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어릴 적 친구들이 생각나서 옛날 사진 몇 장을 뒤적이다가 찾아낸 사진이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의 옷차림으로 보아 이 사진은 초등학교 4학년 늦겨울이나 초봄에 찍은 것으로 짐작되는데 아마 담임 선생님(김원국)께서 입대하기 직전에 찍은 게 아닐까 생각된다. 사진에서 알아볼 수 있는 친구들의 이름은 김정대, 이순우, 안호경, 옥재명, 정현택, 심희일, 김진섭 그리고 김필영 정도이고 아무리 사진을 들여다 보아도 다른 친구들은 알아볼 수가 없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는 정연명, 박근수 그리고 김성호의 모습도 사진에서 찾아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그들의 모습이 선명한데.
입을 헤벌린 시골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걸친 옷을 보면 그 당시의 곤궁했던 형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도 스웨터라도 걸친 아이들은 비교적 형편이 좋아 세끼 밥을 거르지 않고 먹는 집안 아이들이지만 짧게 깎은 머리에 일제의 잔재인 단추 달린 군복 모양의 상의와 허름한 바지를 걸친 아이들은 하루 세끼 밥 챙겨 먹기도 어려운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입을 헤벌리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아이들 티가 난다. 누비바지를 입은 아이들 여럿이 눈에 띄는 것은 그 당시의 난방 사정과 관계가 있다.
어릴 적 겨울은 참 추웠다. 형편이 괜찮은 집이야 겨울 준비로 장작을 트럭으로 사다가 준비해 두고 겨우내 아궁이에 군불을 때었지만 가난한 집은 대부분 산에서 삭정이나 마른 낙엽을 주워 모아서 겨울 준비를 해야 했다. 솔잎이 누렇게 말라서 떨어진 걸 솔 갈비라고 불렀는데 아궁이에 불 지피기에는 알맞았다. 연기도 나지 않고 불이 잘 붙고 오래가서 우선 갈비에 불을 붙인 다음 장작을 위에 올려서 불을 지피는 게 순서였다.
어려운 형편에 땔감이라도 아껴 써야 하므로 난방을 위해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것도 조심스러웠을 때였기에 대개는 저녁밥을 지핀 불로 겨울밤을 나려면 새벽녘에는 몹시 추웠다. 그래서 내복을 껴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학교에서도 난로에 솔방울이나 석탄을 아껴서 때었는데 그나마도 영하 3도가 넘으면 난로에 불을 지피지 않아서 낮에는 내복 위에 누비바지를 껴입고 겨울을 나곤 했다.
내복이나 바지도 대개는 단벌이라 겨우내 갈아입지 못하고, 목욕이라고는 여름철 지나면 음력설 무렵에 겨우 한 번 정도 하고 겨울을 지내니 아이들의 위생 상태야 두말할 것도 없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 양말을 벗으면 다리에서 허연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가려워서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벅벅 긁다 보면 쌀알만 한 이가 잡힐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가끔 위생 검사라는 걸 했는데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발가벗겨 놓고( 아니, 팬티는 걸치게 했다.) 살펴보다가 때가 많은 곳에 먹을 잔뜩 묻힌 붓으로 표시하고는 다음날까지 꼭 목욕하고 오라고 시켰다. 특히 때가 많은 아이 여럿을 골라서 교탁에 세워놓고는 몸뚱어리 여기저기에 붓으로 “때”라고 쓰고, 그중에서도 때가 가장 많은 아이 배에는 커다랗게 “때 대장”이라고 써놓고 아이들에게 손뼉을 치게 하여 조롱했다. 위생 검사가 있던 날 저녁에는 아이들이 떼 지어 동네 목욕탕에 몰려갔으니 그런 날이면 오랜만에 목욕탕이 장사가 잘되었을 것이다.
위생 검사가 있었던 어느 날 습자 시간이었다. 다들 준비해온 벼루에 갈아 넣은 먹에 붓을 찍어서 미리 적당한 크기로 잘라 온 신문지에 습자 교본에 나오는 글씨체대로 글씨를 열심히 쓰고 있는데 교실 뒤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뒤돌아보니 두 친구의 얼굴과 옷에 온통 검은 먹물이 묻어 있는데 다른 친구들의 말리는데도 분을 못 참고 씩씩거리며 서로에게 붓을 휘둘러대는 녀석들이 몰골이 볼만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 아이가 붓을 들어 다른 아이 얼굴에 때가 있다며 표시를 했는데 다른 아이가 그냥 있을 리가 없어서 다시 붓을 들고 그 아이의 얼굴에 붓칠하고, 또 딴 녀석이 반격하고…이렇게 확전이 되었다고 한다. 얼굴이 붓 자국으로 온통 범벅된 채로 교탁으로 끌려나와서 벌로 양팔을 들고 있으면서도 씩씩거리며 서로 노려보는 녀석들의 몰골을 보며 다들 웃음보를 터뜨려서 수업이 어려워지자 복도로 쫓겨난 그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 기억으로는 그 친구들은 바닷가에 살던 흥섭이와 영진이었던 것 같은데 다음에 고향을 방문해서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그 친구들의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어수선하던 단기 428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야말로 진짜 쌍팔년도 고리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 그 어려운 시절에 궁상떨던 얘기도 무슨 즐거운 추억인양 되씹지 요즈음 젊은 세대야 이런 얘기를 이해할 수나 있으려나? 어려운 시절이라 몸뚱어리야 때가 덕지덕지 묻어서 더러웠지만, 마음만은 순박하고 깨끗했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아직도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좋아진 환경 덕분에 몸은 깨끗하게 가꾸고 옷차림이 말쑥해졌어도 긴 세월이 흐르며 마음에 때가 묻지는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