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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태 지 : 충주 출생. <시와 정신>등단. 두레문학회원
목련공원 가는 길
시립공동묘지 목련공원 가는 길
장의차를 따라 빠르게 지나가는 장례행렬
누군가를 애도한다는 건 저 속도로 묻힌다는 것인가
묻히는 사람이나 묻는 사람이나 잊히기는 마찬가지
떠밀려간다, 유턴구간도 없는 외길
그곳엔 영혼들이 목련꽃으로 핀다지
우린 이생에 오기 전 목련이었는지 몰라
누가 알아냈을까 그 먼 나라의 기억
목련공원,
가는 길이 정체된다
천천히 옷을 여미고
내가 나를 위해 목놓아 울어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겹 한 겹 벌어진다
목련꽃,
<시작노트>
목련꽃이 피는 봄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때 장례행렬이 지나갔다.
시립공동묘지로 가는 길. 목련공원,
사람들은 말한다. 공동묘지 이름이 무슨 놀이동산 이름 같다고.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들 보내는 슬픔도 목련꽃처럼
송이송이 벙근다면 말이다.
소복의 꽃으로 피는 그 희고 환한 레퀴엠,
그때 나는 죽음과 생의 관계를 생각했다.
피었다 지는 꽃의 순간, 생이란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풀 한 포기 돌 하나, 잠깐 꽃처럼 왔다 가는 이승의 생에 관하여,
장례행렬은 지나가고 목련은 꽃으로 한 생을 건너가고 있었다.
색소폰이 있는 세탁소
그 세탁소에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주름이었다
그의 입술에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목으로 흘러내리고
손의 주름이 누르는 음이 구불구불 출렁거렸다
얼마나 많은 주름을 그는 밀어냈을까
그러는 동안 그의 팽팽한 시간으로 주름들이 옮겨갔을 것이다
색소폰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피고 진다는 꽃 소식이 주름에서 주름으로 건너가고
더 깊어진 금빛 주름이 출렁거리는 세탁소
의자에서 막 빠져나온 주름을 들고 한 남자가 찾아왔다
축 처진 어깨에 하루의 주름이 깊었다
꺼내놓지 못하는 그의 감춰진 주름은 또 얼마나 많을까
주인 남자 색소폰 소리가 깊이 가라앉는다
그는 바지춤이나 팔목에 입술을 대고 후후 부는지 모른다
구불구불 풀려 흘러나온 주름들이 계단을 내려와
도로를 따라 흘러가다가 가로수 뿌리에 스며들기도 하였던 것일까
그것은 이팝나무였으므로 이팝꽃으로 흐드러진 색소폰 소리
사람들은 주름을 끌어안고 걸어간다
꾹 눌러 다려도 곧게 펴지지 않는 주름
공명통이 닫혔다 열릴 때 그 견고한 음들처럼
세탁소에서 흘러나오는 색소폰 소리
밤하늘에 오래된 악보의 음표 같은 별이 뜬다
저 주름의 명료함
자작나무도마반가사유상
어머님이 도마를 내려놓으신다
자작나무도마,
나는 무수한 칼자국을 지닌 자작나무를 바라본다
칼과 마주하기 위한 생이란 얼마나 단단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하여 흰 붕대로 칭칭 저를 감고
안과 밖을 차단하는 것은 아닐까에 이르기까지
칼과의 대면
어느 교의 경이 저 무수한 칼자국을 받아 지녔을까
도마는,
싱크대 위의 자작나무미륵반가사유상처럼
칼이 지나간 자리는 오랜 사유로 우묵해지고
말씀을 필사하시는지 어머님은
푸르고 긴 푸성귀필체를 자르신다, 칼날은 자작나무 단단한 시간에
일정한 길이로 은유화되고
