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남자를 만나게 된 건,
원수 같은 깡패 놈 때문이었다.
그러니깐,정확히 3주 전.
" 야야!!돼지야,이리 나와 봐!! "
아침마다 조깅을 시작으로 체력을 기른다며 3년을 빠짐 없이
운동을 해 오던 나의 원수,한희운.
나른한 일요일 아침부터 곤히 잘만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한희운의 목소리에
부시시한 머리로 거실로 나왔다.비몽사몽인 날 보고 픽 웃더니.
" 오늘 같이 운동하자!! "
" 뭐야.미쳤어?갑자기,왠 운동이야.안 그래도 졸려 죽겠는데 "
눈을 비비는 나를 보며 옆에 있던 쿠션을
내 머리로 던지는 한희운.
쿠션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린 내가 눈을 부릅 뜨고 한희운을 노려보자,
나를 무섭게 노려보는 한희운.그 눈빛에 약간 쫄아버린 나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 이 오빠가 너 생각해서 체력 좀 단련시켜주겠다는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얼른 안 나오냐 "
" 우,웃기고 있어.안 나가.황금 같은 토요일… "
" 한은윤!! "
마지막 고함 소리와 화난 듯 보이는 한희운의 표정에
나는 '알았어,알았어!!'를 외치며 후다닥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후와.하여튼 성격은 지랄 같아서.
민진이 오빠처럼 좀 웃으면서 얘기하면 어디가 덧나지.치사한 인간.
친구가 어쩜 그렇게 다르냐.후우후우.
" 빨리 와 "
" 응.근데 나 11시에 TV봐야되니깐 그전에 와야된다? "
" 동생.내년에 제삿밥 먹고 있을려나 보지? "
" 아.물론 농담이지,넌 왜 그렇게 농담이랑 진담을 구별 못 하냐-하하.가자가자 "
반말이 심기가 거슬렸는지 나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그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문을 여는 한희운.
그렇게,난 녀석에 의해서 처음으로 아침 운동이란 걸 하게 되었다.
" 넌 처음이니깐 공원 2바퀴만 돌자. "
" 2바퀴나?? "
" 난 원래 4바퀴씩 돌아.너 때문에 2바퀴나 줄였는데 "
" 처음인데 반바퀴만 하자.응?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괜히 옆에 있던 벽만 퍼억 퍼억 차는 한희운.
움찔한 나는 아무 말 없이 녀석의 옆을 가볍게 뛰었다.
점점 공원이 가까워질 수록 나는 오늘 죽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순간,
까앙.
깡통이 날아오더니 내 머리를 정확히 강타했다.
그리고 뒤에서 수근수근 소리.
오빠는 킥킥 날 비웃기 바빠 보였고 난 깡통을 들고 천천히 뒤로 돌았다.
" 누구야!!! "
" 아,죄송합니다.쟤 친구가 장난을 치다가 그만. "
내 뒤쪽 남자 무리 중에 한 명이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그 순간,쿵쾅쿵쾅.정말 미친듯이 뛰는 심장.
아침 햇살이 그 남자의 뒤를 은은하게 비추고
난 마치 영화 속 여주인공들처럼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 저기,괜찮으세요? "
남자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 남자가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두근두근.
" 아,괘.괜찮아요.얼른 가 보세요. "
" ..아.네,정말 죄송합니다 "
마지막까지 꾸벅 인사를 하며 날 걱정스럽게 본 뒤
천천히 뒤로 걸어가는 남자.
첫눈에 반하다는 거 이런걸까?그 남자.마치 햇살 같았다.
" 안 뛸꺼냐!! "
" 뛸꺼야,왜 성질 내고 난리야.가자고!! "
그러면서 힐끔힐끔.
그 무리 틈에 있는 그 남자에게 시선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 반짝 빛나는 그 남자의 갈색머리.
그리고,무엇보다 그 남자의 밤하늘같이 깊은 검은 두 눈동자가 내 마음을 꽉 잡았다.
