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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메뉴 아귀찜 |
더위에 지쳤을 때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따로 있다. 그것은 새콤달콤한 냉채 한 접시일 수도 있고, 고추장에 맛깔스럽게 비빈 국수 한 그릇 혹은 맨밥에 짭조름한 오이지 한 종지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입맛 까칠한 이 더위엔 맛난 것 찾아 먹고 힘을 내야 한다. 여기에 더위를 너끈히 견뎌낼 보양음식이라면 금상첨화! 요즘 아귀찜집들이 유독 북적이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은평뉴타운을 관통해 일영 가는 길. 한적한 일영로에 자리한 ‘경남아구’는 오래된 아귀찜 명가다. 35년 전 이곳에서 가까운 지축역 인근에 터를 잡은 창업주 홍애자(72)씨는 조그만 분식집부터 시작해 한식 백반집을 하면서 닭갈비, 삼겹살, 곱창전골 등 주력 메뉴를 다양하게 바꾸다가 20여년 전부터 아귀찜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아귀찜이 흔하지 않아서 이 근방에 잘하는 아귀찜집이 없었어요.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해서 아귀찜 비법을 배웠죠.”
거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은 홍씨의 아귀찜은 매콤하고 깔끔한 양념에 아삭한 콩나물과 담백하고 포동한 아귀살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맛도 맛이지만 다른 곳보다 저렴한 가격에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 동네사람들은 물론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들까지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아들고 줄을 서던 허름한 ‘경남아구’가 있던 지축역 일대는 재개발이 한창이다. 홍씨는 재개발 소문이 무성할 때인 11년 전부터 일영로에 미리 터를 잡고 두 군데서 영업하다가 2013년 지축역 본점이 문을 닫으면서 일영로 본관 바로 옆에 신관을 오픈했다. 본관과 신관은 건물은 다르지만 모든 음식은 홍씨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만 본관에는 홍씨가 예전처럼 이런저런 메뉴를 시험해 보느라 냉면, 떡갈비 등 몇 가지 메뉴가 더 있다.
메뉴는 ‘아귀찜’ ‘꽃게찜’ ‘낙지찜’ 등을 내놓는데 대표 메뉴는 단연 ‘아귀찜’이다. ‘아귀찜’에 곁들이는 메뉴로 ‘새우튀김’도 인기. ‘아귀찜’은 특대·대·중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4인에 대 사이즈 정도면 알맞다. 주문을 하면 쫙 깔리는 반찬에 백반집이었던 이 집의 역사가 느껴진다. 통통한 가오리찜에 귀한 매생이전, 애들 먹기 좋은 장조림에 작두콩조림, 감자조림, 물김치까지 약 15가지의 반찬들이 상 가득 차려져 ‘경남아구’ 매니아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순한 반찬이 다양해 가족단위 손님이 많은 편.
직원 25명이 하루 600㎏ 아귀 손질
짜지 않고 맛깔스러운 반찬을 에피타이저 삼아 요것조것 먹다 보면 메인인 ‘아귀찜’이 금방 나오는데, 원형 접시에 수북이 담겨 나온 모양이 푸짐하고 먹음직스럽다. 금방 센 불에서 물기 없이 잘 볶아서 내놓은 신선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빨간 찜 양념에 통통한 자태를 뽐내는 콩나물을 슬쩍 걷으면 아귀 살이 꽤 실하게 들어 있다. 콩나물을 한 젓가락 잡고 그 위에 아귀 한 조각을 올려서 입에 넣으면 칼칼한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아삭한 콩나물과 쫀득한 아귀 살의 식감에 침이 왈칵 솟는다. 아 그 유혹의 맛이라니! 맵긴 하지만 아귀찜 치고는 양념이 강하지 않고 음식이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서 남녀노소가 다 좋아할 만하다.
