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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의 세 사람 - 라합, 바디매오, 삭개오
여리고의 세 사람 - 라합, 바디매오, 삭개오
마가복음10:46~52
성경에서 여리고의 믿음으로 세 인물이 있습니다.
과연 여리고의 사람 중에 기억할 믿음의 세 인물이 누굽니까?
구약성경에서 여리고의 사람 중에 “기생라합”이 있습니다.
신약성경 복음서에 두 인물 소경거지 바디매오와 세리장이 삭개오가 있습니다.
1.여리고의 기생 라합과 그 집의 구원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주었음이니라(수7:17)“
1>기생 라합이 두 정탐꾼을 숨겨줌
여호수아가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내어 엿보게 하였습니다.
두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은 살몬입니다.
두 사람은 여리고에 들어가서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몇사람이 여리고 땅을 탐지하러 왔다는
정보가 여리고왕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리고왕은 기생 라합의 집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라합은 잽싸게 그 두 사람을 숨기었습니다.
기생 라합은 비록 여리고의 여자이지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게 멸하지 아니하였도다(히브리서11:31)“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같은 마음으로 믿음을 가졌을 때에
같은 편이 될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린도전서1:10)“
이 세상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민족이 민족이 대적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믿는 자의 오른편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손이 도우십니다.
기생 라합은 비록 여리고이 이방여자이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하였습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여 같은 말을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기생 라합의 신앙관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하신 일을 듣고 이 땅을
누구에게 주신 줄을 아는 믿음의 여자였습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주를 내가 아노라
(수2:9)”
기생 라합은 비록 여리고의 기생 출신이었으나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들음으로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라합은 가졌습니다.
라합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2:11)“
하나님은 두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하늘에 속한 영의 세계와 땅에 속한 육의 세계가 있습니다.
저 세상의 영의 세계는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세계입니다.
땅의 이 세상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시간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의 땅에 살면서 영원한 세계의 구원을 이루는 것은
기생 라합 같이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은 곧 무너질 성입니다.
사탄의 마지막 큰 성 바벨론도 무너질 것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계시록18:2)“
무너질 성에서 멸망당할 것이 아닙니다.
무너질 성에서 건져냄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리고성은 무너져도 기생의 라합의 집은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수2:13)“
3>라합의 집의 창문에 붉은 줄을 냄
“우리가 이 땅에 돌아볼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수2:1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에게도 구원하시는 것은 예수께서 흘리신 붉은 보혈입니다.
예수님의 붉은 보혈로 표시하는 것으로 창문에 붉은 줄을 매는 것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져 이스라엘이 점령하여도 유일하게 살아남는 것은
창문에 붉은 줄을 맨 기생 라합의 집만이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기생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할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라(수7:25)“
이집트의 온 땅에 장자의 죽음이 덮칠 때에 오직 문지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붉은 피가 묻은 집안은 죽음의 재앙이 그냥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출12:2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흘린 피로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주님 예수 다시 올 때에 영접할 예복을 입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기록된 기생 라합
라합은 비록 여리고의 기생이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한 여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그 이름을 올렸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는 이방여자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기록된 이방여자들의 이름은
다말과 라합과 룻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입니다.(마태복음1:3~6)“
기생라합과 그 가족은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에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살아남으로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습니다.
라합은 숨겨준 두 정탐꾼 중 한 명인 살몬과 결혼하였습니다.
라합은 아들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보아스는 예수님이 나신 곳 베들레헴에서 가장 유력한 자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모압 출신의 이방여자 룻과 결혼하였습니다.
룻은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았습니다.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룻이고 다윗의 고조 할머니가 라합입니다.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주류의 계보이기보다는
믿음의 세계를 연 계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황금빛 같이 빛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여리고성의 소경 거지 바디매오
1>바디매오의 소리 지름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지나가실 때에
여리고의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있었습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구걸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소리를 듣고 만사를 제쳐놓고 소리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10:47)“
소경거지 바디매오는 앞을 보지도 못하고 거지라서 모든게 불편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가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
다윗의 자손이란 왕으로 나신 예수님이십니다.
왕으로 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리지르는 것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에게 가장 불쌍히 여김을 받는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말세의 오늘날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구할 것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소리 지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서1:21)“
예수님의 긍휼을 기다리면 남을 긍휼히 여길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도 남을 긍휼히 여기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소경거지 바디매오 처럼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소리 지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더욱 크게 소리 질러라
말세 징조로 나타나는 마귀의 미혹은 교회에 소리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장된 거짓의 소리가 크게 나게 합니다.
“인권”이라는 소리를 내게 합니다.
비대면이라는 말로 교회에 모여 소리내는 것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중국우한폐렴의 핑계로 교회에 찬양소리, 통성기도,
강대상의 외치는 소리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를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눅18:39)”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오고 이 때에 모이기를 힘써고 찬양 소리와
기도 소리와 성경 읽는 소리가 더욱 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여리고의 부자 삭개오와 큰 부자 청년 기업가
여리고의 세무서장이자 부자인 삭개오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누가복음19:1~2)“
복음서에는 두 부자가 나옵니다.
여리고의 부자 삭개오와 큰 부자 청년 기업가입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이름보다 더 유명한 이름은 큰 부자 청년입니다.
그런데 큰 부자 청년의 이름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이름은 없는데 거지 나사로의
이름은 있습니다.
왜 큰 부자 청년 기업가의 이름과 부자와 나사로에서 부자의 이름이
없을까요? 성경은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에는 큰 부자의 이름과 부자와 나사로에서 그 이름이 유명할지라도
구원받을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만 기억할 뿐입니다.
큰 부자와 부자와 나사로에서 부자 이름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은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25:12)”
여리고의 부자 삭개오와 큰 부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자 하여 뽕나무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이
길 가시다가 멈추셔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누가복음19:5)“
큰 부자 청년 기업가가 예수님에게 찾아왔으나 예수님은 큰 부자
청년의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큰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어 예수님을 좇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큰 부자 청년의 이름을 부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부자인고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줄 수 없어 심히 근심하여 돌아갔습니다.
큰 부자 청년은 생명책에 이름이 없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예수께서
부르시는 이름이 되어 “아무개야 이리로 올라오라” 는
나팔 같은 주의 음성을 듣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https://blog.naver.com/sano153/222859483719
첫댓글 아멘!! 은혜 받았습니다...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