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64,「고슴도치」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돋아난 이 가시로
너를 찌른 적은 없다
밟히지 않으려는 자존의 몸짓일 뿐
움츠려
죽은 척도 한다
산다는 게 그렇다
-이광의 「고슴도치 」
가시로 찌른 적이 없다. 밟히지 않으려는 자존의 몸짓일 뿐이다. 움츠려 죽은 척도 한다. 산다는 게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누가 그랬다. 세상엔 상처를 받은 사람만 있고 상처를 준 사람은 없다고. 사실이 아닌데도 이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떡인다. 상처를 받았으면 상처를 준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상처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어불성설도 있는가.
자존의 몸짓, 죽은 척도 한다는 이 말이 폐부를 찌른다. 밟히지 않으려고 몸짓을 했고 살려고 죽은 척도 했다. 자존의 몸짓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이고 죽은 척 했다는 것은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그랬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디 상처를 받지 않고, 어디 상처를 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상처를 주고 받는 것도 다 시가 되는 것이다. 명품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푹 익어야 비로소 명품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밑줄 친 예상문제
하나도 못 풀었네
백발이 다가와서
귀띔을 하련마는
이제사
어쩌란 거냐
연필심이 없구나
- 이종덕의 「인생」
밑줄 친 예상문제 하나도 풀지 못했다. 백발이 다가와서 귀뜸을 해준다. 연필심이 없는데 이제 와서 어쩌라는 말이냐. 다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거울은 제 자신을 비출 수 없고 저울은 제 스스로를 달지 못한다. 칼은 제 자신을 찌를 수 없고 중은 제 머리를 깎을 수 없다. 예상 문제가 있다 해도 인생이 인생의 예상문제는 풀 수가 없다. 나이 들어 백발이 귀뜸해 주어도 이미 연필심이 닳아 풀 수가 없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뒤늦게 깨닫게 되는 인생만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요, 우리가 살아갈 인생이다. 후회하지 않은 삶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 자리에는 언제나 시가 있다. 누구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시가 있는 자리이다.
-신웅순, 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64,「고슴도치」외,주간한국문학신문.2022.12.21.
첫댓글 올해는 시 공부를 게을리했습니다.
새해에는 좀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년말 즐겁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핸 시조 공부했으면 싶어요.
재미도 있어요.
님은 그 이상일거예요.
겨울강 잘 살펴 건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