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성사론」에서
(Nn. 8-11: SCh 25 bis, 158-160)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납니다
여러분은 성세소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물론 물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물만 본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시중들고 있는 레위들도 보고 질문하고 축성하는 주교도 보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 다른 서간에서 말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던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하느님의 업적을 통하여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님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성세소에 주님의 신성이 현존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성사란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것을 믿는데 왜 그분의 현존을 믿지 않겠습니까? 현존이 앞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업적이 따르겠습니까?
이 성사는 참으로 긴 역사를 지니는 성사입니다. 그것은 이미 세상의 창조 때 예시되었습니다. 한 처음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을 때 “하느님의 영이 물위에 휘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이 물위에 휘돌고 있었다면 그 영은 물에다 역사하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을 지어내시는 중에 그분의 영은 분명히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늘은 만들어졌고 만상도 당신 입김으로 만들어졌도다.” “하느님의 영이 물위에 휘돌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영은 물에다 역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예언자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영이 물위에 휘돌고 있었다.”고 말하고, 다윗은 하느님의 영이 역사하고 있었음을 증언합니다.
또 다른 증언을 들어보십시오. 모든 인간이 죄 때문에 타락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영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육신의 불결과 중한 죄가 영의 은총을 거부해 버린다는 점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주셨던 은총의 선물을 되찾아 주시고자 홍수를 보내시어 의인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홍수가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노아는 먼저 까마귀 한 마리를 내보냈습니다.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비둘기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것은 올리브 이파리를 물고 돌아왔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물도 나오고 나무도 나오며 비둘기도 나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신비를 의심하겠습니까?
이 물은 사멸할 인간이 빠져들어 자신의 모든 죄를 씻는 물입니다. 이 물 속에 온갖 악은 묻혀 버리고 맙니다. 이 나무는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 당하실 때 못 박히신 나무입니다. 이 비둘기는 여러분이 신약 성서에서 배운 것처럼, 그 모양으로 내려오시고 여러분에게 영혼의 평화와 마음의 평온을 불어넣어 주신 성령이십니다.
출처 - 성무일도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