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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토번 인구수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이제서야 답장을 드리네요. 아주 느리게 답변을 드린점 대단히 죄송합니다.(제 몸뚱아리가 게으러 터져서 그러니 이해해 주십쇼.) 솔직히 저도 정확한 토번 인구는 기록이 없으므로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추측을 해보면 송첸캄포(松贊干布) 시기의 경우 가르통첸(祿東贊)이 루첸제도를 만들어내는데 이때 보면 1개 루첸은 4천호(戶)로 이루어지며 루첸은 총합 4개가 있었다고 나옵니다. 또 각 1개 루첸마다 1만 정예병이 있다고 나오는데 1호(戶)는 보통 5명으로 계산하니 총합 8만 명에 군사가 4만인 셈입니다. 그리고 친위대로 다시 1천호를 두었다고 하니 12만 5천명인 셈이죠. 이게 인구라면 심히 ㅎㄷㄷ하지요.
하지만 알아둘건 이건 초기 루첸 제도로서 아직 토번이 설역고원을 통일하지 못했던 때입니다. 이후 샹슝국을 제외한 설역고원의 다른 나라들을 통합하면서 루첸은 5개로 늘어났습니다. 이걸 계산하면 15만 5천명이고 이후 샹슝국을 정복하면서 6개 루첸으로 이루어져 18만 5천명이 됩니다. 루첸만으로 인구를 계산한다면 토번 인구는 18만이 됩니다. 하지만 "루첸=토번 인구"가 아니라는 것을 봐야하지요. 노비는 루첸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토번 노예 계층인 방금락들은 전 인구의 60~80%정도를 차지합니다. 이를 볼때 18만 5천명이 루첸에 있으니 방금락들은 그에 3배 정도인 55만 5천 명이 되는 것이죠. 또 루첸에 중요할 점은 주변 유목민들은 루첸에 해당시키지 않는 다는 겁니다.(물론 루첸 안에 유목민들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 유목민들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티벳 본토에 사는 농경민들도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또 귀족들 역시 루첸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토번 4대 귀족 쉬풍씨, 쩨퐁씨, 발뇐씨, 나남씨는 매의 얼굴 군대, 당나귀 발의 군대, 고양이 꼬리를 가진 군대, 토끼의 귀를 가진 군대로 따로 편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렇듯 루첸이 아닌 별도의 군대로 조직됬지요. 그만큼 이들이 거느린 병사들은 상당합니다.) 이를 볼때 송첸캄포때 토번 인구는 100만은 넘습니다. 무엇보다 토욕혼을 정복하면서 토번은 강족들을 흡수해버립니다. 또한 무시 못할 것이 남리루첸때 공뽀국 인구가 2만가구 이상이였다는 점이지요. 토번이 점령한 다른 왕국들도 이와 비슷할겁니다. 이점을 볼때 토번 인구가 만 이하라는 주장은 솔직히 본인은 납득하기 힘듭니다.(오늘날 티벳민족 인구가 500만 정도니 과거에는 100만 이하겠지 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솔직히 티벳은 고대나 지금이나 인구변동이 크게 없던 나라입니다. 오히려 중국 탄압으로 줄어들었다는 주장도 있죠.)
특히 토번은 당과 전쟁을 많이 일으켰는데 이는 곧 노예 상승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토번 방금락은 전쟁이 벌어질때마다 그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670년 토번 가르친링(論欽陵)이 안서사진을 점령한바가 있는데 이때 많은 한인이 방금락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토번의 당나라 포로 기록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역시 돈황문서를 보면 이들은 방금락으로서 노예로서 토번에서 살고 있었음이 확인 됩니다. 개인적으로 7c 토번 인구를 그래서 200~300만 정도는 잡아둡니다. 이중 토번 민족인 뵌족은 30~50만 정도에 불과할겁니다.
