쎄, 북경서 천진까지의 거리가 얼마인데,,, 그런데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60년말 맘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니까. 들리는 말에는 이 지하 방공호를 만들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터널 내부>

 

 

 

 

 

 

 

 

 

 

 

중간의 영화관에서는 바로 천안문 광장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또 전비의원에서는 장성과 자금성 즉 고궁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 탄약고는 각종 탄약류를 보관하는 곳인데 이곳은 바로 지상에서 탄약을 보급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탄약고 오른쪽에는 戰時圖書館이 있었고 이 전시도서관 맞은편으로는 피난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터널 내에서도 밖으로 피난할 수 있는 대피구를 만들어 놓은 셈이었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을 도는데 중간 중간 통로의 바닥에는 물기가 제법 있었다. 이곳 터널에는 지하수가 풍부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천정에서는 물이 계속 떨어지는 곳도 있었다. 老年活動站이 있는데, 이곳은 방공호 내에서 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특별한 구역이었다. 이곳 벽 입구에는 ‘01-8001⇒’ 라고 씌여진 글씨가 보였다. 가이드 아가씨에게 내게 묻는다. “ 이 터널 안에서 동, 서, 남, 북을 구분할 수 있겠느냐?”고, 난,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 글씨가 방위를 알 수 있는 표시라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여기서 표시하는 ‘01’은 남쪽을 나타내고, ‘8001’은 지상의 天壇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터널 내에서 동, 서, 남, 북을 숫자표시로 알 수 있었고, 또 천단위 번호로 각 터널의 방향을 지상의 특정지역을 알 수 있게끔 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이 터널 안에서는 감히 방향을 잃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치밀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전시상황에서 약 30만명이 이 터널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는데,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계산을 하고 설계를 했겠지.

 

 또 요즘말로 하면 화생방무기고이다. 이 곳은 방화문으로 두 겹의 돌문이 있었다. 두께가 약 15-18cm 정도는 되어 보였다. 돌이라기보다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정말 손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문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손잡이도 세월의 흐름을 아는지 무쇠로 된 것이 녹이 슬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의 안쪽에는 벽면과 압착이 될 수 있도록 고무로 둘레를 쳐서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독가스며, 기타 화생방전에서 생겨나는 것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를 시킬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이 방화학무기고에서는 바로 왕푸징으로 향할 수 있다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말 그대로 이 방공호에서는 사통팔달로 어느 곳으로든 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방공호의 깊이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8m이고 가장 깊은 곳은 12m 정도 된다고 한다.

 

<터널 벽에 걸린 10대 원사 사진중 일부>

 

 

<군사용품 들> 

 

 

<이전의 전문공예예술복무부 현판> 

 

 

 

 

 

<또 다른 터널 내부> 

 

 

 

 

 

 

 

 

전비의원 입구에는 천정에서 지름이 약 8cm정도 되는 고무호스가 내려와 있었다. 가이드 아가씨가 내게 다시 묻는다. “이것이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알겠는가?”하고 내 딴에는 생각해서 ‘공기흡입구’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니 “뿌 뚜이“한다. 이것은 지상과의 대화할 수 있는 기구란다. 내부가 뚫린 호스이다보니 말을 하면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전달이 되는 것이었다. 비록 아주 단순한 수단이긴 하지만, 지상과 지하를 통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장애없이 말이다.

 

 지하공기를 순환시켜주는 排風口도 제법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펑 뚫린 천정으로 내부 공기와 외부공기가 순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통풍구가 이 터널내에 2300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하다.

 

 儲備庫(저장고)에는 전시시 이 터널에서 사용한 각종 물품을 비축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또한 병원 앞에는 흰마대자루가 제법 쌓여 있길래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담요 및 이불 등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사용할 물품인 모양이다.

 

 가이드의 안내로 가장 마지막에 이른 곳이 이 터널내에 제법 넓은광장이다. 이곳은 실크전시장 및 판매장이었다. 각종 실크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불 및 의류 그리고 실크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고 있었고 그 뒤로 화장실이 있었다. 나 말고도 일부 관광객들이 이 매장에서 상품을 보고 고르고 있었다.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내국인은 없었다. 가이드 그리고 판매원 말고는. 이 매장에서도 역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가이드가 한 번 살펴보라고 하면서 잠깐 개인시간을 준다. 한 매장 쪽에서 보니 화장실 표시가 나타난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화장실을 가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카메라를 꺼내 지하 방공호의 화장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매장도 어찌 몰래 한 장 찍어볼까 했는데 상황이 내게 좋지 않아 그만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지하성 현판> 

 

 

<탄약고, 영화관, 전비의원, 전지도서관 팻말> 

 

 

<터널 벽을 장식한 문자와 화보들> 

 

 

 

 

 

 

 

 <남자 화장실>

 

 <화장실  앞>

 

 <실크매장에서 화장실 가는 통로>

 

 

 

 

 


Ѡ 가는 방법

 나의 경우 지하철 2호선을 탄다. 지하철 2호선 前門역에서 내린다. 지금은 공사중이라 A, B 출구가 폐쇄되었다.

