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초농군
작년에 내 텃밭 아래쪽 집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바, 시골농부로서의 가치 있는 삶을 사신 제초농군의 세상 떠나심을 애도하였다.
제초제를 돌아가실 때까지 제초제를 거부하시던 할아버지의 강한 농부의 마음을 존경하던 터에 그 분의 죽음은 나에게 크나큰 허전함을 주었고, 그 후 내가 낫으로, 선호미로, 예초기로 끊임없이 끈질기게 자라는 텃밭의 잡초들을 다스릴 때마다 그 할아버지 생각을 하곤 했다.
아! 그런데 또 다른 제초농군이 나타났다.
연세도 칠십 후반으로 돌아가신 제초농군과 비슷하고 꾸부리고 앉아 낫으로 풀을 베는 모습도 거의 흡사하다.
그 분은 내 텃밭 아래의 논임자로 논밭 둑에 자라는 풀을 열심이 베어낸다.
먼저의 제초농군에 비하여 차원은 좀 다르다.
타계한 제초농군은 조건 없이 제초제를 거부한 반면(베어낸 풀을 밭 아랑에 덮어 풀의 세력을 약하게 하고 거름의 효과를 얻었음), 지금의 제초농군은 베어낸 풀을 사랑스런 염소엄마와 아기염소의 먹이로 주고 있다.
농가에서 적절한 수의 가축을 기르면서 잡초의 가치를 배가 시키는 지금의 제초농군은 더 똑똑한 농군임에 틀림이 없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할 일이 항상 많아야한다.
그래야 심신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사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여생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어르신들이 일할 것이 없으면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러한 목적 없는 삶은 생의 활력을 없애 일찍 세상을 뜨게 되거나 건강에 지장을 받아 고생하게 된다고 본다.
주변의 어르신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이 어르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언제나 일거리를 제공토록 연구하며 항상 끊임없이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부려먹어야 효자노릇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시는 효자 여러분!
어르신들을 편하게만 모시지 말고 남들이 욕할 정도로 일거리를 주십시오.
그래서 어르신들이 밤에 피곤해 곯아떨어지도록 만듭시다.
어르신들을 부려먹는 여러분들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2006.5.23.)
2. 잡초마당
텃밭 농막 앞의 마당이 온통 풀 천지이다.
그리고 텃밭으로 통하는 통로 또한 풀 천지이다.
며칠 전에 언덕너머 별장에 사는 촌로가 놀러 와서 내 농사하는 모양이 신기한지 한참을 구경을 하고는 훈수를 한다.
“밭은 그렇다 쳐도 마당과 길엔 풀 좀 없애슈! 보기에 좀 뭐하네!”
“왜요? 보기 얼마나 좋습니까? 그냥 편하게 보면 그것도 눈이 시원하잖아요?”
“흥! 별게 다 편하고 시원하다네! 풀약 몇 번 치고, 새로 나는 풀 슬슬 뽑으면 깨끗해! 내 얘기대로 하슈!”
그 분의 별장에 가보면 마치 철저한 텃밭계획으로 깔끔하게 구획정리가 빈틈없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마당엔 잡초 하나도 없이 평평한 흙바닥이다.
앞마당 텃밭에도 농작물 이외엔 풀이라곤 하나도 없다.
화단엔 잡풀이 하나도 없고 예쁜 꽃으로 정성들여 가꾸어 기막히게 깨끗하고 화려하다.
숨이 막힌다.
난 그러한 깨끗함과 지나친 조작이 싫다.
마당이 도시의 학교운동장 같이 매끈한 게 싫다.
난 어느 정도 자연적이고 생긴 대로 놔두는 여유와 약간의 틈이 있는 것이 좋다.
나는 아무리 마당이 풀밭이라도 쑥이 무릎 높이만큼 크게 자라도록 놔두지 않는다.
적당히 선호미로 잘라내고, 긁고 하지만 잡초구장 정도라고도 할 수 있다.
농막에서 지내는 때는 오밤중에도 밖에 나와 돌탑외등의 조명아래 풀밭 위 낚시의자에 몸을 맡기고 별빛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본다.
텃밭마당 풀잎에 묻어있는 물기의 싱그러운 냄새가 송학산에서 내려부는 바람에 실려 코를 스친다.
보잘 것 없는 잡초도 내 마음을 느긋하고 풍성하게 할 줄을 아는 데 내가 왜 잡초를 미워하며 사그리 없애야 하는가?
텃밭농사 수준을 즐기는 나 같은 한량의 기준으로 볼 때 잡초를 미워할 것 까지는 없다고 본다.
어찌 보면 잡초와 같이 살면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워 진다고 생각한다.
내 텃밭엔 잡초가 무지 많아도 내 텃밭은 내게 먹을거리를 언제나 적당하게 만들어 준다.
최소한 잡초로 텃밭농사를 망치지는 않는 것이다.
내가 생산된 농산물을 남에게 팔아서 소득을 올려야하는 경우라면 잡초를 없애기 위하여 제초제를 뿌리고, 경운을 하여 비닐멀칭을 하고, 유기질비료 외에 화학비료도 적절하게 주어야하고, 농약도 때맞추어 주어야한다.
그러나 나 같은 텃밭농사수준의 경우라면 그냥 편하게, 게으른 대로 놀아가며 농사를 지어도 내 가족의 먹을거리는 그런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 보고 직업이 농업인 진짜농사를 하라면 벌써 때려치웠을 것이다.
