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71,「꽃 양귀비외」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수억만 말발굽 소리 들판을 질러간 후
누군가 나직하게 나를 불러 세우는 이
보름밤 일만 평 고요에 붉게 물든 네 생각
- 박옥위의 「꽃 양귀비」
수억만 말발굽 소리 들판을 질러 간 후이다. 누군가가 나직이 나를 불러 세우는 이가 있다. 달빛 비친 일만 평 고요, 바로 붉게 물든 네 생각이다.
수 많은 붉은 양귀비꽃을 보라. 너 아니면 일 만평 고요를 어찌 붉게 물들일 수 있겠느냐?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무엇을 비유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몰라도 된다. 그냥 궁금하면 된다. 어차피 상징은 의미를 뒤로 지연시킬 수밖에 없지 않은가.
화가라고 선뜻 시인의 사유에다 붓을 댈 수는 없다. 세상에 없는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이것이 시인의 책무이다.
손잡고 오던 걸음이 신호등에 멈춰서자
해 등지고 선 할아버지의 그림자 깊숙이
할머니
앉아 쉬신다
그늘의
깊은 포옹
-강경화의 「뭉클한 그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 잡고 걸어오고 있다. 신호등 앞에 멈춰섰다. 할머니는 힘이 부친가 할아버지 등 그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늘이 할머니를 깊게 포옹해주고 있다.
참으로 따뜻하다.
할아버지의 등 그림자가 할머니의 쉼터가 되었다. 뭉클하다. 나이 들면 걷기도 쉽지 않다. 아프기라도 해봐라. 건강해도 힘이 부치는데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할아버지의 그늘이 있기에 할머니의 그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얼마나 많은 자리를 내주며 살았는가. 그래서 더욱 노년이 아름답다. 노부부의 행복은 이런 것이다. 뭉클한 쉼터 이것이 시가 아니고 무엇이랴.
-신웅순의 『다시꺼내보는 명품시조,'꽃양귀비' 외 」주간한국문학신문,2023.2.8(수)
첫댓글 할아버지 그늘이 얼마나 따뜻할까
생각해본다.
오늘같은 날씨는 정말 마음에 안든다..
지하철에서요
노부부의 그늘이 얼마나 따뜻한지 생각해봅니다.나이 들수록 애틋해지는 부부.생각만해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