잠시 후.
원수 같이 나를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고 나를 앞질러 가는 한희운을 따라 잡으러
헉헉 되며 뛰고 있을 때 그 남자들이 보였다.아까 전 그 남자들이.
그리고,친구와 웃으며 이야기 중인 그 남자도 보였다.아침 햇살을 닮은 남자.
난 무릎을 잡고 점점 멀어져가는 한희운을 쳐다도보지 않고
그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그러다가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눈이 마주쳐버렸다.
난 깜짝 놀라 멀어져가는 한희운을 향해 뛰었다.
으악.깜짝 놀랐어,그나저나.너무 예쁘다.그 눈.
..
하악,하악.
" 한희운!!좀 서봐라!!이 매너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새끼야!! "
그 말에 5분을 뒤 쫓아도 안 서도 한희운이 우뚝 멈춰서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를 노려본다.
" 뭐라고? "
" 와와,섰다.섰어.후우. "
" 너 아까 전에 뭐라고 했냐.엉? "
" 아까,그 남자.여기 운동 자주 와? "
내 말에 나를 빤히 보더니 풋 웃는 한희운.
뭐,뭐야.그 기분 나쁜 웃음은.
" 왜 웃어 "
" 왜.마음에 들어? "
" 헛소리!!!웃기지마!!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
" 얼굴 빨개졌다.병신. "
" 너무 뛰어서 그런거야!! "
내 대답에 키득키득 웃고는 내 볼을 쭈욱 끌어당기는 한희운.
이거,기분 나쁜데.내가 한희운을 노려보자 내 머리를 푹 누르고는.
" 그래,매일 온다.아침에 30분씩 뛰고 가.일요일마다 친구들이랑 같이 오고.
더 이상 할 말 없음 가자.아직 1바퀴 남았어 "
매일 온다고?.
그럼,한희운은 매일 봤다는 얘기잖아.
..
그럼.
앞으로 매일 그 남자를 볼 방법도 나왔다.
..
.........
.....
띠띠띠띠.
요란한 시계알림 소리.나는 손을 뻗어 뚝 시계를 껐다.
내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나.졸리기만 해서 다시 자려고 엎는 순간.
" 야!!!!조금 있음 그 남자 나올 시간인데,난 갈껀데.넌 안 갈꺼냐!!!! "
" 으..으으.. "
" 나 간다.!! "
" 자,잠깐만!!! "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자 어느새 체육복을 입고 내 방 앞에
기대어 삐딱히 나를 보는 그 놈이 보인다.
그렇게 내 운동은 시작되었다.녀석의 정확한 정보대로 그 남자는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은 혼자 뛰고 있었다.
항상 졸리게 일어난 아침이였지만,그 남자를 볼 때면 모든 피로가 다 풀렸다.
그리고 심장도 미친듯이 뛰었다.그 남자를 향하여.
뭔가 말이라도 걸고 싶은데 그 남자만 보면 입도 떨어지지 않는다.
" 후우 "
그렇게 3주일은 빠르게 흘렀다.
매일 아침 그 남자를 보는게 낙이였다.체력은 한희운의 바람대로 단련이 되었지만,
정작 나의 의도인 그 남자와의 진도는 하나도 못 나갔다.
말 한 마디도 건내보지 못 했다.첫 만남 이후로 말이다.
그 남자는 내게 신경도 안 쓰는 듯 해서 난 더 가슴이 쑤실 뿐이다.
" 젠장 "
이름도 모른다.
그저 성별이 남자란 것 뿐만 알고 있을 뿐.
나이도,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무슨 혈액형인지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도 그냥 그 남자만 보면 심장이 뛴다.첫사랑 때와 비슷한 감정.
" 자자,다시 뛰자고.한윤은.!! "
하필 이렇게 우울한 날에 한희운은 독감에 걸리고
처음으로 혼자 공원을 돌고 있다.오늘도 6시 30분이 되자
그 남자가 공원으로 들어온다.나는 그 남자를 힐끗 보았다.
