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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이 만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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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21.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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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이 만난다는데
(2020년 8월 14일~ 15일)
산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모든 문제를 해소해 주시는 어머님의 품속 같은 편안함이 있는가 하면 또한 아버님처럼 준엄한 사랑도 함께하며 무지(無知)를 깨우쳐 주시는 스승님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의 솜씨를 새삼스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배산임수(背山臨水)가 길지(吉地)로 보고 터를 잡아 생존하여왔다. 동서양과 고금을 통틀어 보아도 문명의 발달의 연원을 제시해 주기도 하는 산이다. 오늘도 월악산(月岳山)이 좋아 자주 찾는 산이다. 월악산은 충주, 제천 단양, 문경에 이르는 소백산맥의 일원이며 또한 백두대간이 자나는 곳이기도 하다. 산세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기도 한 산중에 명산이다.
특히 1,095.3m의 영봉(靈峯)은 백두산 영봉과 함께 이름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신비함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산이다. 나라에서는 1984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아침에는 약간 들뜬 마음이다. 1개월 전부터 남매들끼리 계획하였든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이기에 마음은 벌써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준비하였던 물품들을 매고 들고 트렁크에 실었다. 지리적으로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모두가 이곳으로 집결하기로 하였다.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과 안동에서 오는 남매 분들은 모두가 사돈이 경영하시는 정가(情家)에서 중식 하기로 약속하였기에 출발하였다. 큰 처남은 아직도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분으로써 권문(權門)의 우산(雨傘)의 역할을 하는 분으로서 오랜 장마로 피해는 없는지 걱정이 되는 상태다.
둘째가 집사람이고 셋째는 안동에 윤 교장 댁이다. 작년인가 칠순이었으니 퇴직한지도 몇 해가 지난듯하다. 두 분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도 복받은 분들이라 생각된다. 넷째는 처남으로써 신(神)의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공기업의 이사직을 거처 야인(野人)이 되었지만 지인들과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는 아우님이시다. 특히나 금년에 할아버지로 승격하셨다니 처남 내외분께 축하합니다. 다섯째 역시나 처남이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아버님 여의시고 어려운 환경에서 어머님 모시고 하세(下世) 하시기까지 처남 두 내외분은 하늘이 낸 효자(孝子)요 효부(孝婦)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시고 상급을 주실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어머님의 유지(維持)를 받들어 항상 하나님을 영접하는 믿음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직도 공직에 몸을 두고 있으니 축하할 일이 아니던가.
두 내외분 아직도 어렵겠지만 긍지를 가지고 굳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회장님이 되신 정 박사님 내외분 사랑하고 축하합니다. 정씨 가문의 장남으로써 거느리고 돌보아야 할 대상도 많은 줄 알고 있는데 열심히 사시는 모습 좋습니다. 앞으로도 두 내외분 사랑이 넘치는 부부로 두고두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남매 분들 6명과 외생(外甥) 3명이 정가에서 만났다. 정가는 문경 약돌 돼지 삼겹살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으며 특히 안사돈께서 음식 솜씨기 뛰어나서 문경 온천지구 금강산 가든을 경영하시다가. 충주에서 출퇴근길이 멀어 그곳 업소를 정리하시고 본가 옆으로 이전하여 충주에서 유일하게 약돌 돼지 삼겹살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인사를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에 월악산으로 가기로 하여 출발하였다.
이곳에서의 용발이 처남이 할아버지 승격 축하에 답하는 명목으로 식대를 계산하였다. 또한 사돈께서는 북숭이 즙을 한 통식 선물로 증정하였다. 감사 인사를 나눈 뒤 수안보를 경유하여 월악산으로 진입하였고 뒤따르는 정 박사와 윤 교장과 함께 같은 노선을 이용하였는데 서울 팀은 단양 노선으로 방향을 선택하여 월악(月岳) 나루에서 예약된 월악 펜션으로 모이기로 하였다. 월악산은 사시사철 새로운 모습에 반하여 자주 찾는 곳이다. 만수 계곡을 경계로 충주와 제천으로 행정구역이 갈린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진 터널을 지나면 자연이 주는 청정임을 실감하면서 천년의 사직을 고려 태조에게 넘겨주는 비운을 바라본 마의태자와 덕주 공주는 금강산으로 가는 중 이곳 월악산에서 잠시 중간 기착지로 하여 머무는 동안에 태자는 미륵사지를 창건하였다.
