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확히 반이 지난 2010년대에 나온 작품 중 가장 좋았던 10편입니다.
소셜 네트워크 / 데이빗 핀처
얼마전까지만 해도 반이 지난 2010년대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한 소셜 네트워크입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영화의 시작부터 영화의 '톤'를 잡죠. 이 영화는 결국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의 연인 프라이데이를 연상시키는 탁구 경기같은 대사들의 싸움들로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가 될거라고 보여줍니다.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이라는 지루하기 쉬운 사건을 젊고 흥분되는 영화로 탈바꿈시킨거죠.
그 테마에 따라 인물간 증언과 실제 사건들을 교차시키는 현란한 편집으로 영화에 부합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실감나는 연기, 아론소킨의 각본, 조몰락거리는 핀처의 연출, 그리고 환상적인 스코어가 만나 탄생한 '완벽한 영화'죠.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 패트리시오 구즈먼
얼마전까지만 해도 2010년대의 걸작 중 최고는 소셜 네트워크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작품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장르를 구분한다면 다큐멘터리이지만, 한 편의 '영상 에세이'라고 칭하는 게 더 옳은 것 같네요.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작품은 잘 만든 천문학 다큐멘터리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진행될수록 처음엔 예상하지 못한, 칠레의 아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이렇게 쓰면 매끄럽지 못하고 진행에 불균열이 느껴지는 작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은 과거로 통한다는 진리를 활용하여 이 둘이 본질적으로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보여주죠.
앞에 '영상 에세이'라 쓴 이유는, 이 두 다른 세계를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연결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다룬 <액트 오브 킬링> 보다 윤리적이며 <잃어버린 사진>보다 효과적입니다.
언더 더 스킨 / 조나단 글레이저
CF로 유명한 조나단 글레이저가 10년의 공백기 후에 내놓은 SF 걸작입니다.
전 이 작품을 세 번 봤는데, 별점으로 말하자면 볼때마다 반개 씩 올라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게 보이고, 다양한 의미를 도출하게 되더군요.
대사는 매우 적고 이미지와 사운드로 전달하는 이 작품은 <그래비티>와는 다른 의미로 '체험'하는 영화죠.
관객으로 하여끔 이방인(외계인)의 시점에서 보고 듣게 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외계/이방(alien)처럼 느끼도록 합니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감독이 내린 결정 - 글래스고에서의 촬영, 몰래카메라를 활용한 다큐멘터리적 기법 등 - 의 천재성이 느껴지죠)
일벌(worker bee)로서의 노동, 여성성, 공포와 휴머니즘 등 다양한 주제를 시각과 청각으로 다루어 우리의 피부(스킨) 속을 파헤치는 작품입니다.
올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특별한 관람이자 체험이었던 영화입니다.
떠돌이 개 / 차이 밍량
지난 5년 사이 나온 여러 영화 중 아마도 느림의 미학을 가장 잘 이해한 작품이 아닐까합니다.
차이 밍량의 카메라가 전달하는 특유의 여운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극대화된 것 같네요.
도시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 속 소외된 가족의 삶을 그려낸 영화입니다.
보통 떠돌거나 혼란스러운 상태를 표현할 때는 빠른 카메라워크와 편집을 자주 쓰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쇼트의 길게 유지시켜 '느려서 떠도는' 인물들의 느낌을 줍니다.
느린 진행과 롱테이크로 인물들을 진정 '바라보는' 몇 안되는 영화로서, 절대 잊지 못할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차이 밍량의 걸작입니다.
사랑을 카피하다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90년대의 클로즈업과 체리 향기, 2000년대의 텐에 이어 2010년대에 들어서도 걸작을 만들어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분이자 '영화'라는 예술을 계속 탐구하는 분이죠.
번역 제목이 아닌 원제목(Certified Copy)으로 완벽히 묘사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그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영화 속 작가의 책으로 시작하여 두 인물의 관계와 다양한 이미지로 진짜와 가짜에 대해 사유하는 그의 질문은 결국 영화 자체로까지 번지며 뇌를 떠나지 못하게 하죠.
