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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률] 이성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1. 들어가며
많은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대부분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정년까지 고용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도라고 인식해 왔다. 그러다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임금피크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고, 임금피크제가 일괄 도입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종래 법원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개별 사안별로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해 왔다. 그러다가 대법원이 2022년 5월경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관한 네 가지 판단기준(①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②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③임금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④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을 최초로 제시했다(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이하 '본건 대법원 판결').
대법원은 위 판단기준에 따라 H 기술연구원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 제2호 소정의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본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후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모두 무효로 되는 것인지, 위 판단기준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적용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러한 논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래에서는 본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온 판례들을 통해 어떠한 사정들이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을 좌우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 구체적인 판례
가. 임금피크제가 유효라고 판단된 사례
1) A 통신사 사례(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6. 16. 선고 2019가합592028 판결; 항소기각 및 심리불속행기각으로 확정)
A 통신사는 2016. 1. 1.부터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되 만 56세부터 4년 동안 임금을 삭감하는(만 56세 10%, 만 57세 20%, 만 58세 30%, 만 59세 40%)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한 본건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안에 관해서도 하나의 참고기준이 될 수 있다고 설시한 후,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①노사합의 당시 피고 근로자 중 79.4%가 40대 이상이었고 피고의 경영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임금피크제를 실시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고, ②연 10~40%의 삭감률은 피고와 노동조합이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비율로서 불이익의 정도가 크지 않으며, ③임금피크 대상자에게 성과보상금 등 추가 보상조치를 시행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정년연장 자체가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이고, ④ 감액된 인건비 대부분은 연장된 근로기간에 대한 임금으로 사용됐다는 점 등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특히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업무량이나 업무강도 등에 관한 명시적인 저감조치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해 임금피크 대상자들에 대한 업무량이나 업무강도를 반드시 저감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올해초 선고된 보험회사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판결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 19. 선고 2020가합604507 판결; 항소 미제기로 확정).
2) B 공사 사례(서울동부지방법원 2022. 10. 27. 선고 2020가합113172 판결; 항소심 계속 중)
B 공사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에 따라 2016. 1. 1.부터 정년을 기존의 만 60세까지 보장하는 대신, 정년퇴직일 2년 전부터 연봉을 순차적으로 20%, 40%만큼 감액하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본건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했는데, ①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에 따라 도입된 것으로, 피고의 경영상황에 비춰 임금피크제 등을 실시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고, ②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했을 때 임금피크제의 적용기간 및 임금감액률이 과도하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임금 삭감 이외의 나머지 사항에 대한 불이익이 없도록 했으며, ③6개월간 퇴직예정자 공로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해 대상자들의 구직을 돕고 임금피크제 적용 예정자들을 상대로 한 희망업무 조사결과를 토대로 담당직무를 개발해 해당 업무를 부여하는 등의 대상조치를 했다는 등의 이유로 B 공사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공공기관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본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 전부터 그 유효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다수 있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7. 10. 선고 2018가합524721 판결(서울고등법원 2021. 11. 19. 선고 2020나2028045 판결, 심리불속행기각으로 확정),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9. 10. 선고 2018가합593291 판결(서울고등법원 2021. 12. 21. 선고 2020나2033146 판결, 심리불속행기각으로 확정)]. (i)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역시 고령자고용법 제19조의2 제1항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 점, (ii)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에 따라 도입된 점, (iii)임금피크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그 정년이 연장되지 않은 것은 근로자들이 고령자고용법 개정 전부터 이미 60세 정년이라는 유리한 규정을 적용받고 있음으로 인한 반사적 효과로 봐야 한다는 점 등을 주된 논거로 한다.
본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도 B 공사 사례를 포함해 공공기관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판결들이 선고되고 있는데[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1다241359 판결, 서울서부지방법원 2023. 6. 27. 선고 2022가단257569 판결(항소심 계속 중)], 모두 위 (i) 내지 (iii)의 사정을 고려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된 사례
본건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된 사례는 많지 않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D 공사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 제2호 소정의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차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으나(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11. 11. 선고 2020가합119555 판결), 며칠 전 서울고등법원은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서울고등법원 2023. 8. 18. 선고 2022나2049787 판결).
