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더쿠
1. 킬방원으로 유명한 태종 이방원과 킬비로 유명한 원경왕후은 자식들 모두를 몹시 사랑했으며 특히 세자 양녕에게 말 그대로 전적인 애정을 퍼부었다. 그 흔한 체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건만 양녕은 노답.
2. 이방원과 원경왕후는 사이가 몹시 안 좋았지만 자식 문제에서는 예외였다. 원수지간인 아내 원경왕후가 양녕의 문제에서는 남편의 편을 들 정도였다. 아버지 말 좀 잘 듣고 어른이 된 놈이 제발 말썽부리지 말라는 서찰이 아직도 남아 있다.
3. 세조는 애처가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후궁도 1명, 사가에서 술 취해서 임신시킨 덕중 뿐이었고 그 덕중도 세조가 왕비만 사랑하자 왕실 종친, 구성군 이준 등에게 불륜을 제안하는 편지를 거듭 보내다가 쫓겨났다.
본격적으로 말하자면 세조는 아내밖에 몰랐다. 정사도, 편전도, 사냥까지 아내랑 안 가면 안 하겠다고 떼를 썼다. 덕분에 정희왕후는 유교 조선사 왕비들 중에서 처음으로 말을 탄 왕비가 되었다...(원경왕후는 고려 태생이니 예외)
4.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는 원래 서먹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같이 고생하자 정이 쌓였고 자녀도 무려 6명? 이나 낳았다. 참 불행한 부부가 아닐 수 없다.
5. 연산군도 애처가였다. 비록 엄청난 첩들을 들이긴 했지만 가장 사랑한 사람은 장녹수가 아닌 중전 신씨였다. 완전 막장이 되고 나서도 중전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었다. 아마 임사홍과 장녹수가 아니었다면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다. 이런 부부를 망가뜨린 7일의 왕비 작가는 역사서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
6. 인조, 효종은 미남이었다. 인조는 얼굴과 개념을 바꿔놓은 모양이다.
7. 광해군이 외교적 문제를 잘 처리하긴 했지만, 인간성은 별개였다. 영창대군은 방에 갇혀 아궁이에 불을 계속 피워서 쪄죽였다.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하고 폐비해 버렸다. 뭐 이건 정통성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자신의 총신들을 칼같이 숙청했다. 허균을 중용하다 , 광해를 따르던 대신들이 다 죽자 그는 홀로 남게 된다. 그리고 반정이 일어난 것이다.
8. 중종은 단경왕후를 금방 잊었다. 7년 산 아내를 폐비하자는 상소에 바로 ok. 그리고 폐비한 지 보름 만에 간택을 했다. 그 이후는 여인천하. 중종은 자식들도 여자도 태종, 성종만큼이나 좋아했다. 진성대군 시절 부부사이는 별로 안 좋았던 모양이다.
9. 정조는 싸가지가 없었다. 홍국영이 세도정치의 시초 취급을 받지만 세손 시절 홍국영이 없었으면 아버지처럼 영조한테 죽었을 거다. 팩폭을 하도 잘해서 홍국영이 적당히 막아주고 감싸주어야 했다.
10. 폐비 윤씨(시호 제헌왕후)는 인수대비의 음모로 폐비당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라서 폐비당한 것이다. 후궁들을 회초리로 때려서 기강을 잡는 것은 다른 왕비들도 모두 하는 일이었지만, 윤씨는 그들을 죽이고 낙태시키려 했다. 그리고 성종과의 부부싸움은 그야말로 심각해서 성종은 손톱자국 외에도 늘 얼굴에 멍과 상처를 달고 살았다고 한다. 폐비 의논은 2번이나 있었고 대왕대비 정현왕후까지 그녀를 비난했다.
결정적인 폐비 이유는 성종에게 죽이겠다는 폭언을 몇번이나 한 것과 남편과 그 후궁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비소(독)를 준비하고 중궁전에 숨겨놓은 것을 들켰기 때문이다. 임금을 죽이려고 한 거다! 또한, 후궁들이 인사를 올리면 늘
"주상의 성은을 입으면 죽여버리겠다!!!!!" 를 달고 살았다. 성종은 이후 그녀가 입에 오르내리면 치를 떨었다.
11. 고종의 취향은 소나무다. 명성황후의 외모는 후일 총애한 순헌황귀비 엄씨와 비슷했다. 왜 황귀비냐 하면, 숙종이 후궁을 왕비로 들이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서다.
