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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메이저리그 공식 에이전트 이치훈씨 | |
강이종행/김진석(kingsx69) 기자 |
'희섭이가 수비도중 넘어져 기절했을 때, 아버지와 TV 보다가 엉엉 울기만 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희섭이에게 날아갔죠.'
지난해(2003년) 메이저리그에서 국내선수로는 최초로 주전 타자로서 주가를 올리던 '히맨' 최희섭(24. 시카고컵스) 선수가 6월 8일 뉴욕 양키즈와의 경기에서 수비 도중 넘어져 뇌진탕으로 기절했을 때를 회상하며 최 선수의 에이전트인 이치훈(33)씨는 위와 같이 말했다.
다행히 최 선수는 이후 부상에서 회복했다. 당시 그를 찾아온 에이전트 이씨를 보고 최 선수는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해졌다'라고 회상한 바 있다. 타국에서 생활해야 하는 최 선수에게 이씨는 이미 '친형'과 같은 존재였다.
이씨가 책임지고 있는 선수는 최 선수 외에도 권윤민(26) 선수와 류재국(21. 이상 시카고컵스)선수였다. 메이저리거 봉중근(24.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선수도 직접 에이전트를 해달라고 부탁해 4명으로 늘어났다.
봉 선수는 이씨의 선수 사랑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이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봉 선수는 미국의 슈퍼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박찬호 선수 소속)나 제프 무라드(김병현 선수 소속) 등과도 접촉했지만 결국 이씨를 선택했다고 한다.
최 선수가 부상 때 이씨를 보고 반겼던 것과 봉 선수가 소위 슈퍼 에이전트들의 러브콜을 무시한 채 이씨를 찾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이전트 이치훈씨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지난 16일 광화문 한 커피숍에서 이씨를 만나 그만의 에이전트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부상으로 접은 메이저리거 꿈, 에이전트로 이룬다'
ⓒ2004 김진석 |
이치훈씨는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1루수였다. 아버지 이재성씨 역시 국가대표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다고 할 때 누구보다 반대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반대는 대단했어요. 저는 '하늘나라 가서도 이걸 하고 싶다'고 주장하면서 밥을 굶기까지 했죠. 결국 야구를 할 수 있게 됐죠.'
아들의 의지를 크게 산 이재성씨는 이씨가 대구 계성중 2학년 때 보다 나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미국 이민을 선택했다. 야구 유학길에 나선 이씨는 열심히 운동을 했고 대학 때는 한국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될 정도로 인정받는 선수로 자랐다. 94년에는 메이저리그 토론토 불루제이스 산하 싱글A 마이너리그에서 뛰며 메이저리거를 꿈꿀 수 있었다. 권윤민 선수에 따르면 이씨의 방에는 '온갖 상장과 트로피로 가득할 정도'로 유망주였다. 하지만 그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다.
'슬라이딩을 하다가 무릎 부상을 입었어요. 야구를 계속할 수 없었죠. 메이저리그의 꿈을 버려야 했기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 진학, '예술사'를 공부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를 스카웃 했던 블루제이스의 관계자분이 에이전트를 권하셨어요. 야구 선수로서의 미련을 가지고 있던 제게 '에이전트로 꿈을 이뤄라'고 하셨죠.'
'다들 비웃었지만, 희섭이의 성공을 확신'
고민 끝에 이씨가 작은 회사를 차리고 국내 선수를 찾아 나선 해는 97년. 그는 국내 선수들을 돌아보며 메이저리거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선수가 당시 고려대 1학년이었던 최희섭이었다.
'당시만 해도 박찬호, 김선우 선수 등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지만 힘이 약한 타자들은 안된다는 것이 정설이었어요. 하지만 희섭인 달랐죠. 체격조건과 힘은 제가 마이너리그에서 경험했던 미국 선수들을 능가했거든요. 사람들은 '마이너리그 더블 A만 넘기더라도 손에 장을 지닌다'는 등 비웃었지만 전 자신했어요.'
한국 타자들에 대한 선입견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구단들 역시 최 선수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씨는 최 선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끊임없이 구단에 보냈고 결국 몇몇 구단들과 협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중 시카고 컵스가 80만불의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식 계약 때까지는 8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구단에서 확신을 못했기 때문이다.
'98년 5월이었나요. 그날은 전국대회에 참가한 희섭이가 당시 컵스 스카우트 디렉터 짐 헨드릭이 보는 앞에서 마지막 테스트를 받는 날이었어요. 그런데 녀석이 4타수 무안타에 3연타석 삼진을 당하고 말았죠.
눈앞이 캄캄했어요. 하지만 선수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랬다며 미국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어요. 오히려 계약을 하지 않고 버틴 것이죠. 결국 다음 겨울 미국에서 열린 워크아웃에서 희섭인 50개 중 40개를 담장 밖으로 넘겨버렸어요.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인상깊은 타격을 본 컵스는 최 선수와 120만불에 계약을 했다. 이후 미국에 간 최 선수의 평판이 좋아지고, 그 뒤 미국행 비행기를 탄 권윤민 선수와 류재국 선수에 대한 평도 좋아지면서 이씨의 주가도 올라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선수들도 제게 에이전트를 부탁했어요. 잠시 직접 맡기도 했지만 역시 전 한국 선수들과 함께 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죠.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에이전트는 YES맨이 되면 절대 안된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봉중근 선수까지 가세해 4명이 된 '이치훈 사단'. 이씨는 이들에게 형 같은 존재다. 국내 유일의 메이저리그 선수협 인정 공식 에이전트인 이씨가 생각하는 에이전트는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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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9 오후 5:42 | |||||||||||||||||||||||||||||||||||||||||||
ⓒ 2004 OhmyNews |
첫댓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고맙습니다.ㅋ
정말 감동적이네요 T-T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구료 ~!!!!!
대단하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고맙습니다.ㅋ &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구료 ~!!!!!
따뜻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