그 흔적들이 남아 후세에 전하고 있으며 바로 인근에는 문경시 동로면에서 이곳 수안보로 연결되는 하늘 재는 영남에서 남한강에 이를 수 있는 하늘 재를 신라 사람들이 처음으로 개통하여 삼국통일에 위업을 달성한 역사의 현장이다. 또한 백두대간의 경유지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여름 월악의 진풍을 감상하면서 굽이굽이 돌고 돌아 덕주사 입구에 위치한 월악 펜션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약 1km 오르면 덕주사(德周寺)가 있다. 덕주(德周) 공주가 창건한 가람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월악산은 음(陰)이 강한 산이라 하여 남근석(男根石)을 덕주사 주변에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기를 바라는 아낙네들이 이곳 남근석을 갈아 마시면 잉태한다는 믿기지 않은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곳에서 영봉(靈峯) 가는 길로 1시간 정도 오르면 거대한 마애불(磨崖佛)이 있다.
거기에서 또 1시간 정도 등반을 하면 영봉(靈峯)에 닿는다. 우리는 행장을 풀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에 바로 앞 계곡에는 유례없는 길고 긴 장마로 수량(水量)이 불어나 여행객들이 하한(夏汗)을 즐기고 있다. 다행인 것은 장마의 끝자락인데도 비가 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겹치고 또한 장마와 8,15광복절 광화문 집회 관계로 예전처럼 많은 인파는 볼 수 없었지만 계곡은 어서들 오라고 손짓한다.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같이 늙은이들은 눈을 닦고 찾아보아도 없다. 세상 바뀌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나의 허상을 돌아보게 하였다. 좁은 골짜기 강물이 유속이 빠르고 깊어서 건너기에 어려운 점도 감안하면서 나도 신발 벗고 시도하였는데 우선 발바닥이 아파서 발을 옮기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바닥이 모두가 돌멩이로 포장되다시피 하였다.
부드러운 발바닥이 감내하기에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막내 처제님께서 막대기 지팡이를 짚고 마중을 나와 부축받으면서 간신히 건넜다. 물과 산은 육신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함께하는 느낌이다. 바지나 팬츠 모두가 물에 흠뻑 젖었다. 얼마 만인가, 숙소로 돌아왔다. 시간도 저녁때가 되었다. 가지고 온 음주를 즐기면서 세상 이야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만찬은 펜션 옆에 위치한 박상 궁이라는 식당에 사전 예약을 하였기에 이동하여 혁대를 풀고 만찬을 즐겼다. 정 박사님의 회장 취임을 축하하고 기념하고자 발생한 경비를 부담하였다. 숙소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추억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가지고 온 회를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시간을 희롱하면서 선친께서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하나하나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통풍과의 전쟁 중이라서 함께하지 못한 점 아쉽지만 함께 자리를 하였다는데 의의를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평소처럼 시간이 되면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왔기에 예외 없이 미안스럽지만 뒤편에 자리보전하고 눈을 감았다. 분위기는 무르익어가는 듯하였다. 정 박사의 특기인 창을 부르기도 하였고 옛날 옛적에 즐겨 불러보던 노래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즐기면서 어려서 자라는 동안 지금까지 꼭꼭 숨겨둔 이야기 실타래도 한 줄 두 줄 강물에 풀어내듯 웃고 즐기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잠자다가 두 번 소변보려고 일어나고 보니 미명이 밝아오는 새벽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명상과 단전호흡을 하면서 아침기도를 하였다. 아침 조반은 매운탕으로 준비하면서 외부 식탁에 상을 차렸다. 푸짐한 진수 조찬(朝餐)이 되었다. 정 회장은 8시 30분에 출발하여야 한다고 서둘렀다.
꼭 참석하여야 할 결혼식에 있기에 먼저 출발한다고 하였다. 월악산의 아침은 너무나 신선하였다. 밤새 신선과 노니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숙면에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체크아웃 준비를 하면서 언제 또다시 얼굴을 볼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작별을 고하고 각자 처한 곳으로 출발하였다. 막내 처제와 함께 승차하여 조용히 출발하였다. 집 사람은 남매들을 모처럼 만난다는 기쁨에 피로한 줄도 잊은 듯하였다. 잠깐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데 많은 위안을 받은 듯하였다. 바라보는 나로서도 기쁜 마음이었다. 막내 처제를 터미널까지 태워주고 차표를 사주려고 했는데 한사코 사양하여 돌아섰다.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기를 바라면서 감사 기도를 하였다. 끝
2020년 8월 21일 금요일 오전
夢室에서 法珉 김광수 씀
#일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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