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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트레킹 (2020.8.12.~13, 1박2일) 원주 미륵산 + 오크밸리 + 출렁다리 + 시원한 계곡....
▶미륵산 산행 (2020.8.12.수) ▷산행코스 황산사 → 3층석탑 → 마애불 → 미륵봉 → 바위지대 → 미륵산 정상(695.6m) → 새터고개 (3시간)
기나긴 8월 장마.... 직장 동기모임 8월 1박2일 피서 계획을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지만 8월12일 여행 출발하는 이날 기상 예보는 오전 흐림 오후 비가 내린다는 기상 예보...
계속된 장맛비에 첫 여행지 원주 소금산 산행후 하산지점이 강변인 점이 염려스러워 간현관광지 관리사무소에 전화로 문의하자 출렁다리까지만 가능하고 산행 불가 답변
치악산으로 변경하고자 하였으나 어느 코스로 산행하든 4시간 이상 소요... 동기들의 산행능력???
원주 중심 적절한 산을 탐색... 역사적 의미가 있는 미륵산으로 변경하였으나 정상적인 4시간30분 코스는 글쎄??? 최대한 짧은 코스로 잡았으나 급경사 암벽산행... 장맛비가 내릴 경우 암벽산행은 상당한 위험성이 걱정 되었으나 만에 하나 산행중 비가 내릴 경우 중간에서 하산을 염두에 두고 원주로 출발.....
원주로 달리는 내내 차창 넘어로 날씨 굿~~ 기상청 기상예보와 달리 반짝 맑은 날씨....
▷원주 미륵산 황산사에 도착한 7명... 산행시작.... 황산사-3층석탑-마애불-미륵봉-바위지대- 미륵산 정상-새터고개에 도착하는 3시간 산행 내내 날씨는 맑고 땀은 뻘뻘~~~~ 온몸이 땀으로 샤워한 듯 하였지만 마음만은 엄청 상쾌했습니다~~~
▷무사 무탈하게 미륵산 산행후 하산 청정계곡으로 소문난 원주 **계곡으로 직행~~ 쏴아~~~~~ 장맛비가 내렸음에도 유리알 처럼 맑디맑은 계곡수....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천혜의 지역으로 쏘옥~~~들어가 자리를 잡은 다음 으랴차챠~~~~ 옷이 축축한 땀으로 젖은 채 퐁당~~~~~ 아고고고고고고~~~~ 어메.... 시원한거~~~~ 지금 이순간만은 난 아무것도 몰라~~~ 그져 몸과 마음이 엄청 시원하다는 것 밖에~~~ 그져 무조건 좋다 좋아~~~~
▷산행후 대 정원같은 원주 오크밸리에 입실... 창밖은 물감을 뿌린듯한 거대한 그림 같은 푸른 잔디가 펼쳐지고..... 지지고 볶고....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과.... 주거니 받거니~~~~ 오호.... 이것이 바로 사람사는 맛 이구나~~~~~
▷어느 덧 날은 어두워지고......... 창밖에 23시까지 영업하는 골프장을 밝히는 찬란한 불빛이 어느 일류주점보다 들뜬 분위기를 자아내고 향기로운 술맛이 솔솔~~~ 쥑이는구나......
아무리 술을 마셔도 소화는 시키면서 마셔야 하는 법..... 휘황찬란한 불빛을 배경으로 걷는 잔디밭... 얼마나 관리를 잘했기에 잔디가 비단물결처럼 고울까???
골프장 한바뀌 돌고 들어와 다시 술판은 벌어지고~~~
▷8월13일 여행 이틀째..... 부지런들 하셔~~~~ 새벽부터 일어나 달그닥 달그닥.... 음식솜씨 소문난 동기가 아침식사 준비하고 맛있게 아침 식사후 소금산 출렁다리로 출발~~~~
▷소금산 출렁다리를 탐방하고 빈대떡과 출렁다리 출렁주로 한잔.... 다시 땀을 씻기위해 전날 갔었던 **계곡으로 출발 다시 알탕하고
원주시내 원조“복 추어탕“ 식당으로 가서 해단식 겸 점심식사로 마무리 했습니다~~~
▷무사 무탈하고 즐겁고 신나게~~ 좋은 사람들과 1박2일 알찬 여행.... 아주 오랬동안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 될 것 입니다~~~ ▶경천묘 경천묘는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에 있는 경순왕의 영당이다. 귀래면의 귀래는 귀한 사람이 오셨다는 뜻으로 원주시에서 경천묘를 복원 할 때 귀래면 지명의 뜻에 따라 이곳을 복원하였다. 원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이 경천묘를 보기위해 많이 몰려든다.
경천묘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재위 927~935)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이다. 경순왕은 신라를 태조 왕건에게 넘기고, 원주 용화산(지금의 미륵산)으로 들어가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 그때 한 화승이 그린 경순왕의 영정을 고자암에 모시고 제사를 지낸 것이 영정각의 시초였고, 영조13년에 이르러 경천묘라 이름 붙였다 한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은 평화적으로 신라를 고려에 넘겨준 뒤, 왕건의 큰 딸인 낙랑공주와 다시 결혼하였다. 국가를 고려에 넘기려 하자 큰아들인 마의태자는 반대하고 막내아들인 범공은 머리를 깎고 화엄사로 들어가 중이 되었다. 경순왕은 용화산 학수사로 가서 여생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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