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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협동조합 가톨릭 사회교리 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이기우
말과 말살이의 복음화
- ‘천주’, ‘독립’, ‘빨갱이’라는 말, 그 역사와 인식론
집회 27,4-7; 1코린 15,54-58; 루카 6,39-45 / 연중 제8주일; 2025.3.2
1. 말씀의 초점
올해 연중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나자렛 선언에 이어서 군중과 제자들 앞에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 왔습니다. 루카가 전해준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삶에서 얻는 깨달음으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 첫째입니다. 둘째는, 그 깨달음이 위선인지 겸손인지는 행실을 보면 알 수 있으며 말만 들어보아도 생각을 알 수 있으므로, 하느님 나라의 깨달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마음으로 올바른 말과 행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가르침이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평지설교의 결론입니다. 이에 따르면, 하느님의 뜻과 그 나라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해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 삶을 보면 그가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마치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 27장에서도 생각과 말의 관계에 대한 격언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이지요. 말로 이루어진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납니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또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생각을 잘 한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 대한 기도로 통합니다. 좋은 생각은 하느님의 지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행위도 바르게 되어 훌륭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으로 기도를 하면 우리의 생각도 행위도 바르게 됩니다.
또한 오늘 제2독서인 코린토 전서 15장은 복음의 가르침에서 나오는 결론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아 생전에 하느님 나라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복음적인 삶을 살았는지 여부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그가 과연 영원한 생명에로 들어가서 부활한 삶을 살 것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에 따라 생각을 많이 또 깊이 하고, 그 생각에서 나온 말로 대화를 나누며, 그에 따라서 행위를 한 사람의 인생은 부활이라는 승리의 보상을 받습니다.
복음과 독서에 나타난 말씀의 흐름에 따라서 묵상해 보자면, 그 초점은 올바른 생각에서 나온 말을 해야 하고 이 말로써 이루어지는 삶 즉 말살이가 또한 올바라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말과 말살이의 복음화입니다.
이러한 흐름과 초점에 맞추어 우리네 현실을 바라보자면, 세 가지 말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첫째 ‘천주’요, 둘째 ‘독립’이며, 셋쩨 ‘빨갱이’라는 말입니다. ‘천주’라는 말은 2백여 년 전에 이 땅에 들어온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함축하는 말인 동시에, 한국 천주교로 인하여 반만년 만에 비로소 되찾은 한민족의 정신 전통도 함축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독립’이라는 말은 중국과 같은 대국을 옆에 둔 소국으로서 조선조 이래 생존과 외교를 위해 사대를 해 온 종속 상태를 탈피함은 물로, 총칼로 우리 민족을 노예로 삼으려 했던 일제의 식민 상태에서도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 의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를 자주적으로 회복하려는 위대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빨갱이’라는 말은 ‘천주’라는 말이 뜻하는 한민족의 정신 전통에 대해서는 물론, ‘독립’이라는 말이 뜻하는 민족의 자주성과 정통성 회복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자들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민족 분열을 획책하느라 쓰는 말입니다.
2. ‘천주’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고자 할 따름이오.” 라고 박해하는 관장 앞에서 당당하게 고백했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따라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명백하고 뚜렷한 정체성과 자의식을 지니고 신앙 생활을 했었습니다. 이를 상기하고 계승하고자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었던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 천주교회와 그 신자들은 이 말을 되새기며 천주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의식을 확인했었지요.
12.3 비상 계엄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여의도 광장에서 연일 시민 집회가 열렸을 무렵에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시민 자유 발언 순서에서 단아한 용모의 한 젊은 여성이 무반주로도 소프라노 고음을 마음껏 뽐내는, 그야말로 성악가 수준의 노래 솜씨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사후에 발견된 일기에서 작사 작곡된 ‘아무 것도 너를’이었는데, 워낙 노래 솜씨가 빼어나다 보니 그 장면을 찍은 동영상의 유튜브 조회 수가 무려 백만 회를 넘었답니다.(142만회) 그래서 그 다음 집회에서 주최측이 그 여성을 찾아서 무대 위헤 세웠더니, 그녀는 이름이 누구냐는 사회자의 물음에 ‘고하나 리디아’(서울 오류동 본당)라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대신에 그저 “나는 천주교인입니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불렀던 노래, ‘아무 것도 너를’이라는 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더 유명해졌었습니다. 그 소절은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였습니다.
https://youtu.be/dZ8Tv9UROfQ?t=39
본시 ‘천주’라는 용어는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소속 선교사 마테오리치 신부(1552~1610)가 쓴 말입니다. 로마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예수회에 입회하여 예수회 신학교에서 천문, 역법, 수학, 과학, 기계 제작 등을 배웠으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못다 이룬 동방선교의 꿈을 품고 중국으로 왔습니다. 그는 1603년에 가톨릭의 교리를 요약, 정리한 책인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서양 철학자들의 명언 및 사상을 정리한 <교우론(交友論)> 등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마테오리치는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도록 유교 경전을 인용하면서 선교를 벌였고, 체계적인 내세관 교리가 없어서 도무지 가톨릭 교리와 양립할 수 없는 불교를 공박하여 가톨릭의 우위를 알리는 한편, 유교에 대해서는 종교보다 철학 사상에 가깝게 보아 관대한 태도를 취해 제사와 같은 유교적 행사도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양보하여 예수회가 중국에서 포교하기 쉽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보유론(補儒論)적인 문화적응주의적 선교 노선입니다.
