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현지 시간) 러시아 북서부 프스코프주(州) 프스코프시(市)에 있는 국제공항 등 본토 6곳이 대규모 드론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프스코프 공항에 계류중이던 러시아 일류신(IL)-76 군 수송기 4대(러시아 발표는 2대)가 파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프스코프 공항은 민군 공용이라고 한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일류신 수송기 2대는 드론 폭발로 불길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프스코프 공항 외에도 모스크바 외곽과 브랸스크, 칼루가, 랴잔, 오룔도 드론 공격을 받았다.
프스코프 공항에서 불타는 러시아군 수송기 일류신-76/영상캡처
주목을 받은 곳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무려 700㎞나 떨어져 있는 프스코프다. 발트해 연안 국가인 에스토니아(프스코프까지 80㎞)와 라트비아, 핀란드만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30일 "러시아와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최대 규모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며 우크라이나 드론이 어떻게 프스코프까지 갈 수 있었는지 분석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영국 BBC방송은 "우크라이나가 레이버드-3(Raybird-3)와 베버(러시아어로는 보베르·Бобер) 등 비행 거리 1천㎞가 넘는 드론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러시아의 방공구역을 우회하고, 바람의 영향을 받은 그 드론들이 과연 우크라이나에서 프스코프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프스코프 공항을 공격한 드론이 최소 10대(러시아 블로거 주장)라면, 비행 중에 드론이 포착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공격한 드론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나 벨로루시, 발트해 연안 국가에서 발사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BBC는 그러나 "드론의 크기로 볼 때 러시아나 이웃 국가로 비밀리에 운반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발사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고 반박했다.
BBC의 결론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사된 드론을 러시아 방공망이 요격하지 못했다는 것. 드론이 낮은 고도로 날아갈 경우, 레이더 추적이 어렵고, 밤에는 육안으로 확인도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특히 러시아가 전날 브랸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했다고 한 발표를 근거로 우크라아나는 러시아의 방공망 위치를 먼저 확인한 뒤 프스코프로 가는 드론 경로를 입력했을 것이라고 BBC는 추론했다.
불길에 휩싸인 러시아 프스코프 공항/텔레그램 영상 캡처
드론 공격을 받은 프스코프(표시)의 위치. 맨왼쪽 위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그 위쪽이 에스토니아다. 맨 아래에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가 있고, 맨 오른쪽 큰 글씨가 모스크바/얀덱스 지도
스트라나.ua가 우려하는 것은,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 (프스코프 공항에서 약 200㎞ 떨어진) 핀란드만의 공해상에서 드론이 발사됐다는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들의 집요한 주장이다. 나토(NATO)의 직접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러시아 본토에 대한 모든 공격 목표는 서방 정보기관에 의해 우크라이나 측에 제공됐다고 보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러시아 유명 방송진행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이 주장들을 근거로 "발트해 연안을 쓸어버리자"고 촉구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아직 프스코프 드론 공격에 대해 어떠한 논평도 내놓지 않고 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조사중"이라고만 했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군은 드론의 발사 지점에 대해 결론을 낸 뒤 대응및 보복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며 "드론이 나토국가에서 발사됐다고 공식 선언하면, 러시아와 나토는 충돌 직전으로 치닫게 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크렘린이 나토와의 긴장 수위를 그렇게까지 올릴 것인지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스트라나.ua는 "이번 공격이 러시아의 군사적 잠재력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전쟁의 방향을 바꾸고, 러시아를 새로운 고민속으로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모스크바 방어를 위해 주변에 방공망을 확충하면, 수많은 다른 지역의 군사·경제적 목표물에 대한 보호망이 허술해지고, 이 기회를 우크라이나가 잘 살리면, 최전선에서 운용 중인 방공망을 프스코프나 다른 지방으로 이동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드론 공격만으로도 러시아를 코너로 몰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선택은 '방어보다 공격'이 될 것이라고 이 매체는 내다봤다. 추적하고 어렵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드론으로 우크라이나를 더욱 많이, 자주 공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러시아군이 개전 초기에 FPV 드론을 사용해 목표물을 타격하는 우크라이나를 보고 배운 뒤 그대로 따라했다는 게 주요 논거다.
러시아의 미사일 드론 공격은 우크라이나측의 격추 주장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를 냈다. 아래 사진은 아샨 슈퍼마켓의 지붕이 뚫린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스트라나.ua
러시아도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와 지토미르 등에 미사일·드론을 퍼부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순항미사일 28기 모두와 공격용 드론 16대 중 15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우크라이나측의 피해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키예프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피해가 확인됐고, 사망자도 2명이 나왔다. 또 하르코프스카야 지하철역 근처의 슈퍼마켓 아샨(Ашан)에도 미사일(잔해)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