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75,「가을은」외
신웅순(시인․평론가․중부대명예교수)
가을은 하늘처럼
파랗게 깊어가고
가을은
홍시처럼
빨갛게 익어가고
가을은
가랑잎처럼
한잎 두잎 져 가고……
-김월준의 「가을은」
가을은 하늘처럼 파랗게 깊어가고, 홍시처럼 빨갛게 익어간다. 가을은 또 가랑잎처럼 한 잎 두 잎 진다.
꾸밈도 없고 테크닉도 없다. 참으로 단순하다. 그런데도 세 문장이 편안하게 읽혀진다. 인생에서의 가을은 깊어가고 익어가는, 한 잎 두 잎 지는 60때쯤일 성 싶다. 색깔도 청은 깊어가고 홍은 익어간다. 지는 색은 황이다. 색깔도 절묘하다. 가을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다는 것이다.
글 쓴다는 것은 이렇게 가랑잎처럼 필요 없는 말들을 덜어내는 것이다. 한 잎 두 잎 다 보내고 나무는 스스로 동안거에 드는 것이다. 천진무구, 천진난만이 이런 경지가 아닐까. 남을 것만 남는 것이 시가 아니라 남을 것도 없는 이것이 시이다.
제 몸의 무게 보다
큰 짐을 지고 가는
네팔 친구 할리는
아이가 다섯이다
하루에 일만 원 벌어
다섯 아이 지고간다
-김영재의 「히말리아 짐꾼」
네팔 친구 할리는 자신의 몸보다 무거운 큰 짐을 지고 간다. 자식이 다섯이란다. 하루에 일 만원 벌어 다섯 아이를 지게에 지고 간다는 것이다.
그가 지는 짐은 다섯 아이들의 몸무게이다. 25킬로만 잡아도 일 백 킬로는 족히 넘는다. 이것을 묵묵히 지고 짐꾼은 히말리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읽어봐도 우리들의 현실 이야기로 읽혀진다. 할리의 짐은 바로 우리들 삶의 여정이 아닐까.
수백년 광년 거리도 시는 단 몇 센티의 한 두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상상력 때문이다. 함축은 상상력에서 나오고 상상력은 함축에서 나온다. 시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주간 문학신문.2023.3.8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채찍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