엄씨의 외모... 확실히 고종의 취향은 소나무임이 틀림없다.
12. 장녹수는 얼굴은 별로였지만 캐동안이었다. 30대 중반이 중딩처럼 생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녹수는 연산군을 때리고 조롱하며 놀았는데 현대로 따지면 SM플레이였다.
12-1. 그녀는 반정 이후 곱게 죽지 못했다. 백성들은 장녹수의 옥문(성기...)에 이 곳에 우리들의 고혈이 다 빨려들어갔다!!!! 하며 성기에 돌을 던졌다. 그녀는 그렇게 죽었다. 연산군과의 사이에선 딸이 있었는데 걘 시집가서 평탄하게 살았다.
13. 명궁 이성계의 자손들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 활을 잘 쏘았다. 이성계는 만 보 밖에서도 활을 쏘아 정중앙에 맞혔다는 레전드 일화가 있다.
14. 이방원은 문신이었다. 그것도 집안 중 유일하게.
15. 장녹수 뺨치게 년이 있었으니 그녀는 귀인 조씨(소용조씨)이다. 이건 많이 알려졌지만 그녀의 딸인 효명옹주의 악행은 알려지지 않았다.
효명옹주는 새언니들을 괴롭히기 위해 엄청난 양의 쌀을 빻으라고 하고, 윗사람인 새언니의 자리를 무품 옹주라는 이유로 빼앗았다. 새언니가 맘에 안 들어서 자기 노비를 친오빠의 첩으로 보냈으며, 결혼 후에도 궁에서 2년 넘게 살았다.
그녀는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이복오빠인 효종과 인평대군이 죽으라고 어머니 조씨와 함께 흉악한 주술과 부적을 파묻었다. 그러나 더는 그 꼴을 보기 싫었던지 첩으로 보냈던 자기 노비가 고발했다. 조씨는 죽었고 옹주는 폐위되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복위되지 못했다.
16. 영조랑 경종은 사실 친했다. 대신들이 이간질을 했고 독살설도 있지만 사실 숙종이 하도 갈궈서 동지애 같은 게 있었다. 영조는 형이 죽고 나서 몇십년이 지나도 형을 그리워했다.
17. 영조는 꽃미남 이었다. 숙빈 최씨가 미녀라서다. 실제로 실록에 장희빈이랑 숙빈 최씨의 미색이 다이다이 떴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장옥정이 더 화려하게 이쁘긴 했겠지만 숙빈은 청순하고 청초한 미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 숙빈은 장희빈이 죽은 직후 이현궁으로 갔다고 전해지는데, 구라다. 적어도 궁에서 10여년을 더 살았다. 이현궁 썰이 나온 건 훨씬 나중의 일이다. 숙종은 최씨를 버리지 않았다. 승자는 최씨였다.
19. 조선시대에는 보쌈단체가 있었다. 범죄조직이 아니다. 유교탈레반 성종 때문에 여성은 재혼을 못 하게 되고, 재혼을 하면 자식이 벼슬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보쌈단체. 홀아비 홀어미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단체였다.
의뢰인이 강가에서 기다리면 보쌈을 해서 홀아비에게 갔다. 그리고 죽었다고 신고한 다음 돈 주고 새 신분으로 갈아타면 그만이었다.
번외-
홍길동전에 나오는 실제 홍길동은 의적이 아니라 갱단의 보스였다. 서자였지만 그의 이복형은 관직에 있었고 조카는 무려 성종의 가장 큰 총애를 받은 후궁인 숙의 홍씨(자식 12명)였다. 빽이 엄청나서 죽이질 못했던 것이다. 갱단 보스 홍길동은 개색기였다
첫댓글 이런거 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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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말보다좋아하는마음먼저 연산군도 비참하게 죽었을걸 ?? 하긴 저정도로 비참하진 않았겠다 ㅠ
이런거 쫀잼임...
19번 ㅅㅂ 실화임?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ㄱㅋㅋ아 조나 우껴
쨈
민비가 귀비 엄씨를 가까이 둔 이유가 박색이라 고종이 관심 안 주겠거니 였는데 주변에서는 민비랑 엄씨랑 똑닮았다 하는 게 킬포
ㄹㅇ 킬포 ㅋㅋㅋㅋ
영조는 회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