그런 재미없는 농사의 산물을 내가 먹기 위하여 굳이 내 스스로 생산성 없는 땀 흘림을 할 이유가 없다.
사먹으면 간단하다.
내가 텃밭농사를 하는 이유는 내 스스로 정한 가치와 재미를 얻기 위하여서다.
앞으로도 내 텃밭엔 잡초가 판을 칠 것이다.
아마도 해를 거듭할수록 잡초의 종류가 줄어들고 수량이 줄어들기를 기대하지만 상당한 정도의 잡초는 언제나 텃밭에 살고 있을 것이다.
게으름을 부린 고구마, 고추, 호박을 심은 밭이 온통 풀로 덮였다.
장마가 시작되니 엄청난 속도로 잡초가 크게 자랄 것이다.
예초기를 손보고 가동태세를 갖추어야한다.
호미와 낫으로 잡초를 다스리기엔 이미 늦고, 텃밭이 너무 크다.
(2006.6.25.)
3. 꼴베는 꼴을 못 본다
일주일 만에 본 아래 집 할머니의 안색이 별로 좋지 못하여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며칠 전에 체기가 있어서 바늘로 손끝을 따내느라고 힘들었고 이틀을 고생하다가 할 수없이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할머니가 나보고 농막 옆에 난 익모초를 어쨌냐고 묻는다.
뽑아버렸다고 하니 실망하는 기색이다.
아래쪽 밭가에 있는 익모초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하니 그쪽엔 제초제를 뿌린 곳이라 쓸모가 없다고 한다.
속이 불편할 때에 익모초를 즙을 내어 아침에 한 사발 마시면 즉효라고하며 내가 뽑아버린 익모초를 아쉬워한다.
내년에 주변의 익모초를 캐어다가 익모초 밭을 만들기로 약속을 하니 할머니 얼굴이 환해진다.
점심 먹고 한낮의 게으름을 한껏 누리며 차를 마시고 있는데 텃밭 아래쪽에 사는 촌로가 올라왔다.
천여 평의 밭을 가꾸는데 일하는 모양이 프로다.
내가 심심할 때 이따금 그 사람 밭에 놀러가는 데 밭에 잡초 한 뿌리도 없이 깔끔하다.
나의 텃밭을 보고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비료 주어라 풀약 주어라 농약 뿌려라 하며 훈수를 빼놓는 법이 없다.
오늘은 “비료 주어야 토마토 먹지 안주면 안 달려!” 하고는 내 텃밭의 잡초를 베어 주겠다고 한다.
“어유! 그냥 놔두슈! 뭐 힘들게 베기까지 하려고요? 나중에 베어서 밭이랑에 깔꺼유!”
다 쓸모가 있는 잡초이니 허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요즈음은 풀을 베어 지게에 한 짐 싣고 논둑길을 걸어가는 농사꾼을 보기 힘 든다.
밭이나 논둑에 난 잡초는 가축의 좋은 먹이인데 그 잡초를 벨 수가 없는 것이다.
벨만한 잡초도 없지만 잡초가 있어도 베어서 가축을 먹이기가 겁이 나는 것이다.
송아지가 잘못 농약에 오염된 잡초 먹고 탈이 나면 3~4백만 원이 날라 갈지도 모른다.
제초제가 아무리 친환경이니 잔류하는 독이 없느니 하여도 제초제 뿌린 곳에서 자라난 잡초를 베어다가 가축에게 먹이는 강심장인 농부는 없눈 것이다.
내 텃밭의 잡초는 아주 싱싱하다.
제초제나 여타의 농약을 전혀 준 바 없어 아주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텃밭의 모든 농작물이 잡초처럼 싱싱하게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을 정도이다.
소 먹이는 사람이 내 텃밭의 싱싱한 잡초를 보면 누구나 베어가고 싶어 한다.
좋은 飼草가 눈에 보이니 애지중지하는 소에게 보약을 먹이고 싶은 것이다.
요즘 초원이 딸린 농장에서 자라는 운수 좋은 녀석들을 제외한 소나 돼지는 참 불쌍하다.
맛 좋고 싱싱한 풀을 먹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어져 가축평생 다 지나도록, 태어나서 죽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갈 때까지 오로지 가공된 사료만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나 어릴 적 농촌의 아이들은 거의 매일 꼴을 베러 나갔다.
제초제가 뿌려진 이후로 요즈음 농촌의 아이들은 낫 들 일이 없어졌다.
제초제가 농촌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분명한 건 제초제가 가축들의 불행지수를 높이는 것이리라.
(2006.7.9.)
첫댓글 시골에 와서 16년 동안 실력이 는 건 예초기 다루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살려고 들어왔으니 최소한 제초제는 안 쓰려고 마음 먹었지요.
쉽지 않지만 그것 하나만은 제대로 지킨 것 같습니다.
지기님이 넓은 정원의 잡초를 예초기로 다스리신다니 대단하십니다.넓은 정원가꾸기를 하려면 아마도 일반 관행농처럼 제초제를 쓰는 것이 필수일 꺼라고 생각됩니다. 그 편한 제초제는 환경오염독약인데 대부분의 농사꾼들이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지요.
제가 텃밭놀이를 이십여 년간 해오면서 느끼고 알은 제 나름대로의 텃밭가꾸기에 관한 것을 블로그에 올 리고 있으나, 사진도 자꾸 사라지고 다시 보니 그 내용도 틀린 게 눈에 띄어 요즈음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그런 김에 텃밭잡초에 관한 글을 몇 편에 나누어 바람재에 올려 텃밭하는 들꽃회원님들과 공유코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