이후 8c 후반부터 루첸은 여전히 6개 루첸으로 유지하지만 대신 루첸 내부 인원이 바뀝니다. 『돈황토번고문서』를 보면 1개의 루첸은 10개의 천호로 나누어지게 되어 1만호에 달하게 됩니다. 즉 1개 루첸당 5만명이라는 말이고 6개 루첸을 합치면 30만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토번의 1호(戶)는 중국이나 한국의 1호(戶)와 다를 가능성이 상당하며 이보다 많게 잡을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대표적으로 당의 균전제를 바꾸어 만든 돌전제는 그 범위가 당의 것보다 큽니다. 이를 볼때 토번의 1호 역시 당의 1호보다 더 많게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정예군은 따로 조직되었기에 이전 정예군이 1만이고 호가 4천호였는데 이때에 이르어 2배에 이르렀으니 정예군 역시 2배로 2만씩 잡는다면 12만 정예군이 있는 셈입니다. 42만 정도가 있는 셈이죠. 이 역시 뵌족 유목민과 기타 유목민들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대화창을 보니 토번 인구 논하시는 시기가 8c 후반 치송데첸때인듯 한데 이때라면 토번 인구는 상당한 편입니다. 일단 돈황이나 기타 당나라 서역 도시들을 대다수 접수하고(안서사진은 함락 당할뻔 했으나 위구르군 지원으로 겨우 생존함) 무엇보다 당나라 수도 장안성을 점령하면서 그 일대 사람들을 많이 잡아간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장성춘추(藏城春秋)』에는 뢴다짜뤼공이 개선하면서 각종 기술자를 잡아왔다고 나와있지요. 기술자 외에도 아마 많은 당나라 사람들이 잡혀왔을 것입니다. 지금 위에 루첸 구성원이 증가한 시기가 바로 치송데첸 때입니다. 이때 뵌족도 크게 증가했음을 확인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루첸의 수치가 이정도로 증가했다는건 획기적인 일이며 다른 말로 뵌족의 인구가 크게 증가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때 방금락은 아주 많았습니다.(결국 토번 멸망 원인중 하나가 이 방금락들의 반란입니다.) 또한 키르기즈, 카를룩, 위구르, 돌궐에서 많은 자들이 망명해왔습니다.(위구르인은 이미 7c 경에도 토번으로 도망친 기록이 보이며 특히 돌궐인들이 위구르인들을 피해 토번에 투항했습니다.)
루첸의 뵌족이 42만이니 뵌족 숫자만 적어도 70만을 넘을겁니다.(티베트 내부에 사는 농경민들과 유목민들은 루첸에 해당되지 않으며 귀족들도 해당되지 않으니) 토번 내에는 한족이 상당한데 그 수는 실상 뵌족보다 많았습니다. 또 당나라의 여러 땅들이 토번에게 점령당하고 당의 수도 장안이 토번에게 점령됬던 만큼 많은 한인들이 끌려 왔죠. 적어도 토번 내에 있는 한인은 100만인 정도로 예상되는데 『장회심비(張淮深碑)』를 보면 토번이 점유했던 북쪽땅(신강성 일부)과 하서땅을 장의조가 되찾았는데 그 땅 인구가 100만여호라고 나온다. 1호당 5명으로 계산하면 500만명이다. 물론 장의조 활약을 부풀린 것일 수도 있기에 이 내용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안되고 적어도 토번내에 한(漢)족이 150~200만이 넘는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볼때 토번 인구는 당시 300~500만은 된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이것은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 단지 추측을 해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뵌족의 수치가 50~70만을 넘는 다는건 확실히 토번이 전체적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볼때 본인은 토번 전성기(치송데첸 시기)때 토번 인구는 약 300~500만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물론 티벳 민족인 뵌족보다 오히려 한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겠지요. 토번 내부에는 한족 외에 카를룩, 강족, 돌궐, 선비, 서역민족등이 살고 있기에 뭐 그정도로 추정하긴 합니다.(장회심 기록만 따져도 한족만 500만이니...) 물론 이 내용은 정확하지 않으며 단지 추측이지요... 뭐 개인적으로 상당히 많은 태클이 있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첫댓글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오래 기다렸는데~ㅋㅋ 좋은 글 감사감사~^^
기다렸습니다. 토번 전문가이신 여소제님의 글에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