이 또한 키아로스타미의 끝없는 '영화에 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토이 스토리 3 / 리 언크리치
토이 스토리는 제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이자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영화입니다.
그래서인지 토이 스토리 3부작은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3부작이라 불리는 세 가지 색, 아푸, 대부 등의 3부작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3부작이라 생각합니다.
1편 부터 3편까지 모두 걸작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시작과 마무리를 갖춘 시리즈죠.
4편의 소식을 듣고 이 작품에 예전만큼 애정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자유롭게 차용하며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행복함과 슬픔을 느끼게 하는 최고의 애니메이션이죠.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 자파르 파나히
이란이 자파르 파나히 감독에게 20년 동안 필름메이킹, 각본 필집, 인터뷰를 금지시키며 징역 6년형을 선고한 후에 자파르 파나히가 '감독'하지 않고 '출연'만 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영화 아닌 영화인 이 작품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최고작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원래 구상했지만 이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를 본인이 집필한 각본과 기존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재연하고 설명하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치 거장의 마스터클래스를 카메라로 직접 보여주는 느낌이죠.
그런 도중 그가 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영화를 말할 수 있다면, 왜 영화를 만드는가?'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답하는 영화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 과 비슷한 이유로 엔딩 크레딧에서 소름이 돋더군요)
마스터 / 폴 토마스 앤더슨
최고작인 데어 윌 비 블러드 보단 생략적이지만 여전히 묵직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입니다.
부기 나이트와 데어 윌 비 블러드에 이어 미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작품입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정말 신기하면서도 대단한게 그 역사 속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매우 '캐릭터 연구' 적인 작품들을 만드는데, 동시에 배경인 미국의 기반 그 자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작품 또한 그런데, 일종의 사랑이야기 같으면서도 소재의 자극성(종교 관련)이 전혀 주제를 가리지 않죠.
인간의 본성, 불완전성을 다루지만 좀 더 파보면 이를 넘어 미국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마스터'는 있기 마련이죠.
시 / 이창동
범죄와의 전쟁, 하하하, 지슬 등을 비롯해 지난 5년 사이 나온 많은 한국 영화 중 단연 최고라 단언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의 걸작입니다.
올해 연결되는 주제를 다룬 한공주, 연상될 수 밖에 없는 마더 보다도 도덕적인 작품이죠.
시를 쓰는 행위를 통해 책임감, 삶, 윤리를 다루고 그것을 영화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예전 이창동 감독의 어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영화, 시, 소설 모두 세상을 바라보고 고민하며 느끼다 내 속에 있는 뭔가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홀리 모터스 / 레오 까락스
이 자리는 아마 며칠 전만 해도 토리노의 말이 대신하고 있었을겁니다.
홀리 모터스는 처음 봤을 때 어렵다는 소문 때문에 '이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봐서인지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어젠다 없이 봐서인지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기억했던 것 보다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취했을 때 보다 더 와닿았습니다.
후반부에 카일리 미노그의 노래 시퀀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무성 영화적 구성과 동선을 취해서 역동적이며, 살아있는 느낌을 주죠.
이 리스트에서도 보이시겠지만 전 '영화에 대한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 테마를 다룬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폴라 X의 실패 후 쌓인 한을 레오 까락스가 원없이 푸는 것 같았네요.
이 외에도 정말 좋았던 작품 10편만 더
토리노의 말 / 벨라 타르
보이후드 / 리처드 링클레이터
그래비티 / 알폰소 쿠아론
액트 오브 킬링 / 조슈아 오펜하이머
인사이드 르윈 / 코엔 형제
자전거 탄 소년 / 다르덴 형제
멜랑콜리아 / 라스 폰 트리에
잃어버린 사진 / 리티 판
드라이브 / 니콜라스 윈딩 레픈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 오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