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축제>
티샤 베아브-성전 파괴 기념일
개인이나 공동체가 고통스럽고 슬픈 과거의 일을 기억함은 어려운 작업이다.
역사상 일어난 여러 가지 일 중 어떤 일은 기억하기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그리고 망각하는 쪽이 훨씬 편안하기 에 가능한 한 덮어두려고 한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고 아픔을 기억하는 작업은 삶의 지혜와 미래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부여해 준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영광과 환희뿐 아니라 민족적 고통까지도 축제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민족적 슬픔을 기억하는 날이기에
축제라기보다는 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한 날 중의 하나가 바로 티샤 베아브(Tishah be-Av)이다.
티샤 베아브는 이스라엘력 아브 달(Av:현대력 7-8월) 9일(Tishah)로,
두 차례나 있었던 이스라엘의 성전파괴를 기억하며 슬퍼하는 날이다.
솔로몬이 건립한 첫 번째 성전은 기원전 586년 아브 달 10일에 바빌론에 의하여 파괴되었다.(예레 52,12 참조).
2열왕 25,8-9에는 아브 달 7일에 성 전이 파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7일부터 성의 바깥벽이 파괴되기 시작하여 9일에는 성전 본 건물이, 10일에는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랍비들은 가장 큰 재난이 9일에 시작되었으므로 9일을 '재난의 날'로 보았다.
탈무드 전승에 의하면 두 번 째 성전은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도 아브 달 9일이었다.
그리하여 아브 달 9일이 성전파괴 기념일이 된 것이다.
미슈나에 의하면 아브 달 9일은 수차례에 걸친 성전 파괴 이외에도 또 다른 역사적 재난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에집트를 탈출 한 이스라엘 후손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사건이다.
이렇게 해서 아브 달 9일은 유다인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박해 및 불행을 상징하는 날,
국가의 독립을 잃고 망명 생활에 들어간 사건을 슬퍼하는 날이 되었다.
티샤 베아브의 의식 및 관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개인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금욕을 통해 슬픔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회당의식이다.
티샤 베아브는 단식을 하는 날이다. 음식과 마실 것을 일체 피하고 목욕을 하지 않는다.
기름 이나 향수를 몸에 바르지 않으며 가죽신을 신지 않는다. 일을 하지도 않고 부부관계도 피한다.
이날 밤에 신심깊은 사람들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마룻바닥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기도 한다.
회당에서는 다른 날과는 다른 의식을 통해 민족공동체의 슬픔을 표현한다.
촛불을 희미하게 밝 히거나 회합 직후 불을 완전히 꺼버림으로써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그 암흑을 기억한다.
회당 안에 검은 휘장을 치고, 회중들은 바닥에 앉아 구슬픈 어조로 기도한다.
기도문과 함께 파스카 때 식탁에서 하는 네 가지 질문이 회중들에게 던져진다.
"왜 오늘밤은 다른 날과 다른가?" "왜 파스카 밤에 우리는 누룩 안 든 빵과 쓴 풀을 먹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이다.
이 날 이스라엘은 성전파괴를 아파하며 자신들이 겪었던 그 외의 여러 가지 민족적 수난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맥락 안에서 성전 파괴를 재음미한다.
경우에 따라 이마에 재를 뿌리거나 통곡의 벽을 찾아가 애가를 읊기도 한다.
오늘날에 와서도 이날에는 회당 의식 및 기타 개인적 예식이 계속될 뿐 아니라
오락장소 등은 문을 닫고 신문이나 방송은 오락적인 기사 및 방송을 피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옛 모습을 조명하는 기사와 방송을 내보낸다.
인간 개개인과 공동체에게 과거란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기쁜 추억이든 고통스러운 경험이든 그 과거를 배제하면 현재도 미래도 의미를 상실한다.
이스라엘은 특히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을 소중히 여긴 민족이다.
그들은 고통의 기억조차 끊임 없이 현재 속에서 되새기며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성전 파괴라는 민족의 수치이자 고통 을 기억하고자 한 티샤 베아브는 결국 그러한 이스라엘의 의지를 보여주는 기념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