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과 자갈 위를 달려 산 정상을 정복한 이보크와 자유여행 1일차.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넘나들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이보크의 능력 덕분에, 몸과 마음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영원한 악동 같았던 이보크가 이제 사춘기를 끝내려 했는지, 형제들과 같은 옷으로 갈아입고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멀리서 언뜻 보면 형님 벨라와 비슷해진 외모에 헷갈릴 수 있을 만큼 닮아진 모습.
개인적으로는 처음 등장했을 때, 한 눈에 반할 만큼 매력적이던 스포티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기억이 남아, 패밀리룩을 따른 모습이 살짝 아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브랜드들의 패밀리룩 정책으로 아쉬운 소리를 들은 신차가 비단 이보크뿐이던가. 어떤 재미있는 차든, 대중성을 띄기 시작하면 고정 팬들은 실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소수다. 이보크의 지갑을 두둑하게 해줄 더 많은 주인들에 비하면.
예컨대 이보크가 갖고 싶었으나, 뒷좌석 카시트에 아이를 태우고도 편안한 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했던 아빠들과 같은 이들 말이다.
대중성이란 하나의 종착점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에 도달했다는 건 성장이 끝나고 성숙에 들어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춘기를 마치고 형제들과 제법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신형 이보크를 처음 봤을 때는 또 하나의 순도 높은 악동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수많은 모델들이 그랬듯 점점 더 무난해지고 무뎌졌을 것이라고.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속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함께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옛말에 ‘함께 여행을 가봐야 그 사람의 진가를 맛 볼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목적지는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켄싱턴 호텔. 사람들로 붐비는 여름 바다보다 한적한 산에서 여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내려갈 때는 대관령에 위치한 삼양목장을 들렀다 갈 계획이다. 가는 길목이기도 하지만, 양몰이 공연과 양 먹이주기 체험 등 가족과 함께 즐길 거리가 많다는 지인의 추천이 한몫했다.
운전석에 오르기 전 변한 이보크의 모습을 한 번 훑어보기로 했다. 8년만에 풀 체인지를 거친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기존 디자인과 유사한 느낌의 벨트 라인과 경사진 보디 라인은 유지했다.
또한, 벨라처럼 자동 전개식 도어 핸들로 매끈한 외관을, 브랜드의 헤드램프 디자인 언어를 계승해 고급스러운 스포티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슈퍼슬림 헤드램프와 올 라운드 슬림 리어램프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포인트다. 오늘 시승차인 D180 SE 모델부터 적용되는 프리미엄 LED 헤드램프는 시그니처 주간 주행등을 포함하고 있어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프리미엄 LED 헤드램프의 경우 자동 헤드램프 레벨링 및 자동 하이빔 어시스트 기능을 기본으로 적용했다).
또한 새로운 보디 컬러로 한국 수도인 ‘서울’에서 이름을 가져온 서울 펄 실버를 추가했는데, 은은한 펄이 추가된 화이트 컬러가 고급스러움을 한껏 끌어올렸다.
실내는 이전 모델보다 21mm 길어진 휠베이스 덕분에 조금 더 여유로운 모습이다. 뒷좌석 레그룸이 기존보다 확실히 편해졌다. 효율적인 실내 설계를 통해 총 26ℓ의 추가 수납공간도 확보했다. 프런트 도어 포켓에는 1.5ℓ 물병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도 숨어있다.
더욱 커진 글로브 박스와 센터 커버는 여유로운 수납을 돕는다. 적재공간 또한 기본 591ℓ에서 뒷좌석을 폴딩하면 최대 1383ℓ까지 늘어난다.
이전 이보크는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이 생각보다 작아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는 크게 적당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신형은 그런 오명을 벗어 던지기 충분해 보인다.
이보크만의 개성 있는 외모가 살짝 퇴색된 것이 아쉽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편안한 발공간을 확보한 뒷좌석과 살짝 넓어진 트렁크 공간, 조금 더 부드러워진 승차감 등 정상진화를 거치는 대신 내준 작은 손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운전석에 앉으니, 가장 먼저 센터페시아에 두 개의 10.2인치 터치 스크린 디스플레이, 터치 프로 듀오가 눈에 들어온다. 이를 중심으로 버튼을 최소화해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모습도 인상적이다.
국내 최초로 SK 텔레콤과 협업을 통해 T 맵 x 누구(T map x NUGU) 인공지능 음성비서(Virtual Personal Assistant)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데, ‘T 맵 x 누구’ AI는 운전자가 주행 중 터치 과정 없이 목소리만으로 편리하게 ‘재규어 랜드로버 T 맵’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룸미러는 후방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볼 수 있는 클리어 사이트 룸미러 기능도 올려 스마트함을 더했다.
시동을 걸고 기어를 바꾸려 보니, 이보크는 다이얼이 아닌 스틱형 기어레버로 스포티한 성격을 한껏 강조해 놓았다. 어서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기어레버를 당기고 가속 페달을 밟아본다.
흥분한 마음에 힘을 제법 쏟아 가속 페달을 밟았음에도 울컥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출발하는 몸놀림에 잠시 잊고 있던 모델명이 다시 떠올랐다. 오늘 시승차는 브랜드 최초로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춘 2.0ℓ 디젤 모델.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m·g의 힘을 낸다.
이보크는 레인지로버 최초로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췄다. 차량에 장착된 BiSG(Belt Integrated Starter Generator) 및 리튬 이온 배터리가 차량 운행시 에너지를 저장하여 엔진 구동을 보조한다.
시속 17km 이하로 주행할 경우 엔진 구동을 멈추며, 저장된 에너지는 주행 재개 시 엔진 가속에 사용된다. 하지만 촬영 날은 평일이었기에, 도심은 물론 고속도로에서도 크게 정체 현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관령 삼양목장에 도착해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2와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의 덕을 톡톡히 보며 험로를 돌파해 나갈 수 있었다.
삼양목장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초입의 자갈길과 흙, 모래 등 험로가 이어졌지만 아래 화면 메뉴 중 지형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메뉴에 터치 한 번이면 원하는 모드로 척척 옷을 갈아 입었다.
이 시스템은 정교한 인텔리전트 시스템을 사용해 현재 주행 조건을 분석하고 가장 적합한 지형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선택한다. 다이내믹, 에코, 컴포트, 잔디밭/자갈길/눈길, 진흙 및 요철, 모래, 암반 저속주행 등 7가지 모드 중 선택할 수 있고, 자동 설정도 가능하다.
덕분에 불안한 노면에서 안정을 넘어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이보크는 형님들과 같이 서스펜션의 높이, 엔진 반응, 트랙션 컨트롤 개입 등을 조정해 어떤 환경에서도 최상의 드라이빙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드넓은 목장을 떠돌다가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할 때, 평창 켄싱턴 호텔에 도착했다. 온 종일 이보크를 몰다보니, 형제인 벨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에는 무척이나 참신했던 외모와 실내 디자인도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곳곳에서 같은 유전자를 느낄 수 있다는 점과 지루한 점. 이 두 요소는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브랜드에 늘 따라다니는 동전의 양면 같다.
결과적으로 이는 막내가 이제는 형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이야기. 새로워진 이보크는 휠베이스를 늘리고 실용성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형님들에 밀리지 않는 첨단 기능들로 레인지로버 가문의 든든한 막내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물론 그는 이미 전 세계 75만대, 국내에서도 1만대 이상 판매를 달성하며 브랜드 역사상 가장 빠른 판매량 증가의 기록을 가진 무서운 막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