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영화, 빅 피시
“얘야! 우리 마을을 끼고 도는 강에는 참으로 이상한 물고기들도 있단다. 특별히 강하거나 빠르거나 그러지 않은데도 절대로 잡히지 않는 녀석이 있단 말이야. 그중에 특히 ‘야수’라고 이름 붙여진 이 녀석은,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전설이 되어 있었단다. 사람들은 그 녀석을 60년 전에 익사한 도둑의 유령이라고도 했고 또는 백악기에 살아남은 공룡이라고도 했어. 근데 말이야, 나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믿지를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백 불짜리 미끼도 소용없던 그 녀석을 어쨌든 잡으려고 애를 썼지. 그래서 결국 내가 그 녀석을 잡아버렸지. 그것도 네가 태어나던 바로 그날이었어. 나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많은 시도를 해봤지. 벌레, 가짜 미끼, 땅콩버터 등등 이런 걸로 말이야. 그러다가 계시를 받은 거야. 그녀석이 만약 진짜 도둑의 유령이라면 도둑이 원할만한 미끼를 써야 한다는 것. 바로 그거였어. 그래서 내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미끼로 썼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낚시 줄에 묶어서 던졌지. 녀석은 미끼가 수면에 닿기도 전에 재빨리 뛰어올라 줄을 통째로 끊어 그 미끼를 삼켜 버렸단다. 그런데 그 반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의 엄마에게 정절을 바친다는 상징적의미를 새겨 갖고 있었던 귀한 것이어서 되돌려 받아내야 했어. 그래서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 녀석의 몸통을 잡고 늘어 졌지. 그런데 삼킨 반지를 끄집어내려면 그 녀석의 배를 갈라야 하지만, 마침 그 녀석은 암컷이어서 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 녀석에게도 그 물고기를 잡을 기회를 주기 위해 그 녀석에게 호통을 쳐서 그 반지를 토해내게 한 뒤, 다시 그 강에 풀어 주었어. 너도 한 번 잡아 봐!”
팀 버튼 감독에 이완 맥그리거 알버트 피니 주연의 2003년 미국영화 빅 피쉬(Big Fish)의 초입에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이 어린 아들 윌리암 블룸에게 들려주는 전설 같은 무용담이다.
아들 윌리암은 아버지 에드워드의 그 이야기를 사실로 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는 깔깔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면서 아버지의 그 이야기를 솔깃하게 들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흘렀다.
철부지 어린아이였던 윌리암이 성인이 되어 UPI 기자가 되었고,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할 때도 되었다.
그런대도 아버지 에드워드의 그 이야기는 끊임이 없었다.
수없이 반복해온 그 이야기를 이제는 듣기 싫어진 윌리암이었다.
끝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윌리암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아버지 에드워드가 하객들을 앞에 두고 또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자, 이를 참다못한 윌리암이 아버지를 조용히 불러낸다.
그리고 그동안 참았던 말을 터뜨리고 만다.
곧 이 말이었다.
“아버지! 저는요, 아버지의 모험담의 들러리일 뿐이란 말입니다. 더 문제인 것은 아버지는 그러한 모험을 한 적이 없다는 거지요. 옛날 어릴 적에는 그 말이 사실인줄 알고 신이 나서 박수도 치고는 했었지만 이제 어른이 되어서 보니까 모두 아버지가 꾸며낸 황당한 이야기란 걸 알게 되었거든요.”
아들로서 감히 아버지에 대한 불신을 말한 것이었다.
아들의 그 말에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고, 아들을 떠나버린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는 그때로 끝이었다.
3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마음의 병을 얻어 서서히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아버지는 그 이외에도 어린 시절 고향마을인 애쉬톤 외곽 늪지대의 거미, 뱀들이 들끓는 곳에 살면서 만나는 사람을 비누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마녀의 집을 친구인 루스, 윌버, 돈, 재키 등과 같이 찾아가 그 마녀의 유리로 된 한쪽 눈을 통하여 자신의 미래를 봤었다는 이야기도 했었고, 남 보다 성장이 빨라, 야구를 했다하면 홈런을 치고, 미식축구에서는 늘 터치다운을 성공시키고, 농구를 하면 장거리포로 득점을 했다는 이야기도 했었고, 게다가 머리도 좋아서 과학경진대회가 있으면 늘 우승을 했다는 이야기도 했었고, 또 용감하기도 해서 불타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오갈 곳 없이 갇힌 강아지도 구해오는 등 마을의 영웅으로 떠 오른 이야기들도 했었고, 애쉬톤 마을 어귀 굴속에 살면서 가축들을 잡아먹고 혹 사람도 잡아먹을 런지도 모르는 거인을 설득시켜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도 했었고, 서커스 구경 갔을 때 얼핏 눈 안에 들어왔다가 사라진 여인에게 연정을 품고 끝없이 찾아 헤맨 끝에 대학생인 산드라 탬플턴을 만나고, 인근 다섯 개주의 꽃집을 모두 뒤져 구한 노란 수선화로 꽃밭을 만들어 선물함으로써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랑이야기도 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아들은 이제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병이 깊어진 아버지를 뒤늦게 찾은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말을 털어낸다.
아버지가 털어낸 말, 곧 이랬다.
“너는 나를 사기꾼으로 생각해 왔던 거냐? 넌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길 원하지? 나는 누가 뭐래도 있던 그대로를 말했을 뿐 사기를 친 적이 없어. 그런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나를 잘못 본거야!”
그 말만 뱉어내고 아버지는 또다시 입을 닫아 버린다.
이제는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였다.
아들은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의 그 완강함을 이겨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또 한편 연민의 정이 들어 아버지가 살아온 흔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 끝에 아들이 아버지를 다시 찾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상 옆에 앉아, 아버지가 어릴 적 마녀의 유리 눈을 통해 봤다는 아버지의 죽음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 대목에서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진 끝에 눈물을 펑펑 흘려야 했다.
다음은 그 이야기다.
“아버지가요, 갑자기 가벼워져서요, 제가 아버지를 안고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갔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새로 장만한 빨간 승용차 뒷자리에 태우고는 그대로 고속도로를 달려 아버지가 낚시를 하던 그 강으로 갔어요. 그 강가에는 요, 아버지가 늘 저한테 들려주셨던 이야기속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아버지를 반기는 거예요. 아버지! 작별 인사를 하세요. 작별 인사를 하세요. 이제는 그 분들 사이를 지나 저는 아버지를 강물 속으로 안고 들어가서 아버지를 물위에 내려놓았어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되어 헤엄쳐 가시더라고요.”
아들의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아버지 에드워드는 평온한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간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끝날 즈음에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은 아들 윌리암이 아버지 에드워드와 심정적 갈등을 계속하고 있을 때 그 사이에 끼어드는 엄마이고 아내인 산드라 탬플턴의 정성스런 역할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내가 31년 9개월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끝내고, 서울남부지방법원 집행관으로서의 새로운 일터를 찾을 때까지,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지게 된 2005년 10월의 일이었다.
영화를 본 바로 그 날, 그날 밤으로 대학생인 두 아들 녀석을 조용히 불러놓고 내 이렇게 당부했었다.
“너 엄마가 너들 낳을 때 호랑이 두 마리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고 하던 그 태몽, 그거 절대로 사실이데이. 그런 줄 알아래이.”
이 영화를 또 볼 수 있게 됐다.
곧 재개봉 한다는 소식이 있어서다.
만사 제쳐놓고 또 그 영화를 볼 작정이고, 아내를 꼭 동행할 작정이다.
엄마이고 아내로서, 갈등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조화롭게 이끌어간 산드라 탬플턴의 역할을 보여주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