몇 쪽의 희고 통통한 갑골마늘문자가 칼끝에서
매콤하게 펼쳐진다
다지고 썬 어머님의 도마 읽기
한 냄비 두루 썩여 끓어 넘치는 자작나무의 깊은 칼자국
어머님이
싱크대 위 도마걸이에
자작나무 한 불 깨끗이 닦아 앉혀놓으신다
모든 허기의 생을 불룩하게 일으켜 세우는
저,
자작나무도마반가사유상
식탁을 꺼내는 남자
한 남자가 나무에서 식탁을 꺼낸다
톱을 밀고 당길 때마다 팔뚝의 근육에서 꿈틀거리는 용 문신
그의 청춘은 한때 나무에서 목검을 꺼냈었던 적 있었다
각목을 꺼냈었고 조직을 위해 어두운 뒷골목을 꺼내 휘둘렀다
영역이 나오고 구십도 각의 인사가 나오고 질서가 거기서 나온다고 믿었다
나무는 나무일 뿐이지만 꺼내는 자의 필요에 따르므로
둥근 식탁이 되기 위해 각을 버린다
예각에서 둔각으로 움직이는 톱날
대패가 거친 톱 자국을 밀어낸다
테와 테 사이 촘촘하게 기록된 나무의 일대기
흘러내린 땀방울이 툭 한 페이지에 떨어진다
앞발을 든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 거기
딱 벌린 입, 커다란 이빨, 붉은 혓바닥
월면의 명암처럼 등판에 새겨진 타이거
버팀목도 폭력의 각목이 될 수 있으므로
그 많은 목검을 버리고 나무에서 식탁 하나 꺼낸다
옹이를 무늬로 다듬는데
으르렁 그르렁 한 생의 거친 단면이 매끈해지는 목공소
한 남자가
나무가 지나온 결을 고르고 있다
폐차장에서
폐차장에 오면 중고 장기들이 판매된다
그것을 부품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마모 파열된 노후한 생들이 찾아와 필요한 부품을 사 간다
순환기에 이상이 오거나 연결되는 곳곳
여기에서 부품은 한 주검의 일부이지만 새로운 동력으로 쓰인다
수명연장은 또 다른 활성화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법이라서
번성하는 요양업 번창하는 접골원
망가져 가는 부위를 이식받으며 굴러가는 중고들을 위해
중고 부품들이 사고 팔린다
세상은 점점 노후해지고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또 한 부분의 부품이 돼 돌아가는 낡은 소품들
뽑혀 나와 아무렇게나 던져진 노후라고 할지라도
거뜬히 한 축쯤은 끌고 갈 것이다
길이란 길을 다 굴러다녔으므로
노후하다는 범위 안에 노후하지 않은 노후는 얼마나 많은지
저 수북하게 쌓인 부품들
겨울 인력시장 날일꾼들처럼 눈보라 앞에 놓여 있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바퀴의 힘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기어들의 반짝임으로
폐차장에 내리는 눈, 눈으로
지워지는 길,
길이 여기서 끝나고 여기서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본다
뼈에 대한 명상
물에도 뼈가 있다
급류가 한 번 뒤틀리면서 보이는 흰 널빤지 같은 것
뿌리로 스며들어가 갈대나 풀들의 기둥이 된다는 생각
다리 밑에 앉아 뜬금없이 나는 뼈 생각을 한다
아마도 점심때 먹은 고등어구이 탓이리라
노릇노릇 구워진 한 토막 살을 다 뜯어내도
끝까지 남는 건 한 접시 뼈였으니까
나무도 그렇다 나이테가 결을 꽉 잡고 있다
나무의 뼈다 파도를 뚫고 키운 고등어의 뼈처럼
끈질기게 달라붙는 바람의 술렁거림과 축축한 눈의 무게를 견디며 단단해진
푸르고 둥근 중심
나무속으로 새들이 날아든다
물렁한 것을 받아 안은 뼈는 더 견고한 골격이 되고
집을 받친다
아버지가 아픈 다리를 끌고 계단을 오를 때
내 부축을 받지 않는 걸 난 뼈로 이해한다
눈 내리는 아침 가장 먼저 문을 열고 걸어간
