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형법 제152조에 규정돼 있을 정도로 위증은 심각한 사법방해죄입니다.
그런데 그런 위증을 교사(敎唆)한 자는 위증범보다 더 엄하게 처벌합니다. 2022년 이후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돼 1심 판 결받은 65건 71명 중 70명(98.6%)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위증범과 교사범이 같이 재판받은 41건 중 37건에서 교사범이 더 높은 형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1심 판결에서 위증한 전 성남시장 수행비서 김 씨에겐 유죄가 인정돼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는데, 정작 증언을 요청한 이 대표에겐 무죄가 내려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KBS PD와 짠 검사 사칭으로 벌금 150만 원을 확정받은 이 대표가 2018년 경기지사 선거 때 “PD가 사칭하는 데 옆에 있다가 누명 썼다”고 했다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서 김 씨에게 ‘KBS와 성남시장 간에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자는 협의가 있었다.’는 허위 진술 요구 혐의를 무죄라고 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김 씨가 왜 처벌받을 것을 각오하고 이 대표가 시키지도 않은 위증을 했다는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김 씨가 한 위증을 이 대표가 요청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위증교사 고의성이 없었다.’ ‘통화 당시 김 씨가 부탁대로 증언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는데, 무죄를 전제하고 무리하게 법리를 전개한 ‘기교 사법’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합니다. ‘위증’도 있고 ‘교사’도 있는데 ‘위증교사’는 없다는 신기한 판결입니다.
2020년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상고심에서 권순일 대법관의 “TV 토론회 중의 거짓말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창조적 판결’에 비견된다고 합니다.
2018년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검사 사칭은 누명’ 부분이 무죄가 돼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려 한 사실이 없다’는 혐의만 남아 항소심의 벌금 300만 원 당선 무효 형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돼 이 대표가 기사회생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만약 위증교사가 없었다면 상고심에서 2심 유죄 판결을 뒤집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습니다. 재판부를 속이고 농락한 가중 처벌 대상인데도 무죄가 된 만큼 항소심에서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 많다고 합니다.
<스포츠 경기에는 대표적으로 토너먼트와 리그전 방식이 있다.
토너먼트는 중세 기사들의 결투 방식에서 따온 것으로, 1:1로 붙어서 패자는 바로 탈락하고 승자는 다른 승자와 대결하기 위해 올라간다. 반면, 리그전은 각 팀이 다른 팀과 모두 최소 한 번씩 경기를 치러 종합 성적에 따라 결선에 진출한다. 보통 축구에서 예선은 리그전으로, 16강부터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한다.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아 1패를 기록했다. 그런데 유죄로 예상됐던 25일 위증교사 재판에선 무죄가 나오면서 1승을 얻었다.
앞으로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사건, 대북송금 사건, 법인카드 유용 사건 1심 재판이 남아 있다. 그런데 민주당 바람과는 달리 이 대표의 재판은 리그전이 아니라 하나라도 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서든 데스’다.
‘위증한 사람은 유죄, 교사한 사람은 무죄’라는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부장판사의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 내려져 이 대표는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선거법 형량이 이대로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과 대표직 상실은 물론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당은 대선 국고보조금 434억 원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나머지 3가지 사건은 재판 진행 상태로 볼 때 대선 전에 확정판결이 나오기 어렵다.
위증교사 사건도 이 대표 측이 지연 전략을 쓸 경우 선거법처럼 ‘6·3·3(1심 6개월, 2·3심 3개월)’ 규정이 없기에 대선 전에 결론이 나긴 어려울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보면 이 대표 입장에서 선거법 유죄는 뼈아프다. ‘법원 운(運)’이 있는 이 대표는 권순일 전 대법관, 유창훈·김동현 부장판사에게선 정치생명을 얻었지만, 선거법 사건을 담당한 한성진 부장판사 때문에 일단 제동이 걸린 셈이 됐다.
선거법이 2·3심에서 뒤집히면 몰라도, 상황이 민주당 환호처럼 유리할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는 온갖 사법 리스크를 딛고 대통령이 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나 룰라 브라질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고 싶지만, 자칫 조 바이든 대통령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과 인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출마를 고집했으나 트럼프와 가진 첫 TV토론을 망치면서 떠밀려 사퇴하는 격이 됐다. 바이든 대세론에 눌려 아무 준비도 못 한 민주당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준비가 덜 됐고 시간이 촉박해 결국 참패했다.
민주당은 총력을 다해 선거법 재판을 뒤집거나 지연시키려 할 것이다. 허위사실 유포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도 제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법원은 자신에게 정치생명을 불어넣어 준 ‘김명수·권순일 대법원’이 아니다.
만약 늦어도 내년 말에 대법원이 이 대표에게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 형을 확정 지으면 일극 체제인 민주당은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친명 주류에서 마땅한 대선 주자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명·친문 세력까지 가세할 경우 자칫 대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오는 12월 12일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 대안이 없다.
민주당은 ‘이재명은 무죄’라는 희망 고문을 받으며 무조건 ‘고(GO)’를 외치다간 공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당내에서 바이든처럼 이 대표에게 사퇴 압박을 가하면 최민희 의원이 ‘죽일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을 지연시킬수록 더 불리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방법은 이 대표가 선거법 2심 판결에서 여전히 당선 무효형이 확정된다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민주당을 위한 희생자가 되어주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숱한 사법 리스크에도 대선 패배 이후 곧바로 국회의원, 당 대표 연임에 나서며 대선 재수의 꿈을 키운 이 대표가 이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그러면 자신도 민주당도 다 죽는데도 말이다.
이 대표는 당력을 쏟아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법 재판 지연 투쟁에 집중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강공도 예상된다. 결국, 대한민국은 이 대표 사법 리스크에 볼모로 잡힐 것이 뻔하다. 글로벌 위기의 시대에 경제·민생과 안보는 누가 챙길지 벌써 내년이 걱정된다.>문화일보. 이현종 논설위원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이현종의 시론, ‘1승 1패 이재명’과 희망 고문
천하흥망 필부유책, 제가 늘 입에 달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 대통령이나, 저런 야당대표를 만든 것은 다 우리 국민입니다. 저부터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 국민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된 사람을 일꾼으로 뽑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