한편, 마테오리치는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을 한자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하였습니다. 그는 중국어의 어떤 단어도 기독교의 신 개념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마테오리치는 오랜 고민 끝에 유교 경전에도 나오는 ‘천주(天主)’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하늘의 주인, 즉 천지의 창조주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선택은 풍응경(馮應京)이 『천주실의(天主實義)』 서문에 썼듯이 리치가 ‘이중화중(以中化中)’의 태도, 중국을 빌려 중국을 변화시키는 유연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마테오 리치의 사후 40년 동안 중국인 가톨릭 신자 수는 15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마테오리치는 중국인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천과 상제 개념을 천주와 함께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천주’라는 이 용어가 들어오기 전 조선에서는 ‘천지신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는 하늘의 신(天神)과 땅의 신(地神)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우주와 조화를 맡은 신령을 의미합니다. 고조선 시대 이래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돌보시는 하늘의 신, 즉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올 때 천주교 신자들은 백성들이나 선비들에게 따로 이 말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는 천주교인이오.”라는 고백을 한다는 것은 단지 천주교회에 소속된 신자임을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민족사의 초창기부터 고백해 온 정신 전통을 회복하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민족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한다는 뜻이 담긴 말이 ‘천주’이기 때문입니다.
3. ‘독립’
‘천주’라는 말에 이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은 ‘독립’입니다. 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수립 백 주년을 지낸 이즈음은 지나간 백 년을 돌아보며 다가올 백 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적 전환기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따르면, 다가오는 새 시대를 준비하려면 정의로운 생각에서 나오는 진실된 말과 화합에 적합한 행실과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 을사늑약(1905년)을 맺어서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허울 좋은 거짓말로 한국의 주권을 빼앗고 조선인과 일본인이 동등한 것처럼 꾸며 댔지만, 실상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조선의 백성은 일본인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백여 년 전 조선의 이천만 백성이 일제 식민통치에 저항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용감한 이백만 만세꾼이 거리로 나와서 손수 만든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3월 1일부터 두 달 동안 서울은 물론이요, 남북한 전 지역과 제주에서, 그리고 북간도와 연해주, 미국의 하와이와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살던 해외동포들까지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대한독립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총칼은 물론. 돌맹이조차 없이 오로지 입과 손으로만 만세를 외쳤던 조선의 백성을 일제는 무자비하게 살육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인의 폭력으로 사망한 일본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당시 외쳤던 ‘독립’이라는 말은 평화의 말이었던 겁니다.
3·1 독립선언의 함성을 가슴에 간직한 조선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독립운동의 주체이며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 첫 열매가 민주공화국의 뿌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였습니다. 정의로움의 가치가 민권의식으로, 이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이 생각이 다시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로 나타난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정부 헌장 제1조에 3·1 독립선언의 뜻을 담아 ‘민주공화제’를 새겼습니다. 백 년 전 독립만세를 외치던 그 무렵이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국상 중이었지만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록 일본 제국주의가 강제로 멸망시켰지만 나라가 다시금 왕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랬던 사람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백성이 주인이라는 생각이 진실된 말을 거쳐서 정의로운 행동으로 나타나고 이어서 백성이 주인인 새 나라의 실천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사상범과 빨갱이는 아직 북녘 땅에 공산 정권이 세워지기도 전인 그 당시에, 진짜 공산주의 사상을 간직했던 독립운동가들에게만 적용된 것도 아니라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일본 열도의 바로 북쪽 위, 사할린과 연해주 지방까지 지배하고 있었던 공산 러시아 즉 소련의 위협을 경계하고자 한민족에게도 '빨갱이' 이데올로기를 덮씌우는 예비 검속 조치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좌우를 적대시하고, 이념이 다르다고 찍은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보수와 진보를 뜻하는 우와 좌의 세력은 있기 마련이며 이에 따른 이념의 분화 역시 자연스런 현상인데도 말입니다.