또한 수원지방법원은 E 방위업체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①이 사건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됐으나, ②이 사건 임금피크제로 원고가 받은 불이익은 큰 반면, ③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④감액된 재원을 임금피크제의 취지에 맞게 사용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효라고 판단했으나(수원지방법원 2022. 12. 13. 선고 2022가소8238 판결), 항소심에서 원고가 소를 취하했다(수원지방법원 2023나50745).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된 사례 중에서는 F 신용정보회사 사례(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5. 11. 선고 2020가합575036 판결; 항소심 계속 중)를 주목할 만하다.
F 신용정보회사는 2016. 3. 1.부터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5세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구체적으로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들의 연 보수는 임금피크전환 직전 3개월 보수총액/3×12×연 보수 지급율로 계산됐고, 연 보수 지급율의 경우 행정업무 직군이 45~60%, 마케팅업무 직군이 40~70%로 정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A 통신사 사례와 마찬가지로 본건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사안에도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고 설시한 후, ①이 사건 임금피크제로 인해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됐다고 볼 수 있고, 근무기간이 2년이 늘어났음에도 만 55세 이후로 지급받을 수 있는 임금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 손해의 정도가 결코 적지 않고, ②업무량이나 업무강도를 저감했음을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임금피크 대상자들에게 지급된 인센티브는 임금삭감의 불이익을 보전하기에 충분한 대상조치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③달리 피고가 55세 이상 근로자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임금삭감한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F 신용정보회사의 임금피크제를 무효라고 판단했다.
본건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A 통신사 사례 외에도 다수의 판결에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이 인정돼 왔으나[서울남부지방법원 2022. 5. 27. 선고 2020가합103192 판결(항소미제기로 확정),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2. 1. 선고 2022가합517522 판결(항소심 계속 중),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 19. 선고 2020가합604507 판결(항소미제기로 확정) 등], F 신용정보회사 판결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고 하더라도, 사안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3. 시사점
본건 대법원 판결은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하는 일응의 기준을 제시했으나, 여전히 그 판단은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앞서 소개한 사례들만으로 법원의 입장을 일의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위 사례들을 통해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시사점은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본건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기준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판단에도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본건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원용할 수 없다는 하급심 판결도 있으나[대전고등법원 (청주) 2022. 12. 7. 선고 2022나50254 판결], 대부분의 판결에서는 본건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기준을 참고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새로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본건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기준을 참고해 유효성 판단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라고 해서 언제나 무효인 것이 아니다. 정년유지형이라고 하더라도 근로자의 불이익이 크지 않고 그에 대한 대상조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유효성이 인정될 수 있다(중요한 것은 이때 임금피크 대상자들에 대한 업무량이나 업무강도를 반드시 저감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에 따라 일괄적으로 도입된 공공기관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그 유효성을 인정한 예가 많다.
셋째, 반대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고 해서 언제나 적법·유효한 것도 아니다. 정년연장형의 경우 정년연장 자체가 임금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이므로, 정년유지형보다는 그 유효성이 폭 넓게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정년연장형이라도 임금삭감률이 지나치게 높고, 대상조치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무효로 판단될 수 있다.
4. 나가며
지난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900만 명을 넘어선 901만8000여 명을 기록했다. 전체 인구의 무려 17.5%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202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인구고령화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각계에서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만약 정년이 만 65세로 연장될 경우 임금피크제 혹은 이와 유사한 제도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관련 분쟁 역시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회사로서는 ①임금피크 적용기간이나 임금삭감률이 지나치게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②새로운 직군을 개발하거나 대상자들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등 불이익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대상조치를 시행해야 하며, 이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여 향후 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월간노동법률
첫댓글 판례가 잘 정리 됐네요. 정년연장형 임피 무효는 기존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면서, 임피는 55세부터 적용해 실제로 임금 삭감에 피해가 크다고 인정한 판례 입니다. 어찌됐건 변호사는 돈 벌겠습니다.
우리회사도 취지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금피크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문제가 없는지 봐야 할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