아버지가 남긴 발자국이 마디마디 고리로 이어진 뼈 같다는 생각을 한 이후
우리 집은 기울지 않고 서 있었으니까
물이 모든 것의 뼈로 일생을 살듯
깁고 넓적한 아버지의 뼈
뭐 그리 대단한 생이라고
뼈 사이에 쇠젓가락을 찔러 넣고 헤집을 때
동그랗게 뜬 고등어의 자존심 같은 것
역광의 노을 속으로 하루살이들이
하루의 뼈를 물고 들어간다
저 붉은 무덤
하늘이 한 생을 넘겨받고 있다
어느 꽃에서 와
묵정밭을 파 엎다 보았습니다
어느 꽃에서 와 여기 꽃자수를 놓았답니까
나는 일군다고 파헤치고 뿌리는
헤졌다고 깁는 겁니다
촘촘히 꿰매가는 풀들의 박음질
하여 변방의 이 별 부지불식간 흩어지지 않는 건지요
베실로 박아가는 넝쿨과 뿌리까지
달에서 받아낸 이슬이거나
서녘 하늘서 뽑아낸 노을이거나
한 땀 한 땀 기워가는 박음질이라니요
저기 무덤 가 개망초꽃
어느 망인의 재봉틀 소리로 사각거리나 봅니다
바람을 끌어다 햇살을 덧대는 생의 한 중심
일구다를 줄여가는 뿌리가 내 삽날을 꽉 잡는 겁니다
능금경
어머니가 마지막 사과를 꺼내놓으셨다
얼마나 오래 잊고 있었던지 반 곯은 사과
주름을 들여다본다
사과의 주름이 어머님에게로 옮겨간 것인가
사과를 깎으시는 손등이
목에 얼굴에 주름투성이
갑자기 주름지는 것은 없지
골판지 박스 안에서 혼자 물러가는 사과처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서서히 썩어가는 것처럼
주름불사하고 받아쟁인 사과의 주름처럼
그래야 씨가 발아한다는
주름점자로 쓰인 우툴두툴 붉은 능금경
어머니가 주름의 표지를 깎아내고 속경을 잘라놓으신다
말씀도 없이 반듯반듯 열어놓으시는 어머님의 능금경
몇 개의 씨로 요약된 저 한 생의 줄임
한쪽을 맛본다
어머니가 펼쳐 보이시는 능금경
달콤하다
팔랑팔랑 날개들
상가를 닦고 105동을 닦는다
얼룩처럼 붙어 있는 무표정의 출구를 박박 문지른다
얼마나 오래 방치했었는지 이 유리창을
닦아도 흘러내리는 검은 자국과
삐딱하게 내려앉은 웃음들과 읽히지 않는 얼굴들
걸레를 짜자 주르륵 흐르는 시꺼멓게 달라붙었던 바람 같은 것들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게 문지른다
땟국물로 가려졌던 시야가 트이고 빠끔하게 내다보이는 밖
붙박이 사물들처럼 나를 보고 있었던 저 밖
밖이 날아들어온다
호 하고 벌린 내 동그란 입 속으로 들어오는 오전 11시
흡 하고 닫은 입 속에서 팔랑팔랑 나를 들뜨게 하는 날개들
주름, 주련
노인들 칼국수 한 그릇씩 하는데요
주름이 쭉 늘어났다 닫히는 입
국수발에 붙은 주름이 국수 그릇으로 늘어졌다가
후르룩 달려 올라가서는 오물오물 넘어가는데요
저 주름을 삶아내기까지
한 시절이 밀밭이었을 것이네요
밀분을 채워갔을 밀알의 시간과
널판에 치대 지면서 꾸덕꾸덕 밀렸을 한 판
삶은 주름,
뚝뚝 끊어진 굴곡이 쩍 벌린 입에서 턱으로
목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데요
나는 한 얼굴이
한껏 펴졌다 오므려지는 것을 바라보네요
툭 불거진 목젖과 오그랑한 입술
한 끼를 밀어 넣는 입이란 저런 것일까요
모든 주름이 딸려 들어가네요
쩍 열렸다 닫힐 때마다 우물우물
삼키는 공복의 목구멍
쏙 들어가 주련으로 깊어지는 주름을 보네요
푹 삶아진 주름발
나는 지금 한 그릇 주련을 읽는 중이랍니다
붉고 말랑한 골목
리어커를 끌고 고물장수가 왔다
그가 골목처럼 구부러진 것들을 싣는다
흘러내릴 것 같은 파이프
휘어진 길을 따라
파이프 오르간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
창문을 열면 이미자가 흘러나와
몇 곡의 사연이 흘러나와
구불구불 흘러내릴 것 같은 이 골목
굽은 허리의 노파가
사연 사연 흘러간 것들을 내놓는다
