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화합
외국에서 흔히 갓 독립한 대학생들이
집세의 부담을 나누기 위해
같이 사는 형태를 ‘하우스세러링House Sharting’
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가 어려워지고
주거비용이 치솟다 보니
근래에 주목받고 있다.
보통은 주거비용을 절약하고자
하는 목적 외에는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끼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부분을 공유하다보니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부엌이나 화장실 등 공유공간사용법,
청소, 쓰레기 배출 등 생활습관이나
가치관이 다르면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부처님 당시 ‘꼬삼비’에서 있었던
화합할 줄 모르는 비구들의 일화도
이런 동거 중 겪게 되는 갈등을 보여주는 예이다.
계율을 가르치는 한 율사 스님과
교학을 가르치는 한 강사 스님의 다툼은,
화장실에서 사용하고 남은 뒷물을
버리지 않고 그냥 나온 강사 스님의
한 번의 실수로 시작된다.
결국엔 각자의 제자들과 스님들을
후원하던 신도들까지 두 파벌로
갈라지게 하고, 지상에서 하늘의
범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부들이
다툼에 동화된다.
이를 전해 들은 부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서 이 비구들을 훈계하시지만,
그래도 화해하지 않는 비구들을 두고
홀로 안거를 떠나신다.
부처님을 떠나게 한 승가의 분열에
실망한 재가 신도들은 스님들께
올리던 공양을 중단했고, 그제서야
비구들은 서로 참회하며 화해를 하고
부처님을 다시 모셔 온다.
이때 이들을 위해
부처님께서는 승가가 청정하고
화합하기 위해 잘 지켜야 하는
여섯 가지, 육화합六和合을 설하신다.
첫째, 신화동주身和同住,
몸으로 화합하여 함께 머물고,
둘째, 구화무쟁口和無諍,
입으로 화합하여 다툼이 없으며,
셋째, 의화동사意和同事,
뜻으로 화합하여 함께 일하고,
넷째, 계화동수戒和同修,
계로서 화합하여 함께 수행하며,
다섯째, 견화동해見和同解,
견해로 화합하여 함께 이해하고,
여섯째, 이화동균利和同均,
이양을 고르게 해서 균등하게 나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같이 모여서 살고 있지만,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살고 있는가?
말투는 부드럽고 자비롭지만,
내용으로는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적은 없을까?
훌륭한 말솜씨로 도와 주는 척하면서
상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을까?
상대의 의견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모든 규칙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고 있는가?
아무리 좋은 결정이더라도
모두가 동의/부동의 할 기회가 있었는가?
“어리석은 자는,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다투고,
지혜로운 이는,
잘 알기에 다투지 않는다.”
『법구경』제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