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3월14일(화)■
(요엘 1장)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5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16 먹을 것이 우리 눈 앞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17 씨가 흙덩이 아래에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18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소란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묵상/욜 1:9-20)
◆ 소제와 전제가 끊어지다
(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소제(Cereal offering)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인데, 고운 곡물 가루를 누룩 없는 전병으로 만들어서 바치거나, 곡물 가루를 직접 드렸다. 제사장은 거기서 한 조각이나 한 줌을 취하여 기름을 붓고, 유향과 함께 단 위에서 불사르고 나머지는 모두 제사장 몫으로 했다(레 2:1-10).
전제(奠祭-제사드릴 전, 제 - 제사)는 오직 성경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인데, 포도주를 단에 붓는 제사였다. 영어로는 Drink offering으로 쓴다. 전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제사라기 보다는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지는 보조적인 제사였다. 사도 바울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하는 것을 전제(관제)로 표현했다.
그런데 메뚜기 재앙과 가뭄으로 곡식이 사라지자, 소제와 전제가 끊어졌다. 드릴 재료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제사 드리러 성전에 찾아오는 자도 없고, 제사장은 할 일이 없어졌으며, 헐벗고 굶주리는 상태가 되었다.
밀이 익는 시기가 4월이라면, 포도가 익는 시기는 10월이다. 4월경에 메뚜기 재앙으로 곡식을 모두 잃었는데, 그 뒤로 계속되는 가뭄으로 이제는 포도주를 만들 포도가 없다. 밭의 모든 식물이 말랐다.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19)는 비가 오지 않아서 온 들의 풀과 나무가 바싹 메마르게 된 것을 묘사하고 있다. 시내조차 다 말랐고, 사람들의 목이 타들어 간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넋 놓고 망연자실해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무릎 꿇고 구해야 하는가?
◆ 슬피 울며 간구하라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선지자는 제사장들이 슬피 울 것을 명령한다.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에게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워있을 것을 명령한다. 이들이 슬피 울어야 함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하나님께 제사 드릴 수 없게 된 것이 더 슬픈 일이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게 됨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다.
이들이 왜 제사드릴 수 없게 되었는가?
메뚜기 재앙과 극심한 가뭄으로 모든 것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는 병과 죽음, 그리고 지진과 홍수 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생겼다. 죄가 세상을 왜곡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이 왜곡된 세상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마저 십자가에 못박았다.
재앙 앞에서 인간들은 무력하다.
이런 왜곡된 세상에서 병과 죽음과 재앙을 보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이런 세상에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앙을 보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면 안 된다. 재앙조차도 뿌리를 살펴보면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은 탓이기 때문이다. 누굴 탓하랴?
성도는 죄 많은 이 세상을 슬퍼할 따름이다. 그리고 속히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세상이 올 것을 소망해야 한다.
그러나 비록 이 세상이 죄 때문에 왜곡되었을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께서 살아계시고, 능히 우리를 이런 상황에서 건져주실 수 있다.
그러니 어떡해야 하겠는가?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서 구해야 한다. 비록 이 재앙이 개인의 죄나 집단의 죄가 아니라, 이 세상의 타락으로 인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특별 은혜를 구하고 건져주실 것을 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 구하자.
◆ 금식이 필요할 때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절망 속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기가 막혀서 기도가 안 된다.
그런 사람에게 열심히 기도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내가 기도해주어야 한다.
기가 막혀서 기도가 안 나오면 금식할 것을 권한다. 기도가 안 나와도 밥은 굶을 수 있지 않은가? 금식은 자신의 진실함과 간절함을 표현하는 무언의 기도다. 부모에게는 밥을 거절하는 자식의 항의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금식도 어려운가?
그렇다면 13절의 말씀처럼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우는 것은 어떤가?
서 있을 기력도 없다면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워있는 것은 어떤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앞에 가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유대인들이야 베 옷을 입고 회개했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베 옷을 일부러 구해서 입을 필요는 없고 그 옷이 의미하는 근신과 절제를 해야 할 것이다. 잠시 일상생활을 내려놓고, 그동안 즐겼던 인터넷, 유튜브, 오락, 영화, 여행, 운동 등을 다 내려놓고 하늘의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기도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비록 욥과 같은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만나주시면 견딜 힘이 생긴다. 주님의 단 한마디면 상황 종료다.
위기가 닥쳤음에도 기도할 줄 모르는 백성은 망할 백성이다. 나라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다. 돌이키라는 사인이 왔을 때, 돌이켜야 한다. 기도하라는 사인이 왔을 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우리가 모두 세상 문화에서 배운 언어와 생활 태도에 물들어있습니다.
더 큰 재앙이 오기 전에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회개하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