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나는 1972년 06월 02일에 5남매중의 막내로 평양시 보통강구역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사회안전성(한국의 경찰청)에서 근무하셨고 삼촌은 중앙당 연락소에서 근무하셨다. 생활의 어려움없이 성장하였다.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였다. 군에 입대하여 12년을 군복무를 하였다. 군에 입대할 때까지 나의 생활은 보통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나서부터 처음 배운 말이 ‘김일성원수님 고맙습니다’ 였고 수령을 위해서 당과 국가를 위해서 충성하며 복종하며 살았다. 그리고 남조선에서 미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괴뢰들을 쳐부시고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지고 군에 입대하였다.
군대에 대한 좋은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나는 군에 나가서 많은 것을 겪으며 배웠다. 훈련을 하고 전쟁과 싸움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군대라고 생각했던 것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군생활이었다.
배고픔과 추위, 여러가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군복무를 잘해서 나라에서 바라는 충성분자가 되려는 생각뿐이었고 그러기 위해 참고 견디며 많은 노력을 하였다.
북한에는 ‘젊어서 고생은 금주고도 못산다’라는 말이 있다. 금같이 귀중한 청춘시절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을 오로지 당과 수령, 조국을 위하여 12년을 깡그리 다 바쳤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군대에서 농사을 짓고, 건설을 하고, 짐승을 키우고, 나무를 베고, 여러가지 일들을 하였다. 그러한 나에게 12년의 보수는 조선노동당원증이라는 징표 하나였다. 그렇게 빈 배낭을 가지고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제대하고 집으로 와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사회에서 일하면서 나는 한가정의 세대주로 한가정을 이끌고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타는 월급과 배급표를 가지고는 한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한 과정에 러시아에 돈을 벌로 나가기 위해 건설회사에 취직을 하고 2007년에 러시아에 건설노동자로 나가게 되었다.
러시아에 가서 인터넷과 핸드폰을 통하여 세계에 대하여 알게 되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서야 세상이 내가 북한에서 교육받고 알고 있던 세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북한에서 내가 교육받고 알고 있는 세상, 곧 자본주의는 사람이 못살 세상이며 오직 북한만이 사람이 사는 행복한 사회라고 배우고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부익부, 빈익부의 세상이며 돈이 지배하는 인간의 사랑과 정이 없는 썩어빠진 세상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알게 된 세상은 내가 교육받은 것처럼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미국에 대하여, 한국에 대하여 자본주의에 대하여, 자유와 인권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북한에서 10년을 벌어도 받지 못할 월급을 러시아에서 하루면 벌 수 있었다. 북한에는 더운물은 커녕, 찬물도 제때에 나오지 않고 난방도 없는데 러시아에는 전기가 하루 종일 오고 난방도 잘 와서 뜨뜻한 방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 모든 현실은 나에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었다. 북한이 얼마나 거짓과 위선으로 선전하고 교육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 평양으로 귀국하여 건설회사에서 일하였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고 통치하기 시작한 때였다.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북한사람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김정일때와 달라질 것을 많이 기대하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젊은 나이에 지도자로 갑자기 계승이 되면서 자기 권력 지반을 구축하기 위해 통제와 감시, 숙청사업을 대대적으로 하였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북한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러시아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집도 사고 가구도 갖추어놓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정치를 보고 나라를 통치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사람들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탈북을 생각한 적도 없고 탈북을 하면 평양에 있는 가족과 친척 형제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탈북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 03월에 모스크바에 건설노동자로 다시 나갔다가 탈북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러시아에 있는 북한 회사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아침 8시부터 밤 1시~3시까지 16시간 이상의 일을 시켰다. 그리고 한 달에 반나절의 휴식을 주고 외출을 한번 정도 시켜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오게 하였다. 월급은 주지 않고 종이게 얼마 벌었다고 싸인하는 식으로 대체하였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노동에 대가를 제대로 지불해주지 않은 것과 휴식과 세탁을 비롯하여 목욕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월급을 재대로 주고 휴식을 보장해달라고 수차레 요구하였지만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노동자들이 국가와 회사 간부들의 돈을 벌게 해주는 돈기계였을 뿐이었다.
혈압이 올라갔고 몸 건강이 나빠졌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집에 보내주지 않고 일만 시켰다. 그러던 중에 한국에 먼저 온 친구와 전화 연계가 되었다. 그가 러시아에 있는 한국선교사분들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회사에서 집에도 보내주지 않자 나는 러시아에 있는 한국선교사분들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이탈하여 유엔난민수용소를 거처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유엔난민수용소로 가던 중에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어 북한측에 넘겨지게 되었다. 북한 호송차에 타려는 순간에 유엔변호사가 도착을 하여 저를 붙잡고 차에 타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경찰서에 들어가 재판을 하여 유엔난민이 인정되어 북한에 북송되지 않고 유엔난민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한국선교사님들로부터 성경을 배우게 되었고 영접기도를 하면서 환상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를 구원해주신 분이 예수님임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태양으로 모시고 교육받고 자랐다. 그들은 인간 하나님이었다. 이세상의 만물은 태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한 태양과도 같은 김부자들을 모시고 70년을 살아오면서 북한 사람들은 아직도 배고픔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자유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알권리도 말할 권리도 이동의 자유도 없이 살아오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어려움과 고생을 겪으면서 그렇게 위대한 수령을 대대로 받들어 오는 북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특히 기독교는 국가 반체제 종교로 접할수 없다. 한국에 오면서 유엔 난민수용소에서 성경에 대하여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원숭이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심을 믿게 되었다. 모든 것은 만든 이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만든이의 목적대로 살아갈 때만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은 물질이 아니라 영, 혼, 육을 가진 영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보이는 물질만이 아닌 마음과 생각과 뜻을 비롯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창조하신것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북한이 왜 그렇게 힘들고 저주받고 있는 땅인줄을 알게 되었다. 참 하나님이 아닌 인간 우상을 섬김으로 하여 빚어진 결과이다.
성경에는 이 세상의 시작과 마침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그대로 이 세상이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다. 사랑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이 이 세상은 화목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 그러한 하나님을 잘 알고자 신학과를 선택하고 공부를 하였다.
공부를 해본지 30년만에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꿈만 같고 믿겨지지 않았다. 한번 해보자고 시작하였지만 북한에서 40여년을 살아온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기도하며 공부를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공부하고 있다.
평양에서 태어나서 자란 저는 굶주림이나 어려움어 없이 북한에서 살았다. 한국에 와서야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온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김부자들을 태양으로, 수령으로 배우며 충성하며 살와왔던 나는 북한에서 말하는 반역자(탈북민)들이 그렇게 많이 와 있을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 많은 탈북민들을 자신이 북한 땅에서 이끌어 내셨고 탈북민들이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고향에 전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알고 배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신학대학교에로 인도하여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소명과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 선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고 앞으로 인도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고 사명자의 길을 가려고 한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었던 평양, 나의 고향 땅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가 회복되는 그 날을 위해 하나님이 부르실 때 언제든지 달려나갈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병사로 준비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