 C출구로 나가서 정양문을 돌아 동쪽으로 나간다. 그러면 앞에 國人宾馆이 나온다. 이 건물을 왼쪽으로 놓고 남쪽을 향해 서면 바로 앞이 前門東側路이다. 이 도로를 약 50여 미터 가면 왼쪽으로 작은 골목길을 볼 수 있다. 이 길이 西大磨厂街이다. 이 좁은 골목길을 약 10여분 동쪽으로 계속 가야 한다. 가다보면 前門楓園宾馆이 오른쪽에 나타난다. 이 빈관을 지나 더 가야 한다. 이 길은 양쪽으로 무너지고 부서진 집들이 여럿 보인다. 아무래도 아직은 덜 정비가 된 거리이다. 10여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에 하얀 타일로 겉면이 된 2층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아래가 바로 북경지하성 입구이다. 생각 없이 가다보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니 자세히 양 옆의 건물들 번지수를 확인하면서 가야한다. 이곳 번지수가 62호니 잘 살피고 가야한다. 발품을 파는 것이 문제지 생각처럼 찾기 어려운 곳은 아니다.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을 알려주는 아무런 단서도 없다는 것이 불편한 점이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주변 사람들이나 좀 알려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경지하성이라는 것 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니 근처가 아닌 다른 곳에서 물어보면 아마 "不知道"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것이다.

 

Ѡ 입장료

 개인 20원, 단체인 경우 10원, 학생(학생증 소유시) 10원

 

Ѡ 내부 사진촬영 금지

 

Ѡ 입장시 개인이든 단체든 안내원이 수행하면서 설명을 해 준다.

 

 

<막 시작하는 터널 입구 - 출구에서 찍은 모습>

 

 

 <막 떠날때 가이드 아가씨가 찍어준 내 사진>

 

 <북경 지하성이 입구가 있는 건물>

 

 <북경지하성 현판>

 

 <벽에 붙인 글씨가 낡아 떨어지려고>

 

 <북경지하성 건물의 열 공사>

 

 <서따모창지에- 북경지하성 앞 길>

 

 <북경지하성 맞은편 세탁소>

 

 

 

 

 

 

 

 

 

 

 

 

 

 

 

 <초대소 앞의 옛 오토바이>

 

 

 

Ӝ 자료 2>

인터넷에서 찾아본 북경지하성 관련 글


毫不起眼的门脸

  北京地下城的前身是人防工事,始建于1969年。地下城工程,历时十年,于1979年完工。分为三个防御工事小区,并通往市区的四面八方,形成了初具规模的防空地道网。

 

  出于备战考虑,北京从1969年开始在前门地区修建防空洞,当时住在附近的男女老少齐上阵,在不借助机械的情况下于1979年修建挖成了这个巨大的防空洞。地下城距地面八米,最深处可达十几米,宽两米,全长三十余公里,可容纳三十余万人。因工程量巨大,设施齐全,被称为“地下城”。

 

  地下城有近七十处被鉴定拥有丰富的地下水,在需要时,只要往下挖数米,便可取得源源不绝的地下水。城内两千三百个特别设计的通风孔,可以源源不绝把新鲜的空气输入地下城。地下城中,也设有电影院、理发室等等,每座电影院每次可以容纳三百人。四通八达的地下通道,可以直通行政中心、紫禁城、天安门和火车站。

每个通道交汇处都有的储藏室,有弹药库、军需库、电影院等

  地下城1980年利用人防工事的一部分空间开办了前门工艺美术服务部,经营文房四宝,珐琅玉器、珠宝首饰、名人字画,旅游药材和其它各种工艺品,同时开设了中医咨询、图章刻印等服务项目。现在该服务部已经无处可寻,地下城目前内设丝绸加工厂。

 

  地下长城比河北冉庄地道战的地道要大一倍,高2.5米,最窄的地方能容3个人并排行走,最宽的地方能容下5个人,有的地方甚至可以通过一辆吉普车。此外,地下长城顶部每隔5米就有一个节能灯。地下长城的每个通道交汇处都有一个约十平方米的“储藏室”,被命名为“弹药库”、“军需库”、“战备医院”等。

由于地下城的很多出口都因地上建筑物被封住,目前的两个出口分别在前门西打磨厂胡同和天坛公园。开放的大约是一公里左右的长度,大概的范围东西分别到达崇文门和前门地铁,南到天坛附近。在地下城里,甬道四通八达,很多线路并未开放,地下长城的地面上铺着红色的防滑毯,只要沿着红色防滑毯走,就不会迷路。

 

