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미국 시민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한다. 연방차원에서는 올바른 이민법 개정을 주장해왔고 주정부와 시정부를 상대로 정책 입안 과정에서 이민자의 복지 혜택을 늘릴 것을 촉구해 왔다.
다인종 사회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만큼 권리를 요구하는 행위는 당연하기 때문이다.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반만년 '단일 민족'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이 지금 급격한 변화의 길목에 놓여있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목격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정도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급증했다.
1990년 5만 명을 밑돌던 체류외국인이 현재 82만 명으로 국민 100명당 1.7명 꼴을 넘어선 것이다. 올해 말이면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과 결혼하는 국민도 2002년 1만5000명에서 2005년 4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경제 문화의 개방확산에 따른 국제 인적교류 증대와 저출산 고령화 추세로 인한 노동력부족 등의 현상이 겹치면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제 한국도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이민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은 이민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국적법 규정에 의해 외국인이 한국 시민으로 귀화하기도 어려웠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차별은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농촌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국제결혼도 다문화 시대를 대비한 정책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농촌지역으로 시집온 동남아계 여성들이 낳은 혼혈 아동들이 초등학교에 대거 입학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한국 정부도 나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17개 관계부처 장관 7명의 민간위원이 참석한 제 1회 외국인정책회의를 개최하여 '외국인정책 기본방향 및 추진체계'를 심의.확정했다. 외국 국적 동포들에 대한 방문 취업제 도입 외국인 여성 인권침해 예방 대책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권리보호 및 자녀들의 학습권 보호 등이 포함됐다. 한국 정부는 통제와 관리 중심의 정책을 이해와 존중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외국인 정책에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반면 여전히 미진한 부분도 눈에 띈다. 한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사이의 차별 해소가 그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선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됐으나 이는 한국 거주 화교들만을 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현대판 노예제도에 다름 없는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고 평등한 권리와 인권보호를 보장해야 한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다고 자족하는 이면에는 노동력 착취를 당하다가 쫓겨난 동남아계 노동자들이 한국을 무섭게 증오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사회적 변화는 '세계화'라는 말로 요약된다. 해외에 진출해 한국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 내의 사회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으로 이주해 살고있는 외국인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도 바로 세계화의 모습이다.
한국 내의 외국인과 혼혈인들도 차별받아선 안된다. 과연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새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