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동래읍성 북문부근('06.1.21촬영)
왜성과 비교하면 성벽이 수직이며. 옹성,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읍성 서장대부근
치구조물 조성중(凸 모양구조물) 군대용어로 말하면 四周警戒용이
김해 어방동 뒷산 盆山城 (해발330m)성벽 사적66호 ('05.12.22촬영)
복원중,왜구침입대비,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음.
가덕도 연대봉수----> 다대포 응봉 봉수----> 분산성봉수(중요한위치)
구포왜성(부산시기념물6호)덕천동 낙동고부근 '06.9.9 촬영
임란때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와 다치바나 무네시게
[立花宗茂] 등이 김해와 양산 간의 연락을 취하기 위하여 쌓은 일본식 성이다.
왜성의 특징(임란때 축조한)
1.성벽이 정상부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여러겹 나선형형태
2.성벽의 벽면이 경사짐(무게분산)
3.꺾이는 모서리가 많은편.
4.해안과 강가 축성
5.정상부에는 관측,지휘소인 天守閣이 있음
6.기존 우리의 城을 이용 (의성(義城), 감동포성(甘同浦城-->구포왜성)
(두모포 만호영------>기장 죽성리왜성)
** 우리 城을 일본식으로 개조하니 우리의 문화재는 원형 잃음.
** 축성기술자는 日人이지만 사역은 우리의 民草들-학대.중노동
註 : 필자 견해임.

우리나라 성하고는 성벽경사가 다르다(구포왜성)
서쪽과 남쪽으로는 낙동강을 끼고 그 밑에 선박이 정박할 수
있으며 멀리 서쪽으로 김해 죽도왜성(竹島倭城)과 북쪽으로
물금 증산성(甑山城)을 서로 마주보며 삼각형을 이루는
전략상의 요지에 해당되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7년전쟁은 전국토가 쑥대밭. 민족의 비극이었다--코무덤,귀무덤
소위 일인들이 말하는 대동아전쟁초기 우리나라 전역에
일식 관사가 건축되었다,
석축은 당시 철도종사자들의 거주지인 철도관사(삼랑진역사부근)
석축도 모서리가 성벽 축조와 같이 경사가 있다
40년대 일식 철도관사. 70년 세월이 흘렀다,
전체 50여호중 10채 정도가 원형보존( 지난 9월23일 촬영)
"울산학성에서 순천왜교성에 이르기 까지 30여곳의 왜성이 있었고,
부산에는 무려 11곳의 왜성을 쌓았다고"---- 10/15 한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