찜을 다 먹은 뒤엔 볶음밥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집에선 먹던 아귀찜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볶음밥용 양념과 콩나물을 주방에 따로 준비해놓고 밥을 볶아서 금방금방 내준다. 마무리로는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식혜가 넉넉한 통으로 나와, 한 사발 쭈욱 들이켜면 매콤한 입맛을 달래기에 그만이다. 밑반찬 먹고 찜 요리 먹고 거기에 볶음밥 먹고 입가심으로 식혜까지! 매콤하고 푸짐한 한 끼 식사로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고, 지쳤던 마음까지 위로받는 것만 같다.
“맛있는 아귀찜을 만들려면 아귀는 큼지막한 것을 골라야 해요.”
아귀는 클수록 살이 쫀득하고 푸짐해 찜에 잘 어울린다. 이 집은 브라질산으로 마리당 1㎏이 넘는 중간 이상 크기의 냉동 아귀를 사용한다. 흔히 원산지가 수입이라고 하면 안 좋게 생각하는데, 냉동 아귀만큼은 국산보다 미국과 브라질산을 더 쳐준다. 1년 내내 대량으로 아귀를 사용하는 이곳에서 가격 변동이 심한 국산 생아귀로는 균질의 아귀찜을 내기가 쉽지 않고 물량과 단가를 맞추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냉동이기에 생물 아귀에만 붙어 있는 아귀 간은 없지만 오돌오돌 맛 좋은 위포만큼은 아귀찜 위에 올려주려고 노력한다. 양이 충분치 않아 아귀찜 대 사이즈에는 기본 서비스로 나가고 중 사이즈에는 원하는 손님에게만 서비스하고 있다고.
수입 냉동 아귀를 사용하지만 국산 생아귀 못지않은 데는 이 집만의 비법이 있다. 찬물에 해동한 뒤 맛있는 육수에 살짝 삶아 조리하는 것이다.
“고추씨, 다시마, 양파, 대파를 넣고 육수를 우려내어 아귀를 삶아낸 다음 드시기 좋게 손으로 일일이 가시와 뼈를 90% 이상 발라내요.”
이 때문에 손님이 많은 주말이면 본관·신관 직원 25명이 하루 600㎏에 달하는 아귀 손질에 매달린다. 밀려드는 손님에게 빠르게 음식을 내기 위해 콩나물도 미리 같은 육수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구어 놓는다. 이렇게 밑준비를 다 해놓기에 실제로 아귀찜 한 접시를 조리하는 데는 몇 분이 채 안 걸린다.
이 집만의 양념 핵심 비법은 따로 없다고 한다. 굳이 조미료 하나도 안 쓰는 착한 식당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다른 점이라면 아귀에 양념이 고루 붙도록 대개 녹말가루, 감자전분, 쌀가루 등을 쓰는 데 비해 이 집에선 찹쌀가루를 사용한다. 그래서 질척이거나 끈적이지 않고 구수한 풍미가 각별하다.
40년 경력의 식당 주인장은 종종 만날 수 있지만 10년 경력의 종업원이란 가뭄에 콩 나듯 귀한 세상이다. 그런데 이곳에선 10년은 흔하고 20년, 30년 된 종업원도 여럿 있다. 홍애자씨와 가족 같은 결속력을 갖고 있는 그들이 눈 깜박일 새도 없는 ‘손님과의 전쟁’을 투정 한마디 없이 치러왔기에 ‘경남아구’의 오늘이 있는지도 모른다.
10여년 전부터 가게에 나와 일을 돕고 있는 사위 이귀훈(45)씨와 아들 정훈(43)씨는 손님이 많이 와도 워낙 이익이 박해서 식자재가 조금만 올라도 단가를 맞추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래도 여전히 어머니 홍씨는 손님이 음식에 만족할 때까지 서비스를 멈추지 않는다.
“어머님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아무리 바빠도 손님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려고 노력하시죠. 저희도 그런 어머니께 잘 배워서 ‘경남아구’를 오래오래 변함없이 이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