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58,「난」 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나보다 난 한 쪽
먼저 눈을 떴습니다.
학처럼 깃을 펴고
화분에 앉았습니다.
이 세상 잠시 떠날듯
그렇게 피었습니다.
- 이용상의 「난」
나보다 난 한 쪽이 먼저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학처럼 깃을 펴고 화분에 앉았습니다. 이 세상 잠시 떠날 듯 그렇게 피었습니다.
화분에 학처럼 앉았는데 그 모습이 잠시 이 세상을 떠날 듯 피었다는 것이다. 피어있는 난의 모습과 앉아있는 학의 모습, 현실을 초월한 군자와 선비의 고결한 모습 같다. 난은 사군자 중 하나요, 학은 십장생 중의 하나이다.
생자필멸을 ‘잠시 세상을 떠날 듯이 피었다’ 이 한 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생과 사의 길고도 짧은 한 세상 삶이 다 이 한 구절에 있다. 철학은 증명을 요구하지만 문학은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공간이 있어 문학은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사색과 생각이 있는 곳, 시가 그런 곳간이다.
풀잎 끝
파란 하늘이
갑자기 파르르 떨었다.
웬일인가
구름 한 점이
주위를 살피는데
풀잎 끝
개미 한 마리
슬그머니
내려온다
-박종대의 「풀잎 끝 파란 하늘이」전문
풀잎 끝 파란 하늘이 갑자기 파르르 떨었다. 웬 일인가 싶어 구름이 주위를 살피는데 풀잎 끝 개미 한 마리가 슬그머니 내려온다.
언어로 그림을 그렸다. 아니 정밀 스케치했다.
몇 초 밖에 안 되는 짧은 한 편의 영상이다. 나레이터도 필요 없다. 시각적 이미지면 된다. 풀잎, 하늘, 구름과 개미 한 마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여기에는 시인의 감정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시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보여만 주면 된다. 풀잎이면 되고 파란 하늘이면 된다. 구름 한 점과 개미 한 마리이면 된다. 시인은 작품 밖에 있다. 적당한 거리가 만들어낸 시선 처리이다.
꼭 그 거리이어야만 하는 시선 처리, 이것이 바로 시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2.10.26
첫댓글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