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축제>
박해 받는 이들의 축제 '하누카'
유다인들의 전통 중 축제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축제를 통해서 신앙공동체의 결속을 다 지고, 과거에 있었던 민족의 특정한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를 재확인하고, 그 현재를 희망찬 미래에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다 축제의 특징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휴식과 식사를 통해 서로 즐기며 기뻐하는 것,
둘째로 특별한 기도를 바치고 회당에서 의식을 거행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각각의 축제와 의미에 부합되는 특정한 관습과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유다의 축제에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유다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시대의 관심과 변화되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축제를 통해서 즉 과거의 절절했던 민족 경험을 기억하고 재현하면서
새로운 영감과 그 시대에 필요한 위안을 얻고 삶의 의미를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하누카도 이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제의 의미는 신약의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각각의 절기나 축일이 주는 의미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누카는 기슬레우월(양력 11-12월경) 25일에 시작해서 8일간 계속되는'성전 봉헌 축제'이다.
8개의 촛불에 매일 하나씩 불을 밝혀간다고 해서 '빛의 축제'라고도 한다.
하누카 축제의 유래는 마카베오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중반 경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왕은 왕국내 모든 민족이 그리스신을 숭배하고 그리스 관습을 따를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대해 많은 유다인들이 야훼신앙을 고수하자
안티오쿠스왕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율법을 지키는 유다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하였다.
거듭되는 가혹한 탄압으로 상당수의 유다인들은 이교의 신을 섬겼고 일단의 경건한 유다인들은 순교하였다.
사제 출신인 마따디아와 그의 아들들은 뜻을 같이하는 유다인과 함께 무력 항쟁을 전개하여 마침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그들은 안티오쿠스왕이 더럽힌 성전을 정화하고 기슬레우월 25일에 성전을 다시 봉헌하였다.
그날은 바로 안티오쿠스왕의 성전 모독 칙령이 공포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율법대로 새로 만든 번제 제단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할렐(Hallel)을 노래하며 8일간 축제를 즐겼다.
마카베오 및 그 형제들과 이스라엘 회중은 매년 기슬레우월 25일부터 8일간 승리를 축하하며 제단 봉헌 축제를 지내기로 정하였다.
이것이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성전 봉헌 축일의 유래이다.
그런데 마카베오 상하권 어디에도 하누카 예식의 중심인 빛의 예식의 유래에 관한 몇 가지 전 설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유력한 것은 '기름 전설'이다.
유다 마카베오의 그 일행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 그리스인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기름은 단지 하루분의 양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 하루분의 기름으로 불은 8일간이나 계속 타서 새 기름이 준비될 때까지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누카 빛의 예식은 바로 그 기적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기름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기원 후 70년 성전 파괴 이후 로마의 통치 하에서
이스라엘이 군사적 승리나 저항 운동 등을 강조할 수 없을 때 하누카 축제를 유지․존속되도록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 시대에 하누카는 더 이상 군사적 승리나 독립에의 희망이 아니라
유다인들이 어디에 살건 그들이 소수 민족으로서 살아남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된 것이다.
하누카 빛의 예식이란 8개의 촛대를 한 줄로 배열해 놓고
첫째 날 밤에 제일 오른쪽에 불을 켜 고 그 후 매일 하나씩 왼편으로 불을 밝혀 가는 것이다.
8일에 걸친 하누카 축제의식은 매일 밤 그 빛과 조상들에게 일어났던 기적에 대하여 감사하는 기도로 시작된다.
첫째 날 밤에는 그 순간 에 자신들을 살아 있게 하심을 감사하는 기도가 덧붙여진다.
기도 후에는 짤막한 글과 함께 빛의 예식이 거행되며, 빛이 밝혀진 후 찬송을 한다.
그 외에 매일 밤 특별 기도문과 찬양의 시편 113-118편이 바쳐지고 관련성서 구절이 봉독된다.
하누카 축제 기간 동안에는 다른 축제 때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이 축제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스승에게 선물을 하며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20세기에 와서 유다인들은 하누카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였다.
하누카의 유래를 통해서 다수 민족 속에서 한 소수 민족이
문화적 주체성과 종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다 마카베오와 그 동료들은 다른 민족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찾고자 싸운 것이다.
하누카는 또한 압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 압제 세력이 없애고자 하는 가치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호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마카베오와 그 동료들은 안티오쿠스에 대항해서 싸웠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이 없애려고 한 유다교의 가치를, 성전과 제단을 수호하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진리를 따르는 길은 때로 우리에게 주변 사람들이나 주변 환경과는 철저하게 다른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고집스러움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고집스러운 신념을 안으로 숨기며 살지 않고 겉으로 표방하며 그것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시대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이러한 상황에 부딪쳐 갈등을 겪어 왔다.
이스라엘이 수천 년을 두고 끈질기게 지켜온 하누카 축제는
바로 이스라엘의 고집스런 신념의 적극적인 표방이자 그 신념의 정당함을 재확인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이자 시오니스트인 브랜디스(L.D.Brandis)는 하누카의 이러한 의미를 다음 과 같이 아름답게 요약하고 있다.
하누카는 승리를 축하하는 마카베오의 축제이다.
그러나 단지 군사적 승리를 축하함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대한 영적인 것의 승리를 축하함이며
외부의 적- 그리스인에 대한 승리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한 우리 안에 있는 적을 이겼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하누카는 또한 민중의 이익을 슬그머니 배신해 온 무사 안일한 소수의 특권 권력 계층에 대한 민중의 승리,
즉 귀족 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