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9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요시야는 유다의 왕이 되어 다윗의 길로 행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자로 서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자였습니다.
그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지요.
주의 말씀을 따르는 자, 그가 주님의 자녀요 백성임을 믿습니다.
이 종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가 되길 원합니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드러날지라도 은밀한 곳에서 숨어 감추는 자가 아니라 나의 비참함을 능히 수용할 줄 아는 용기를 더하여 주소서.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드러나는 한 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14:1-16
제목 : 지혜 여인과 우매 여인의 차이.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 나의 묵상
(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집을 세우는 자가 있고 그 집을 허무는 자가 있다.
성경은 집을 세우는 자를 가리켜 지혜 여인이라 하고, 집을 허무는 자를 가리켜 우매 여인이라 한다.
집을 짓는 자에게 있어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따라서 집의 기초는 반석 위에 하는 것만큼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반석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지으면 비록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창수가 날지라도 집이 무너지지 않고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 여인은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이다.
그러나 반석이 아니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도 있다.
반석 위나 모래 위나 집을 지을 때는 잘 모른다.
어쩌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훨씬 쉬울 수도 있다.
바닥을 파내기도 쉽고 바닥을 파낸 구멍에 기둥을 세우기도 쉽다.
세우는 건물도 멋지고 화려하게 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며 바람이 불면 금방 알게 된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기초가 약하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고 넘어지게 된다.
이런 사람은 듣기는 들어도 행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는 어떤가?
많은 경우 이처럼 모래 위에 집을 지어놓고 열심히 기도한다.
이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위해서 말이다.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자의 모습인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그것도 빨리 무너질수록 하나님 앞에서 의가 빨리 세워지고 그 무너진 터 위에서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참된 지혜는 만물 위의 지혜이며 그것은 곧 생명이다.
세상의 지혜는 모래 위에 지어 놓은 집을 무너뜨리지 않고 잘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만물 위의 지혜는 무너진 그곳에서부터 생명이 싹이 터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가 바로 정직하게 행하는 자로써 바른 길을 가며 말씀으로 사는 자이다.
말씀으로 집을 짓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씀의 집은 그 자리가 바로 생명의 샘이 된다.
그곳이 바로 주님과 사귐이 있는 성소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이 자기 보기에 바른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은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만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보다 저렴하게 지을 수 있다.
모래 땅이기 때문에 공사하기도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 이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모래 위에 집을 많이 짓는다.
이런 사람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이 나온다.
자기가 보기에 옳고 바른 길은 현재 교회에 다수가 따르는 길이다.
설교가 그러하며, 찬양이 그러하고, 목사나 성도들의 사역이 그러하며, 그런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예배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설교자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 즉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원하는 설교를 한다.
그래야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 목사들이 얼마나 성도들에게 속고 있는가?
아니 이것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 주님과 사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예배의 주인이신 주님은 계시지 않고 목사와 성도들 사이의 인간적 커뮤니케이션만 있을 뿐이다.
찬양 역시도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 내 감정이 고양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감정이 고양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으로 은혜로운 찬양을 불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도자가 선곡한 찬양이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르지 않는다.
사역도 예배도 생명 없이 하게 되면 그야말로 사역, 즉 일이 되고 만다.
그것을 해치운 것으로 인하여 자기만족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아닌 것이다.
결국 사사시대에 하나님이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백성들 심지어 제사장들까지 타락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탄식 섞인 한숨이 이 말씀에서 배어나온다.
(삿 21:25)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는 자들의 결국은 사망이다.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보기에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며 다수가 가는 길을 따르는 자들의 결국 역시 사망이다.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나서, 저렴하면서도 쉽게 집을 지었다고 나의 지혜를 자랑하던 자였다.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을 할 때, 말씀 없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집을 지었는지 모른다.
내 나름대로 지혜롭다고, 그 길이 바른 길이요 옳은 길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고 또한 사역하였다.
설교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의식하여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곤 하였다.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하여 더욱 성도들의 필요와 소원에 귀를 기울였다.
나야 말로 정말이지 좋은 양식을 주는 어미가 아니라 쓰레기를 버무려서 잡탕을 만들어 최악의 불량식품을 영적 자식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나의 만족에 즐거워하곤 하였다.
찬양을 선곡할 때도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은혜롭게 부를 수 있는 찬양을 고를까 하면서 사람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찬양이 선곡의 기준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감정과 감정의 고양에 있었다.
이런 나는 예배하는 자이면서도 유사한 예배를 드리는 자이다.
찬양을 하고 멋지고 은혜롭게 찬양을 하지만 유사한 찬양을 하는 자였다.
사역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나의 이름과 업적을 내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유사신앙의 효시인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가는 자이다.
내 생각에는 옳고 바른 길인 줄 알고 갔으나 필경 사망의 길이었음을 복음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다.
참 복음은 생명으로 살게 되어 있다.
나는 생명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이다.
이러한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로서 정말 비참한 자이다.
그런 나에게 복음이 찾아왔고 나는 그 복음으로 생명을 얻었다.
이제는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 생명으로 살아간다.
내가 나아갈 곳은 창세 전 아버지 집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가야할 영원한 나라, 아버지 집, 아버지 품안에 거하며 주님이 주시는 그 영광을 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나도 나를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용납하여 주시고 주의 자녀 삼아주시오니 감사합니다.
죄에 얽매여 살던 나를 자유케 하셨사오니 주의 은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립니다.
나를 항상 겸손케 하시고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