  北京地下长城从1980年开始成为涉外旅游景点,但由于当时的北京市民大多数都参加过修建,所以很少有市民会去参观,久而久之形成了地下城只接待“外宾”的习惯。


王经理说,多年来地下城并不是没有做过宣传,电视及报纸都有报道。地下城也没有拒绝北京游客参观,只是出于安全考虑,如非旅行团游客或国外散客,国内的散客可以持单位或街道出示的介绍信电话预约参观。地下城曾经出现过多次游客不听劝导私自乱穿隧道迷路的情况,为此也曾开除过导游。

现在地下城接待团客免费,散客门票每张20元,预约电话为:67022657
具体位置:拐进前门大街大北照相馆旁的胡同步行25分钟,西大么胡同62号

  

跟着红地毯走不会迷路
  从地下城的入口拾阶而下,虽然整个参观通道都铺设了电灯和防潮的红毯,但是强烈的湿气和霉味依旧让记者全身一紧。为了保护城墙,参观路线的墙上都蒙上了一层迷彩图案的布围,而红毯则是为了给游客指引正确的路线。

  地下城内可打手机
  记者看到,墙上除了铺设的电线,还悬挂着一些白色装置,导游告诉我们那是近年来陆续安装的中国移动和联通的手机信号接收装置,在“城”里就能接打手机。话音未落,记者的手机突然响起,记者顺利接到来自报社的电话,通话声音很清晰。
  目前城内的6名解说员可以用中文、英文、韩文、广东话4种语言进行解说。

  沿途装饰画多为仿制品
  地下城沿途都悬挂着各种仿制的历史图片,入口转角处的毛主席头像格外显眼。此外,还有一些记录新中国重大历史事件的老照片被放大悬挂;为了逼真,墙上还有仿制当年地下城里教授地下防空知识的解说图片。只有出口附近墙壁上工农兵挥锹劳动的浮雕画和口号标语还是当年的原物原样。地上摆放着挖掘时群众使用过的搪瓷碗、杯和铁锹,经过地下漫长的岁月已经裹满了泥土。记者拐到一个有布帘的洞口,掀开布帘,里面伸手不见五指,布帘上的尘土却落了一身。

  开放区只是地下空间一部份
  在参观途中,记者终于见到了传说中藏有武器的库房,门口悬挂着“弹药库”的牌子,记者询问里面是否真的藏有弹药,王经理解释说:“那不过是吸引游人的噱头。”那么地下城又真的可以通到北京各地吗?王经理笑言,地下城的确可以通往地铁1号线和2号线,但是除了供参观的一个进出口,其他进出口均已封死。传说中的电影院、图书室、战地医院在地下城里只有一个标牌,曾经通往那些功能区的通道已被封闭。

  看到报纸才知城有多大
  王经理告诉记者,他们没有确切测量过地下城的面积、长度等数据。是在看过报纸以后才知道的,地下城距地面八米,最深处可达十几米,高约三米,宽两米,全长三十余公里,可容纳三十余万人。

  丝绸厂地上十米是小学操场
  记者在上百平方米的地下城大厅里看到了旅游网上所说的丝绸加工厂,据介绍,大厅的正上方就是同乐小学的操场。大厅里有蚕丝加工表演,丝巾、丝绸衣服、箱包琳琅满目,所有这些丝绸制品都是为了吸引国外游客而引进的。大厅里还有一小块地方出售毛主席像章、军用挎包等这种时代印记鲜明的商品。

 具体位置:西大么胡同62号

 

 跟着红地毯走不会迷路
  从地下城的入口拾阶而下,虽然整个参观通道都铺设了电灯和防潮的红毯,但是强烈的湿气和霉味依旧让记者全身一紧。为了保护城墙,参观路线的墙上都蒙上了一层迷彩图案的布围,而红毯则是为了给游客指引正确的路线。

  地下城内可打手机
  记者看到,墙上除了铺设的电线,还悬挂着一些白色装置,导游告诉我们那是近年来陆续安装的中国移动和联通的手机信号接收装置,在“城”里就能接打手机。话音未落,记者的手机突然响起,记者顺利接到来自报社的电话,通话声音很清晰。
  目前城内的6名解说员可以用中文、英文、韩文、广东话4种语言进行解说。

  沿途装饰画多为仿制品
  地下城沿途都悬挂着各种仿制的历史图片,入口转角处的毛主席头像格外显眼。此外,还有一些记录新中国重大历史事件的老照片被放大悬挂;为了逼真,墙上还有仿制当年地下城里教授地下防空知识的解说图片。只有出口附近墙壁上工农兵挥锹劳动的浮雕画和口号标语还是当年的原物原样。地上摆放着挖掘时群众使用过的搪瓷碗、杯和铁锹,经过地下漫长的岁月已经裹满了

块地方出售毛主席像章、军用挎包等这种时代印记鲜明的商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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