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교회에 관하여-6
제3절 역사적 고찰-2
2. 중세 시대
중세 시대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1453년까지입니다.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성도의 교통이라는 교회의 본질적 개념보다 감독제의 합법성을 주장한 키프리안의 교회관을 이어받아서 교직 제도와 같은 외면적 조직을 점점 강조하였습니다.
교직 제도에 대한 강조는 마침내 교황제도로 발전되었습니다.
주교들의 출현은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등의 총대주교(Patriarchs) 출현으로 발전되었고, 마침내 533년 비쟌틴 황제 유스티니안은 로마 주교의 수위성(首位性)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607년 로마 주교 보니페이스 3세는 역사상 최초로 자신을 ‘세계적 주교’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교황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천주교회의 교회관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종교개혁 이후에 작성되었으나, 중세 시대에 이미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16세기 말 천주교회의 탁월한 변호자이었던 벨라민(Bellarmine) 추기경은 교회를 “동일한 기독교 신앙의 고백과 동일한 성례들의 사용에 의하여 연합되고, 합법적 목사들과 첫째로 지구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로마 교황의 치리 하에 있는 모든 무리들”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처럼, 천주교회에 의하면, 교황을 우두머리로 한 교회의 외적 조직이 교회의 본질적 요소입니다.
세계적 신학자 한스 큉은 천주교회의 교회는 “하나의 무형적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의 유형적 머리인 로마 교황청의 베드로의 후계자를 가진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신실한 자들의 단체”라고 비판했습니다.
천주교회는 ‘가르치는 교회’와 ‘듣고 배우고 믿는 교회’를 구별하며, 가르치는 교회를 더 중시하고 교회의 유일성, 보편성, 사도성, 무오성 등의 속성들은 가르치는 교회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구원의 은혜와 복들을 나누어주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에 의하면, 자기들의 교회는 독점적으로 구원의 기관이며 구원의 중보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헬라 정교회는 천주교회와 같이 외적 조직을 중시하지만, 교황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그 대신 교회의 주교단과 대회들에 무오적 권위를 둡니다. 그들에 의하면, 권위의 궁극적 원천은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교회의 공통적, 불변적 마음’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교회만 지상에서 참된 유일한 교회라고 봅니다.
3. 종교 개혁 시대
루터와 칼빈은 공통적으로 교회를 성도의 교통이라고 바르게 이해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며 성례가 바르게 시행되는 곳에 참 교회가 있고 따라서 바른 말씀을 떠난 외적 조직의 계승은 무의미할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한편, 재세례파(Ana-baptist)는 유아들을 제외하고 성인 신자들만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간주했고, 교회의 제도와 은혜의 수단들을 경시하였습니다.
참고로,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받았어도 성인이 되면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하고, 성인도 다른 교파에 있다가 재세례파로 오면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다시 재(再)’를 써서 재세례파라고 합니다. 재세례파는 교회를 공동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