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1: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소생이 장자여든...."
두 아내를 두었는데 - 한 남자가 두 아내를 거느리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위배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본절에 나타나는 일부 다처제는 당 시대의 악함과 계시의 미발전으로 인하여 잠정적으로 묵허된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이하에 나오는 규례는 이러한 기본 전제하에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천 윤리로 주어진 것으로서, 곧 일부 다처제로 말미암아 빚어질 수 있는 불행한 사태에 대한 예방책을 미연에 제시해 주고 규례이다. 하나는 사랑을...하나는 미움을 - 당연한 결과이다.
유한한 인간은 그 마음을 두 곳에 동시에 균등하게 집착할 수 없다. 장자 - '태를 열다'는 뜻의 '바카르'에서 온 말로 '초태생'으로도 번역된다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맏아들은 한 집안의 중추적인 역할자이자
그 아비의 으뜸가는 영광으로서 그 지위상 많은 혜택을 받았다.예를 들면 다른 아들들보다 두 배의 상속을 받는 특권, 아비의 축복을 받는 특권, 동생들에 대한 감독권 등이 있다.
[사 49: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 종으로 오실 메시야의 특징을 한마디로 잘 요약하고 있는 구절인데, 좀더 자세한 묘사는 53장에 나온다.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보고 모든 이방 권세자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가리킨다.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 표현이다.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내 이름을 인하여 -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또는 '그리스도로 인해'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진정 제자들이 세상 관원과 자기 가족들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그분의 삶을 따른다는 이유 때문이며 이는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배척받은 데 그 근원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세상이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그분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리스도에 집착해 있는 제자들 역시 그리스도를 따라 이 같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이는 신자 개인의 실수로 인한 고난과는 구별된다.
모든 사람에게 - 여기의 '모든 사람'이라는 것은 '한 명도 예외없이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구별이 없이 모든 사람들'곧 인종, 피부색, 사상에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와 더불어 본문에서는 좀더 축소된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모든'이란 박해 사건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가리키며 제자들을 핍박하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실로 인간의 마음이란것은 본질상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부패된 것으로서 이 때문에 인간은 어느 위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모두다 멸망치 않을 수없는 것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의를 향하여서는 부패한 본성에 따라 분노와 적의를 품는 것이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 - 여기서 '나중'이란 말은 생명이 끝날 때까지, 즉 길든 짧든 간에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또는 인내가 더이상 필요치 않게 될 때까지라는 의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한편 이 '나중'이란 말은 다른 뜻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데, 칼빈은 이를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지배하는 때로 해석하고 있으며 다른 학자들은 예루살렘 멸망을 그리고 또 어떤 학자들은 세상 끝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 때를(Beza, Weiss) 가리킨다고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으나 전체 문맥상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를 생명이 끝날 때까지, 또는 인내가 더이상 요구될 필요가 없는 때까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예수께 충성하려면 목숨까지도 바쳐야 할 마음의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본문의 '견디는'에 해당하는 원어 '휘포메이나스'는 적극적인 저항보다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극한 고난 속에서도 배교하지 않고 끝끝내 예수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신실성과 그리스도의 궁극적 승리를 의심없이 믿는 행위이다 구원을 얻으리라 -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구원의 획득이 약속되었다 즉 예수께서는 육체적 생명의 잠정적 손실에 대한 전인격적 생명의 영원한 보상을 약속하신 것이다.
정녕 신앙인은 예수 때문에 자신의 일부를 상실케 되는 것이 사실이나 그와 더불어 완전한 회복과 보존을 받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