무언가를 손에 꼭 쥐고 조심스럽게 공원 안으로 들어오는 그 남자.
그 남자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나는 얼른 속도를 내어 뛰었다.
반바퀴 돌았을까.그 남자는 보이지도 않는다.속력을 너무냈구나.싶어
정신을 차리는 순간,앞에서 뛰어오던 여자와 부딪혀버렸다.
" 아,죄송합니다 "
" 아니오.괜찮아요. "
예쁘게 웃으며 걸어가는 그 여자.
무릎이 까졌는지 피가 난다.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상처를 닦고 곧 꽁꽁 묶고나서
절뚝 거리며 공원 입구에 있는 벤치로 향하는 나.점점 다가갈수록
벤치 위에 무언가가 놓여있음을 알게 되고 호기심이 생긴 나는 다리를 절뚝 거려
벤치 가까이로 다가갔다.그러자 보이는 캔커피.
" 응? "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난 그 캔커피를 집었다.
그러자,노란 포스트잇이 보이고 나는 그 포스트잇을 집었다.
[매일 오시는 검은 체육복 숙녀분께 ]
라는 검은 글자가 보이고
난 내 체육복을 내려다봤다.언니가 선물로 사 준 검은색 체육복.
두근두근.그 순간 그 숙녀분이 나임을 깨달은 나는 혹시나 해 매일 공원에
오는 사람들을 떠올려봤다.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아까 나랑 부딪힌
분홍색 체육복을 입은 여자랑 오빠.그리고 아침햇살을 닮은 그 남자와
노부부 두 분
우와아.
그럼,정말 나란 말이야?.
난 조심히 밑에 조그맣게 적힌 글자들을 읽었다.
순간,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걸 꾹꾹 참으며 말이다.
[ 매일 오시는 걸 봤어요.3주 전이죠?
처음에 쟤 친구 깡통에 맞으셨잖아요.기억 나실지는 모르지만요.
처음에는 저도 그냥 한 번 스쳐지나간 여자로 기억했어요.
우스우실지는 모르지만,매일 운동하시는 모습이 쟤 눈길을 끌게했어요.
그리 운동이 익숙치도 않으신 것 같은데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거든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그래도 될까요?만약 허락하신다면,쟤가 한바퀴
돌고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계세요.캔커피는 드시고 계시고요. ]
날 보고 있었다고?
미친듯이 뛰는 심장.그 소중한 보물을 자그맣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떨어질세라 자크를 잠그고 캔커피를 집어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온 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공원에 들어올 때 소중하게 잡고 있던게 이거였구나.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점점 저 끝에서 보이는 남자의 모습.
두근두근 다시 뛰는 바보같은 내 심장.남자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자
더욱 더 미친듯이 뛰는 심장.이렇게 가까이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로.몰랐어.
" 우와.아직 계시네요? "
" 아,네에. "
괜히 어울리지도 않게 작아지는 내 목소리.
남자는 빙긋 웃으며 손을 내민다.
" 같이 뛸래요? "
" ...네!! "
남자의 말에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남자의 손을 잡았다.
좋아.
이렇게 친구로 조금씩 다가가는거야.
이 남자를,언젠가는 나를 꼭 필요로 하는 남자로 만들꺼야.
하지만,그건 나중 문제고
오늘이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날이란 건 분명해.
카페 게시글
인소닷단편소설
[단편]
[김거울.] 아침 햇살
김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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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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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ㅇㅁㅇ 꽤 재미있는것같은이야기인데 , 뒷이야기좀 더써주세요~ ㅠ
헤헤.뒷이야기는 상상에 맡기기 위해서죠.^-^.재밌다니,정말 감사합니다!!
꺄아 재미있어요 ㅇ_ㅇ 잘 읽고 가요 ♡
네.감사합니다.^-^.재미있게 읽고 가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재미있어요!!!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소설 열심히 쓸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