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기다림/도광의
바다 보이는 오두막집
눈 반쯤 털로 덮인
순한 순둥이 할매와 산다
딸 사는 통영까지 가려면
배로 두 시간 반 걸린다
초사흘 달이 안 나와
할매 돌아오지 못하면
푸랭이집 죽담에 앉아
긴 털로 눈 가리우고
할매 기다린다
파랑波浪 물결 안 보일 때까지
사위四圍 눈 멀어 안 보일 때까지
순하고 순한 순둥이 할매 기다린다
-도광의 시집 <합포만의 연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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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갈수록 우악스러워지고 독한 기운이 넘치니 미수를 바라보는 할배가 된 노 시인은 할매를 기다리는 충직한 순둥이가 간절히 보고 싶다. 배운 것 가진 것은 없지만 인정 많은 할매. 그 할매 밑에서 우직한 충정을 다하는 순둥이.
눈도 안보이고, 달도 안보이고, 길도 안보이고, 다 안보이지만 순둥이는 파도 높은 바다를 건너올 할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죽은 듯이 엎드려 있지만 인정 많은 할매를 걱정하며 기다린다.
이 시를 읽으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지고 영악한 마음이 사라지고 내가 순둥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참 멋진 시다.
(수필가 정임표 적다)
* 우악스럽다: '어리석을 우(愚)' + '나쁠 악(惡)', 보기에 미련하고 험상궂고, 무지하고, 포악하며 드센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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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보니 문득 이 시가 떠올라서 답글로 남깁니다. 강건하시길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