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72,「어느 병원에서」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5호실 어머니 요양 병원 가시나보다
삼남매가 프런트에서 어렵게 합의했다
장남이 절차를 밟고
누나들은 울고 있다
- 이우걸의 「어느 병원에서」전문
역할이 끝나면 가야하는 게 자연법칙이다. 어머니가 요양병원 5호실로 가나보다. 3남매가 프런트에서 어렵게 합의했다. 장남이 절차를 밟고 누나들은 울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전혀 토로하지 않았다. 담담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았다. 삼자의 관찰이다. 현실을 극명히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사실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가고 삼남매가 합의를 하고 절차를 밟고 누나들은 울고 있다는 3문장이다. 이 세 문장, 이 세 행위에 어머니의 한 생애가 다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할을 끝내고 가야하는 어머니와 보내야하는 아들, 딸들의 우는 모습이 우리들의 본모습이다. 남의 삶을 통해서 나 아니 우리들의 삶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 이것이 시가 해야 할 일이다. 시는 감성을 요하는 관찰기록이기도 하다.
등나무에 기대서서
신발코로 모래 파다가
텅 빈 운동장으로
힘 빠진 공을 차본다
내 짝꿍 왕방울 눈 울보가
오늘 전학을 갔다
-김일연의 「친구생각」
동시조이다. 등나무에 기대서서 신발코로 모래를 판다. 텅빈 운동장으로 힘 빠진 공을 찬다. 그리고는 종장에 오늘 내 짝꿍 왕방울 눈 울보가 전학을 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덧붙인 자국이 바로 화룡점정 자리이다. 문인화 맨 마지막의 낙관 지점이다. 시조에서의 종장 자리이다.
짝꿍이 전학을 간다는 그 말 한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왜 그럴까. 신발코로 모래를 파고 힘 빠진 공을 뻥 차는 행위 때문이다.
행동은 생각의 표현이다. 그래서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행위 없는 감정으로는 독자들은 맥이 풀려 원하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연극이나 무용은 몸짓의 언어이다. 판토마임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연극이다. 행위만한 언어는 없다. 행위가 바로 시이다.
-주간한국문학신문,2023.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