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People-선물, 순천댁의 선물
‘순천댁’
내 그리 호칭하는 여인이 한 분 있으시다.
내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안휘덕 친구의 부인이신 유미순 여사님이 바로 그 호칭의 주인공이시다.
그곳에서는 얼굴 자랑할 일 없다는 세속어가 돌 정도로, 미인이 많다는 호남 순천이 여사님의 고향이시다.
그만큼이나 얼굴 예쁘고 자태 고우신 분이시다.
그러신 분이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2000년대 초에, 그동안 정든 땅 인천을 떠나, 남편 따라 우리 고향땅 문경 반곡으로 이주하셨다.
그리고 ‘만촌’(晩村)이라는 남편의 호를 딴 이름의 농원을 일구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어설펐던 농원이, 긴긴 세월과 함께 익고 익어, 이제는 철마다 흐드러지게 꽃이 피는 아름다운 꽃밭을 가꿔내셨고, 무에 배추에 콩 해서 드넓은 농장의 부농으로 성장케 하셨다.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하신 결과였다.
그래서 주위 두루 귀촌귀농의 표본이 되어주셨다.
그런 여사님이, 우리들 부부와 늘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로, 나와 아내는 자랑스럽기만 하다.
지난 주 금요일인 2021년 5월 7일 오전 11시쯤에, 여사님이 남편인 내 친구 만촌과 함께 문경 교촌의 ‘햇비농원’ 우리들 텃밭을 찾아주셨다.
이날은 우리들 텃밭에 참깨 씨앗을 심기로 한 날이었는데, 그 일을 도우러 그렇게 찾아주신 것이다.
일만 도우러 오신 것만이 아니었다.
보따리도 하나 싸들고 오셨다.
민물매운탕 한 보따리였다.
그 민물매운탕으로 우선 이른 점심상을 차려먹고,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에 다들 텃밭으로 올라갔다.
만촌은 밭을 갈아 망을 치고, 여사님은 망친 그 밭에 1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촘촘히 뚫은 수 천 개의 구멍에 참깨 씨앗을 심어주셨다.
그것은 노동이었다.
그냥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쪼그리고 앉아서 한 뼘 거리로 뚫린 구멍에 씨앗 2개만 집어서 심어야 하는 고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여사님 옆에 붙어 앉아 그 일을 돕고 있었지만, 나는 딱히 도울 일이 없었다.
일단 쪼그리고 앉는 것이 그 씨앗 심기의 기본인데, 두 무릎이 불룩한 똥배를 눌러 숨쉬기가 어려워, 내 도무지 그리 앉을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멍하니 있을 수도 없었다.
눈치가 보여서였다.
그때로는 안 해도 될 일을 괜히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한 일이, 매실나무 살충제 치는 일이라든가, 예초기로 텃밭 주변의 풀을 친다든가 하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흘렀다.
두어 시간이나 걸려서, 참깨 씨앗 심기가 끝이 났다.
멀리서 봐도 여사님의 이마에 굵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비지땀이었다.
그 땀을 소매로 쓱 훔치는 여사님의 모습을 봤다.
이날따라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날 여사님이 흘린 그 비지땀, 방거치 농부인 나와 아내를 위한 순천댁의 선물이었다.
첫댓글 금년 참깨농사 대풍은
기원함세.
과분한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