아이들은 직선으로만 조립된 장난감을 사서 돌아오고
골목을 닮아가는 남자가 골목을 벗어나려는
아이들을 부르자 둘둘 말려오는 아이들
모든 것은 골목으로 휘어졌다
강아지 한 마리가 골목을 흔들고 지나가고
나무는 담 밖으로 붉은 골목을 피워냈다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끌고 온
늙은 고물장수의 저녁
나는 그의 등이 지고 오는 노을을 바라본다
내 아버지의 등에서 흘러내리던
붉고 말랑한 골목이었다
한 생을 지고 왔으므로
언제부턴가 내 등뼈가 조금씩 골목으로 휘어지는 것이다
눈 내리는 아침에
눈 내리는 아침에 손을 펴 눈을 받는다
거기 협곡의 깊은 손금이 있다
쌓이는 눈보라
깊고 긴 협곡을 지나는 기관차
철로는 한 사내의 울음소리처럼 철커덕거렸다
열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협궤열차 한 대
철로는 설원지 눈들의 신처럼
폭설의 열차를 지배한다
어느 멸족의 종족이 남긴 전설인가
겨울새들의 노래로만 가 닿는 목초지
기관차는 구전의 그곳을 알고 있는 것일까
문득 날아오르는 날갯짓의 막막함
열차는 멈출 듯 헉헉거리며
철로 밖으로 미끄러진다
탈선은 항상
여기까지만 이란 말로 유혹하지만
몇 량의 짐칸에는 버릴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면서
삐걱거리는 무게를 끌고 간다
툭툭 눈을 털자 붉은 황무지
무수한 선들을 쥐고 나는 겨울 눈밭에 서 있다
혹한의 손금은 협곡으로 내려앉고 거기
숨 막히게 달려가는 협궤열차 한 대
어디 평원의 귀착지가 있을까
걸을 때마다 내
낡은 구두 뒷굽이 심하게 철커덕거린다
딱따구리의 생나무 목탁
딱따구리가 탁 나무를 내리친다
딱, 딱, 딱,딱, 딱,
꽉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힘껏 내리치는데
용맹정진, 누가 저리 용맹정진 목탁을 칠까
산이 딱딱 울리는 목탁소리
딱따구리가 찾아내는 건 희고 통통한 양식
중심을 두드리고 그 울림으로 찾아낸다 목탁 속
어디에 얼마만 한 것이 꿈틀거리는지 읽어낸다
그건 경도 아니고 말씀도 아닌 말랑한 양식
딱따구리에겐 목탁 아닌 나무가 없다
두드리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경의 자 같은 숨소리들
경 한 줄 뽑아먹듯 쩝 입맛까지 다셔가며 꿀떡 넘기는데
저놈이 경을 알까만
열심으로 치는 목탁에서 양식 나는 것
목탁을 가지고 노는 딱따구리의 양식 구하는 법
딱, 딱, 딱, 딱, 딱,
절집 따로 없다 이 산 저 허공이 한 채 절집
생나무 꽉 끌어안고
모가지를 꺾어 있는 힘껏 중심을 내리치는데
목탁소리가 난다 딱따구리의 생나무 목탁
꿈꾸는 미용실
복대동 미즈헤어샵,
사람들은 우울을 자르러 오네
그것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주기적으로 잘라주지 않으면 안 되지
끈적끈적 달라붙는 목에 얼굴에
검은 이빨의 짐승은 내면 깊이 웅크리고 있네
폐목의 버드나무처럼 고사시키네
찰랑거리던 일상이 푸석해지고
단정하게 빗질 안 되는 관계의 엉킴
아주 짧게 커트치거나 붉고 노랗게 염색된
웃음을,
분무되는 영양제로 윤기 낸다 해도 안다,
깊이 자리 잡고 있어 끈질기게 자라 나오는 그
악착같은 기생의 뿌리
사람들은 와서 흐트러지고 꼬인 시간을 펴고
지난 잡지 가십의 수다를 넘기지
뚝뚝 물기 떨어지는 날들을 드라이하는 동안
바삭하게 살아나는 생의 윤곽
빠진 머리카락 같은 날들이여 안녕
속 깊이 염색되는 가장 밝은 색으로
사람들은 다시 꿈을 꾸네,
헝클어지고 엉킨 시간의 탈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