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리
이혜경
단단히 코가 꿰였다. 지느러미를 바짝 붙인 코다리가 차렷 자세로 줄지어 매달렸다. 줄줄이 엮여 꾸덕꾸덕 말라가는 코다리들은 애초에 같은 운명으로 태어난 것일까? 지금은 저렇게 굳어버리고 묶인 몰골이지만 한 때는 바다 향을 머금고 탱탱한 자태를 뽐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얼음장 같은 바다를 마구 휘젓고 다니던 어린 노가리 시절에는 두려움을 몰랐을 터이다. 언제 그물에 걸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운명임을 알지 못했기에 거침없는 몸짓으로 더 낯선 곳, 더 깊은 곳을 찾아다니며 온몸으로 물살을 밀어냈을 것이다. 부쩍 덩치가 커지고 흑갈색 등에 번지르르한 기름이 돌 때는 스스로 바다의 중심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으리라. 어느 날 어부의 그물에 걸려 처음으로 바다를 벗어난 순간, 금빛 햇살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순간인 줄도 모른 채 눈부신 햇살을 휘감으며 온몸을 퍼덕이다 촘촘한 그물에 갇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처지가 된 것이리라.
어렸을 때, 나를 둘러싼 세상이 좁게만 느껴져 더 큰 바다를 마음에 품었다. 보호구역을 벗어나는 일인 줄도 모르고 졸업식장에서 꽃다발을 안고 그저 설레기만 했다. 넓은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만 보며 지느러미를 움직였다.
전력으로 헤엄쳐 도달한 낯선 바다에서 운명의 짝을 만났고, 마침내 결혼이라는 배에 올랐다. 햇살 품은 비늘처럼 여러 겹으로 반짝이는 예식장 샹들리에 아래서 나는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었다. 코가 꿰이는 줄도 모르고,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 보석 왕관을 쓴 그 순간에 자신만만했다. 새로운 배를 타면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거라고, 둘이 함께라면 파도쯤은 거뜬하게 넘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예상과 달리 결혼이라는 배는 끝과 시작이 복잡하게 얽힌 그물이었다. 차고 넘치던 자유시간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단순히 한 남자에게 코가 꿰이는 차원을 넘어서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로 지내면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가족을 챙기는 일이 우선이었다. 가정이라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춰야 잡음이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배가 움직이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는 편이 최선이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며 나의 겉모습도 물기를 잃어갔다. 대충 로션만 발라도 윤이 나던 피부는 푸석한 각질에 덮여 비늘 벗겨진 생선 마냥 울퉁불퉁해졌다. 한 번만 매듭을 지어도 단단하게 묶이던 풍성한 머리숱은 간 데 없고 머리끈을 여러 번 감아 묶어도 금세 느슨해졌다. 깊어지는 주름을 감추려고 화장으로 덧칠해 보아도 구겼다 편 종이처럼 접힌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조금씩 시들어가는구나 생각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남은 바다 냄새마저 비린내로 바뀌고 보드랍던 살결이 딱딱하게 변한 코다리를 들고 무슨 요리를 만들까 생각에 잠긴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생태는 무 몇 조각 썰어 넣고 시원한 탕을 끓이기에 좋고, 깔끔하게 건조시킨 포는 결대로 찢어 무침을 만들면 맛이 일품이다. 생태의 싱싱함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마른포가 지닌 담백함도 없는 반 건조 코다리는 근사한 요리를 만들기에는 어중간한 재료다.
고심 끝에 조림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양념이 고루 배려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손질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선 코에서 입으로 이어진 끈을 풀어 한 줄에 엮인 코다리를 한 마리씩 떼어 낸다. 어깨를 겹치고 붙어있던 코다리들이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 손질을 위해 잠시 떨어트려 놓긴 했지만 곧 한 냄비 속에서 지지고 볶게 될 터이니 꽤 질긴 인연이다. 아마 같은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동시에 그물에 걸린 부부가 아닐까 싶다.
비릿한 냄새를 잡을 요량으로 향이 강한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등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볼품없는 껍질과 속살에 보정 효과를 주려고 간장과 물엿으로 색깔 옷도 만들어 입힌다. 요리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이려면 불 조절에도 신경 써야 한다. 처음엔 센 불에 올려 살이 풀리지 않도록 하고 한소끔 끓은 후에는 불을 줄여 양념이 졸아들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타이밍을 잘 맞추어 온도를 조절해야 음식의 때깔이 달라진다.
살다보면 단점이라 여겼던 부분이 뜻하지 않게 장점으로 바뀌는 수도 있다. 바람과 햇볕을 번갈아 견디며 굳은살이 생긴 코다리는 뜨거운 불에서도 모양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물기를 잃고 얇게 쭈그러든 껍질은 보기엔 딱딱해도 속속들이 양념이 스며들어 풍미를 더한다. 싱싱한 생태로 조림을 하면 미끈거리는 껍질 때문에 오히려 양념이 겉돌기 십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시간의 중력 앞에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에 문득문득 서글퍼지곤 했다. 수분크림을 발라 윤기를 내고 색조화장품을 덧칠해 푸석한 얼굴을 감추려고 발버둥 쳤지만 물기 잃은 피부는 따로 놀았다.
하지만 탱탱한 피부를 거두어간 야속한 세월로 인해 얻은 것도 있다. 겉은 예전보다 초라해졌을지 몰라도 알맹이는 오히려 단단해졌다. 햇살이 비칠 때면 몸을 느슨하게 풀어 따뜻함을 만끽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면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힘을 주며 버티는 동안 몸도 마음도 야물어졌다. 인생길에서 만난 크고 작은 파도는 맞서 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물살에 몸을 맡기고 흔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비록 몸 안의 기름기는 빠져나갔지만 오히려 그 틈 사이로 다양한 양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알게 되었다. 젊음이라는 무기는 잃었지만 융통성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뜨거운 김을 쐬며 마지막 숨고르기에 들어간 코다리를 꺼낸다. 접시에 옮겨 담자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뜨거운 냄비 안에서 용케 버틴 덕에 근사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수시로 온도가 달라지는 결혼 생활에서 중심을 잘 잡으면 나 역시 좀 더 맛깔 나는 아내가 될 수 있으려나. 달콤 짭조름한 코다리살이 유난히 혀끝에 감기어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