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노을에 젖다
바다가 하루의 마지막 빛을 받아 안는다. 울산 대왕암에 저녁이 내려오는 시간, 하늘은 서둘러 어두워지지 않는다. 파란빛을 조금씩 거두고 노랑과 주홍, 분홍과 보랏빛을 차례로 펼쳐 보인다. 바다도 그 빛을 따라 색을 바꾼다. 낮 동안 푸르던 물결이 어느새 붉은 비단처럼 흔들린다. 나는 바위 위에 서서 말없이 그 변화를 바라본다. 하루가 저문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었던가.
대왕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곧게 자란 나무보다 바람을 오래 견딘 나무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가지는 한쪽으로 기울고 줄기에는 세월의 굴곡이 깊다. 바닷바람은 나무를 편안하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진 바람을 견딘 모습이 오히려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상처 없는 생보다 견뎌 낸 생이 때로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스친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다가 가까워진다.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어깨를 맞댄 채 파도를 받고 있다. 수없이 부딪히는 물결에도 바위는 묵묵하다. 파도는 물러났다가 다시 오고, 다시 부서진다. 바다와 바위가 아주 오래전부터 나누어 온 대화 같다. 한쪽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한쪽은 오래 머문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대왕암의 바위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황금빛으로 물든다. 낮에 보았다면 거칠고 단단했을 바위가 노을 속에서는 놀랍도록 따뜻해진다. 빛 하나가 세상의 표정을 이렇게 바꾼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같은 사람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서 어느 날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도 마음에 새로운 빛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 쪽으로 길게 놓인 다리에는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다. 누구는 사진을 찍고, 누구는 난간에 기대어 수평선을 바라본다. 사람들의 모습은 거대한 바위와 바다 앞에서 작은 점이 된다. 그 작은 사람들이 저마다 하루를 품고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기쁜 일을 가진 사람도, 마음 한쪽이 무거운 사람도 있을 테지만 노을 앞에서는 잠시 말이 줄어든다.
아름다운 풍경에는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도 한동안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기려다 보면 정작 눈으로 보는 시간을 놓칠 때가 있다. 사진은 순간을 붙잡지만 마음은 그 순간의 온도까지 기억한다. 바람의 냄새와 파도 소리, 바위에 남아 있던 햇살의 온기 같은 것들이다. 나는 오늘의 노을만큼은 조금 오래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진다.
해가 수평선 가까이 내려앉는다. 하늘 한쪽에서 주황빛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구름 가장자리까지 붉게 물들인다. 바다는 하늘의 색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만의 색을 고집하지 않는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푸른 바다가 되고, 붉은 저녁에는 붉은 바다가 된다. 그렇다고 바다가 바다가 아닌 것은 아니다.
문득 살아가는 일도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며 변한다. 젊은 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 좋아하는 것도 달라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앞만 보고 걸었다면 이제는 가끔 뒤를 돌아본다.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를 지나왔는지가 중요해지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오래 곁에 남아 주는 한 사람이 귀해진다. 변했다고 해서 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다가 저녁빛을 받아 다른 색이 되어도 여전히 바다인 것처럼.
노을은 하루의 끝에서 가장 화려하다. 그 사실이 마음을 오래 붙든다. 우리는 흔히 시작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새봄, 첫걸음, 젊음, 새로운 만남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저녁의 아름다움도 있다. 충분히 살아 낸 하루가 마지막에 보여 주는 깊은 빛이다. 그래서인지 대왕암의 노을 앞에서는 나이 들어간다는 말도 조금 다르게 들린다. 젊음이 아침의 빛이라면 삶의 후반은 저녁빛일지도 모른다. 아침처럼 눈부시지는 않아도 여러 색이 겹쳐 만들어 내는 깊이가 있다. 지나온 기쁨과 아픔, 만남과 이별이 마음속에서 서로 섞여 한 사람만의 색을 만든다. 세월은 무언가를 빼앗아 가기도 하지만 젊은 날에는 갖지 못했던 빛 하나를 남겨 주기도 한다.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 끝에 서 있다.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가지가 노을을 받는다. 얼마나 많은 태풍과 겨울바람을 견뎌 왔을까. 편안한 곳을 찾아 뿌리를 옮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견디고 또 견디며 오늘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 나무를 바라보며 오래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견딘다는 것은 단순히 버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람을 맞으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지를 내는 일, 꺾이지 않기 위해 조금 굽힐 줄 아는 일이다. 소나무의 굽은 줄기가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지나온 바람의 시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에도 그런 시간이 남는다. 웃으며 생긴 주름도 있고 걱정으로 깊어진 흔적도 있다. 예전에는 감추고 싶은 세월의 표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한 사람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살아왔으므로 남은 흔적이다. 대왕암의 바위가 파도에 깎이고 바람에 닳으면서 더 깊은 풍경이 되었듯 사람도 세월을 지나며 자신만의 얼굴을 얻는다.
노을이 절정에 이른다. 하늘 전체가 거대한 수채화처럼 번진다. 구름도 불빛을 품고 바다는 잔잔한 금빛 길을 만든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한동안 그 길을 따라 시선을 보낸다. 인생에도 저런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끝을 알 수 없어도 걸어 보고 싶은 길.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아도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길. 우리는 너무 자주 정답을 찾느라 삶의 풍경을 놓친다. 어디에 도착할 것인지보다 지금 어떤 빛 속을 걷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순간도 있는데 말이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놀랍게도 노을은 금세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떠난 뒤 하늘은 더 깊은 색을 보여 준다. 붉음은 보랏빛으로 바뀌고 보랏빛은 천천히 남색으로 내려앉는다. 사람도 떠난 뒤에야 더 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곁에 있을 때는 몰랐던 따뜻함,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말 한마디가 시간이 흐른 뒤 문득 생각난다. 그래서 이별은 존재의 빈자리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뒤늦게 알려 주기도 한다.
대왕암에 조명이 하나둘 켜진다. 바위 사이의 산책길을 따라 작은 불빛이 이어진다. 낮의 풍경이 물러간 자리에 또 다른 풍경이 태어난다. 어둠이 온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낮이 사라져야 켜지는 빛이 있다.
나는 그 작은 불빛들을 바라보다 마음속에도 그런 등이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켜 줄 수 있는 작은 빛.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도 좋다. 내일 아침 다시 일어나는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일,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 일처럼 사소한 것이면 충분하다. 삶은 어쩌면 그런 작은 불빛들을 이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본다. 조금 전까지 황금빛이던 바위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몸을 감춘다. 파도 소리는 오히려 더 또렷하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줄어들자 귀로 들리는 세상이 넓어진다. 오늘 대왕암에서 나는 저무는 풍경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는 끝이라는 느낌보다 다시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남는다. 해는 졌지만 내일이면 다시 떠오를 것이다. 파도는 물러갔지만 다시 돌아올 것이고, 어둠에 잠긴 바위 위에도 아침 햇살은 다시 내려앉을 것이다.
삶 역시 수많은 저녁을 지나왔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날도 있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여긴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왔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고, 떠난 것의 빈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저녁을 건너 아침으로 향해 왔다. 대왕암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은 이제 어둠 속에 희미하다. 그래도 바다는 그곳에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을도 마찬가지다. 하늘에서는 사라졌지만 이미 바위에 한 번 머물렀고 바다에 한 번 번졌으며 내 마음에도 한 겹 내려앉았다. 그날 저녁, 나는 대왕암의 노을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어느새 그 노을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저문다는 것은 빛을 잃는 일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색을 가장 깊게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