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판관9,15)
판관기 9장 15절은 요탐의 우화 중에서 백미(白眉)라고 본다. '와서 ~피하여라'로
번역된 '뽀우 하쑤'(bou hasu; come and take refuge)는 명령형이 연속으로 쓰인
반복 명령구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두 명령어가 '와우'(wau)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뽀우 하쑤'는 '오라! 피하라!'는 의미로서, '와서 ~피하여라'는
한글 새 성경 번역의 어감보다 명령의 강도가 훨씬 세다.
여기서 '피하여라'는 의미로 번역된 '하쑤'(hasu; put your trust; take refuge)의
기본형 '하싸'(hasa)는 위험을 피해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편7,1; 2사무22,31; 잠언30,5).
가시나무에는 태양의 뜨거운 빛을 가릴 만한 넓은 나뭇잎이 없다. 그래서 그늘을 만들 수
없으므로, 자기 그늘에 피하여 보호를 받으라는 가시나무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언어도단이다.
오히려 주변 나무들이 그에게 가서 피한다면 열기를 식히기는커녕 온 몸이 가시에 찔려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우화는 스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운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고발하는 것이다.
'불이 터져 나가 ~ 삼켜 버리리라'
'삼켜 버리리라'로 번역된 '웨토칼'(wethokal; and consume; and devour)의 원형 '아칼'(akal)은
'삼키다', '먹다'는 의미로서, 기본적으로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이다(탈출16,35).
'불'(fire)을 의미하는 명사 '에쉬'(esh)와 함께 '사르다'(burn)는 뜻으로 쓰이는 동사
'사라프'(sarap)가 있음에도 불구하고(탈출29,34; 레위9,11), 여기서 굳이 '아칼'(akal)
동사를 쓴 것은 사람이 음식을 단숨에 먹는 것처럼 불이 향백나무들을 집어 삼키듯이
살라 버릴 것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즉 '에쉬 ~ 웨토칼'(esh ~ wethokal)은 불이 모조리 태워 소멸시켜 버릴 것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상징적 의미는 스켐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우지 않으면,
아비멜렉이 그들을 모조리 진멸시켜 버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런 비유적
표현을 통해 요탐은 아비멜렉의 포악성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탈무드에는 팔레스티나 사람들이 10가지 정도나 되는 다른 종류의 나무들을
향백나무라고 불렀다고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에레즈'(erez)라는 단어는
오직 레바논의 향백나무만 지칭할 뿐, 다른 나무들을 지칭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 나무는 주로 건축용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목재가 크고 굵을 뿐 아니라
부패에 강하고 해충으로 인한 파손을 막아 주는 훌륭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백나무는 성전의 내부 장식용으로 쓰였고(즈카3,7), 배의 돚대(에제27,5),
종교 의식(레위14,4.51.52; 민수19,6)의 용도 등에 사용되었다.
여기서 '향백나무들' 즉 '아르제'(arze; the cedars)는 '에레즈'(erez)의 복수
연계형이다. 이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은 아마 높은 지위에 있던 이스라엘의 대신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시나무와 같은 무가치하고 해로운 아비멜렉이 유익하고 사회에 요긴한 대신들을
진멸한다는 것은 큰 죄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