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밥그릇 챙기기” vs “검증되지 않은 서비스”...비대면 진료, 어디까지 왔니 [뉴스 쉽게보기]
박재영 기자 jyp8909@mk.co.kr 임형준 기자 brojun@mk.co.kr
입력 : 2023-05-26 06:00:00 수정 : 2023-05-29 10: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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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경기 성남시 성남시의료원 재택치료상황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와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요즘 의료계가 아주 혼란스러워요.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업무 범위를 다시 정의하는 ‘간호법’을 두고 의사 단체와 간호사 단체의 의견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데요. 또 다른 논쟁거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어요. 바로 ‘비대면 진료’예요.
의료법상 진료는 의사가 직접 환자와 대면해서 하는 게 원칙이에요. 비대면 진료는 환자가 의사와 대면하지 않고 화상·음성 통화로 진료받는 것을 뜻해요. 지난 2000년부터 정치적 이념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정부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했죠. 의사 단체의 거센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지만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뜻하지 않게 비대면 진료를 실험해 볼 기회가 찾아왔어요.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어요. 지금까지 비대면 진료를 받아본 환자는 1379만명이 넘는다고 해요.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거예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비대면 진료를 하는 병원도 많이 생기고, 전문 플랫폼 업체들도 등장했어요. 플랫폼 업체들은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환자와 의사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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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2022년 12월 기준/자료=보건복지부
다음 달부터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로 낮아져요. ‘심각’ 단계에서만 허용했던 거라 비대면 진료가 다시 불법이 될 뻔했는데요. 비대면 플랫폼 업체를 중심으로 ‘이제 법을 개정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커졌어요. 의사 단체들은 이번에도 ‘비대면 진료를 금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고요.
이에 정부는 절충안을 내놨어요. 시범사업 형식으로 비대면 진료를 일부만 허용해 보겠다는 거예요. 지난 18일 정부가 공개한 시범사업 초안을 보면, 이제 비대면 진료는 ‘재진’ 환자에 한해서만 허용될 것으로 전망돼요.
여기서 말하는 재진은 ‘초진을 받은 뒤 같은 질환으로 30일 이내에 다시 진료받는 것’을 뜻해요. 다만 고혈압이나 당뇨같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 11개의 경우는 대면 진료 이후 1년 이내라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도록 허용했어요.
또 재진이라 하더라도 비대면 진료는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어요. 병상 숫자가 30개 이상인 큰 병원에선 금지돼요.
비대면 진료로 초진이 허용되는 일부 예외 상황도 있어요. 의료기관이 현저히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감염병 확진 환자 등이 대상이죠. 18세 미만 소아 환자의 경우, 휴일과 야간 시간에만 비대면 초진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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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건복지부
일단 큰 원칙을 세운 정부는 이달 말까지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보고, 다음 달에 최종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인데요. 비대면 진료에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모두 초안에 불만을 표하고 있어요.
비대면 진료, 거스를 수 없는 대세야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은 비대면 진료가 단지 병원에 가기 귀찮은 사람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고 말해요. 큰 병원이나 실력 있는 의사들은 수도권에 몰려 있잖아요.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들은 지난 3년간 비대면 진료로 인한 의료 사고가 없었던 만큼, 안정성은 충분히 입증됐다고 주장해요.
플랫폼 업체들은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건, 사실상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해요. 3년간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들 중 대부분이 초진 환자였다고 주장하죠.
재진 환자라 하더라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게 플랫폼 업체들의 입장이에요. 시범사업 초안을 보면 정부는 초진 때와 같은 증상으로 같은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만 재진으로 인정하기로 했어요. 만약 갑자기 밤에 아파서 비대면으로 재진을 받으려 해도, 초진을 해줬던 의사가 퇴근했거나 ‘비대면 진료는 안 받는다’라고 하면 허사가 되는 거예요. 초진을 받았던 병원의 다른 의사한테 재진을 받는 것도 불가능해요.
또 환자가 재진을 받기 위해선 미리 병원을 찾아가 관련 서류를 구비해 둬야 한대요. 비대면 진료의 핵심은 편리성인데, 재진만 허용하겠다며 이것저것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 놓으면 환자들이 아예 이용을 포기해 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거예요.
비대면 진료, 득보다 실이 많아
의사 단체들은 비대면 진료로 얻을 수 있는 환자들의 편리함과 플랫폼 업체들의 이익보다, 오진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거라고 우려해요. 의사들은 ‘환자가 진료실에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관찰하는 순간부터 진료가 시작된다’라고 말해요.
환자의 표정이나 걸음걸이, 동작, 소리, 냄새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질환에 대해 추정하고 진단하는 게 진료의 기본이라는 거예요. 대면 진료는 오랜 시간 의학계가 지켜온 원칙이고, 다른 어떤 방법보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받은 진료 방식이란 주장이죠.
환자는 지난번이랑 똑같은 병이라 생각해 비대면으로 재진을 받았지만, 사실 다른 병이 생겼을 수도 있잖아요. 병원에 가는 수고를 좀 덜려고 하다가 더 심각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기회를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또 의사 단체들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이 환자들의 개인정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해요. 실제 지난 10일 개인정보 보호위원회가 일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에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어요. 이들이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관리에 미흡했다는 게 그 이유죠.
비대면 진료는 받아도 약 배송은 못 받아요
이번 시범사업엔 약 배달과 관련된 내용도 담겼어요. 지난 3년간 환자들은 비대면 진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었는데요. 정부가 내놓은 초안을 보면 약 배송은 원칙적으로 금지돼요.
이를 두고 약 배송을 금지한 것은 ‘반쪽짜리 비대면 진료’라는 불만이 나와요. 기껏 집에서 진료를 받아도 결국 약을 받으러 약국까지 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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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약사들은 약 배달 허용을 강력하게 반대해 왔어요. 약사의 복약 지도가 없이 약을 먹는 건 위험하고, 배달 중 약품이 손상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죠. 또 배달이 허용되면 특정 플랫폼 업체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해요. 음식 배달 플랫폼처럼 입김이 세진 회사가 서비스 이용료나 수수료를 확 올릴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비대면 진료, 어디까지 허용될까요?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요. 플랫폼 업체들은 ‘국민의 건강을 위한 혁신적인 서비스가 의사, 약사들의 밥그릇 챙기기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라고 주장해요. 의사와 약사 단체는 ‘의학 분야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서비스를 당장 편리해 보인다고 해서 도입하는 것은 도박이다’라고 반박하는데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최종안을 조율하고 있는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이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매일경제 ‘디그(dig)’팀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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