4. ‘빨갱이’
일제의 식민통치는 총체적인 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방 후에 일제 잔재를 청산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이게도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내려온 이 ‘빨갱이’라는 말은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비극의 한가운데 리승만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풍찬노숙을 하며 고생스럽게 독립운동을 하던 대다수의 독립투사들과 달리, 해외동포들이 후원해 준 돈으로 미국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외교적인 독립운동에만 매달리던 그는 지나친 권력욕과 독립운동 자금을 유용한 비리 때문에 임시정부에서 탄핵되기까지 했던 기피인물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맥아더 장군과 미군정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귀국해서는 아무런 지지기반이 없던 국내에서 자신의 심복으로 삼을 친일세력을 복권시키고는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던 건국준비위원회에 모인 백성을 ‘빨갱이’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일제로부터 독립했다는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일제의 악행을 흉내낸 이 행실이 동족을 적으로 삼는 70년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 등 민족 분열을 막고 통일된 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던 정치 지도자들을 비열하게 암살해 버린 리승만이 단독정부를 세우려고 단독선거를 시도하자 그 당시 일본 오사카와 가까운 덕분에 유학파 지식인들이 많아서 가장 민권의식이 앞서 있었던 제주에서 먼저 저항이 일어났고, 리승만과 미군정 당국은 친일파 군경을 시켜서 이들을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제주도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자 이들은 제주도민들을 토벌하겠다고 여수와 순천의 군인들을 동원하려고 했고, 동포를 보호해야 할 군인이 동포를 토벌할 수는 없다며 저항한 군인들은 물론 여수 순천의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리승만은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 처형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빨갱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악인으로 낙인찍는 악마적인 주술처럼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쿠데타로 집권한 친일파 박정희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서는 이념이라고 볼 수도 없는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기도 했고, 광주민중항쟁으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 시절에서도 친일 청산은 커녕 친일을 가장한 반공 노선 위에서 정치적 경쟁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남용되고, 용공세력이니 좌경세력이니 하는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려 왔습니다. 이 독재자들은 인혁당 사건을 비롯하여 동베를린 사건, 구미유학생 사건, 재일유학생 사건, 울릉도 사건 등으로 수많은 조작간첩을 만들어서는 많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여 ‘빨갱이’로 낙인찍어 희생시켰고, 그 가족과 유족들은 연좌제로 묶여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 친일파들이 득세해온 지난 70년 간 ‘레드 콤플렉스’에 빠진 남한 사회는 국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반공종교 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냉전구도를 혁파하고 바야흐로 갈라졌던 남북한이 화해하려는 이 시점에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재를 뿌리는 이들이 전가의 보도로 삼는 것이, ‘빨갱이’들을 믿을 수 없다는 북한증오론입니다. 친일의 언어로 독재의 방패를 삼아서 반공이라는 허울 뒤로 숨어서 행한 이 모든 악행이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입니다. 비상 계엄으로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의 뇌리에도 이 친일잔재 의식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의 부친 윤기중(尹起重, 1939~2023)은 일본 문부성의 장학금으로 유학한 제1호 학생이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요. ‘리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박근혜-윤석열’로 이어지는 친일파 대통령의 계보가 그려집니다. 이런 친일파들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만큼 우리 국민의 민도는 삼일 독립 선언 당시보다도 후퇴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5. 진정한 해방과 독립은 통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의 말씀에, 사람은 말로 평가되는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빨갱이’라는 혐오와 증오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은 정의롭지도 않고 국민화합과 민족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른 생각과 바른 말로 시작하여 화합의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빨갱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합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은 식민지와 전쟁, 가난과 독재를 극복하고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을 뿐만 아니라 4·19혁명과 부마민중항쟁, 5·18광주민중항쟁, 6·10민주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화된 나라를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응원봉으로 어둠을 비추는 빛의 혁명으로 윤석열의 계엄 내란까지도 몰아낼 참입니다. 백 년 전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를 꿈꾸었던 독립선언이 비로소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실체로 실현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아직 반쪽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군사적 긴장과 이념적 대림으로 얼어붙었던 이 땅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어 올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갈라졌던 겨레가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여정에 용기 있게 나서야 합니다. 이 도전은 새로운 시대의 기운입니다. 거짓된 말과 그 안에 담긴 불의한 증오를 몰아내서 서로가 화합함으로써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갈라진 민족까지 화해하고 평화를 이룩한 통일 코리아가 세워질 때까지 이 도전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백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로 외쳤던 독립 선언이 완성될 수 있고 독립이라는 말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힘으로 결정하고 개척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독립, 진정한 해방이 찾아올 것입니다.
6. 민족 복음화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숨막히는 신분차별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신앙의 진리를 자발적으로 들여왔고, 혹독한 조선왕조의 박해를 이겨내고 그 진리를 증거했던 순교자들의 후손입니다. 삼일 독립선언 백주년을 맞아 한국 천주교회가 민족 앞에 민족의 아픔을 저버렸던 친일행각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하며 참회해야 하는 뜻은 새 역사로의 도전 대열에 힘차게 합류하기 위해서 입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에 눈뜬 선각자로서 그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겨레 앞에 생각과 말과 행실로 증거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새 시대로의 도전은 2백여 년 만에 찾아온 민족 복음화의 기회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도록, 십자가 수난을 각오하는 다짐으로 부활의 승리를 희망합시다. 적어도 우리가 쓰는 말이 복음적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천주’, ‘독립’ 그리고… 교우 여러분! 우리부터라도 말을 제대로, 바로 합시다. 우리는 살아서도 또 죽어서도 천주교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