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필
* 등단 : 시와 비평
* 동인 : 두레문학, 산다촌, 다울문학, 글쌈
* 회원 : 한국문인협회, 울산문인협회
* 공저 : 좋은문학, 시와 비평, 두레문학
입양 /
바람이 허공을 할퀴고 간 자리에서, 그 해 옆구리 꺾인 배나무 둥치가 대지에 얼굴을 처박았다. 입술 턴 움막엔 해마다 달디 단 맛을 가려내는 선별기가 앉은뱅이로 먼지를 뒤집어썼다. 물기를 잘린 나뭇가지가 툭 부러지듯 애비의 등짝도 자꾸 말라가고, 배꽃이 만개하던 배나무 뿌리에서 씨앗을 찾는 애비의 울음소리가 산천을 흔들었다. 평생 손톱아래 까만 흙을 달고 지내신 손가락에선 흙 대신 대출이자 갚기도 버거운 각질이 배꽃처럼 힘없이 떨어졌다.
핏빛으로 둘러진 껍질을 뚫고 쏟아내던 시뻘건 선지덩이, 접붙이한 가지가 겨울을 견디도록, 애비는 그 해 내내 상처를 동여매느라 열 대박 넘는 생의 물을 퍼 올렸다.
천성산 신방에 든다 /
어두워지는 봄밤 환하게 달이 가득 차오르면 진달래 봉우리가 흐드러지게 맺힌다. 싱건지 나물 같은 여린 버들가지 신랑, 꽃잎 같이 가벼운 새색시, 조갑지에 담긴 진달래꽃잎 꽃밥 나무가지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시늉을 한다 ...더 줄까...응 더 줘...조갑지에 꽃밥을 수북이 담아주던 손길, 돌아서려다 말고 고개를 갸웃하며 이쪽을 보고 있던, 꽃빛으로 물든 뒷모습이 보일 듯 말 듯한 연분홍이 천만번은 아찔한데... 너른바위 사이로 땋아 내린 붉은 제비부리 댕기가 나붓이 날린다. 수줍은 봉우리 할 할 천만 번 백만 번 주문을 공굴린다. 마음으로 보낼 수 없는 신방에 든다. 구곡간장 뿌리 끝과 끝, 산의 정수리까지 달이 가득 차 오른다. 입을 아 벌리고 숨결의 터럭도 흔들리지 않게 고요히 아찔한 향기를 마신다. 까닭 없이 설래이던 눈물이 가지마다 앵혈 되어 터져 나온다.
화성에 간 처용 /
두 다리는 내 것이고 두 다리는 네 것이라는 그날 밤 같은 서슬퍼런 사건이 없는 화성에는 하룻밤 닷새를 더 살자고 그대와 내가 바람소리 쌓인 대숲에서 두우~웅 두우~웅 노닐던 십리 길을 없애는 일이 없는 화성에는 두우~웅 두우~웅 밤늦도록 하늘 끝 가없이 앙가슴 맞비비며 놀건도 만은 어느 무명씨 하나 마음자리 벗어 놓고 옛일을 잊어버려 아랫마을로 내려가 구멍 뚫린 반쪽을 찾아다니는 몽환이 없더니 두우~웅 두우~웅 원 없이 자나 깨나 처음 그대가 내게 준 물빛언약 그리며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움켜지지 않아도 들숨 날숨 대나무에 꽃을 피우는 화성에는 불멸을 살자니 지겹도록 눈물겨워 한번은 신랑으로 한번은 신부로 그대와 내가 바꿔가며 두우~웅 두우~웅 꼬옥 껴안아 소맷부리 장단에 만개한 복사꽃이 강바람에 흔들리더니 하늘과 땅이 붙어 출렁이는 처용의 아들딸들이 와글와글...... 내 꿈을 두드리는... 북소리
참외 /
땅 속 어디 전생의 검은 하늘과 지상의
황금 땅에 씨방이 막 하늘을 열었네
더듬거리며 내걸었던 넝쿨손 지문
검은비닐, 전자폐품, 헌옷, 빈깡통
울타리 한켠에 버림받은 패잔병의 은신처에도
노란 꽃 진 자리, 툭 불거진 십계(十界)의 꿈길이 있네
꿈의 촉수마다 손금이 다 닳도록 부딪쳐도 아득한 곳
노랑 꽃잎 하나와 소름이 돋을 지경으로 아찔한
굼틀거리는 관능의 아우성이
파리 떼 쓰레기 해체장에도 있네
풍진세상 막걸리처럼 구수한 주름진 그의 얼굴
희망가를 부르는 음계에
40년 하루 같이 쓰레기 속, 몸을 버린 우주가
불결함과 무지의 증표들 기도처럼 분리해
고양이 서생원 죽음의 냄새도 따라갔네
억울하면 출세 하라는 슬픈비수의 말
누런 땅의 허기마다 채워 넣었을까
어스름 노을로 지던 굵은 빗방울
끌로 파듯 혼연일체 등고선의 골을 파네
계절의 중목에 바겐세일 북새통, 쓰레기 해체장에
금사리 향이 농무(濃霧)하게 발목이 젖네
작명소, 기웃거리다 /
대나무공원 사이로 난 오솔길
명상호흡 군자의 이온산소 들이키며
간밤에 내린 차가운 폭설
자전거바퀴 문양 위로 눈꽃이 내린다
보이는 것 같으나 만질 수 없는
대지의 질그릇에 담긴
태화강 벗 삼아
빗살의 모양으로 서각을 새기던 잎사귀
가지산 정기 이어받아
단군기상 대물림 할 만 만년 민족의 자부심
돌 속에 갇혔다
기울어진 타원형 돌덩이에 새겨진
‘에코폴리스선언’
현재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말을 기준으로 제정한
태화강십리대숲공원 새로운 이름표
말똥말똥한 눈으로 요리조리 살피는
관광객 엇나간 입가의 수수께끼
늘 상 그러했듯 실체 없는 정기만 무성하다
눈꽃에 글씨 새기는 교양 있는 꽃잎들이여
무수한 물방울에 햇빛 부딪쳐
내부로 스며드는 무지개 조각
표음문자 정수리에
대나무말뚝 박는 혈침소리 낭자하게 흩어진다
남편을 기다리며/
산지골 독산교 벗들을 지나
물안개 피어오르고 달빛이 산란하는
어둑한 뫼산 못골에 터를 잡았을 거야
바람이 지나간 흉터마다
서걱되는 납덩이같은 눈썹
밤과 낮의 눈꺼풀처럼 흔들리고 있을 거야
형체 없는 수많은 사연이 범람하는
여백의 시퍼런 호수의 눈 속으로
쩍쩍 얼어붙는 시린 새벽을 열어
겁 없는 어린치어의 기억 속
어둠을 유영하는 백야이고 싶을 거야
시공을 초월한 망부석의 기다림
빗살무늬로 흔들리는 물결
수심 짙은 고독만이 몸부림칠지라도
그르쳐진 시간으로 이루어진
시급히 흘러간 슬픔이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모든 제국의 꽃들 밤의 기적을 믿으며
미늘 없는 겉보리밑밥에
무현의 달빛을 낚으려는 사내
얼굴 가득 둥근 물색 들이고
즐거운 기호언어 만발하는
집으로, 제국의 기적 속으로 들어 올 거야
접두어 /
그 땐 왜 몰랐을까
문고리에 달라붙는 첫눈 내리던 새벽
엉겨있는 발가락들
뱀의 혀뿌리처럼 아궁이 시뻘건 불
방구들로 빨려들어가면
목구멍 틀어막는 아음소리 나왔다
장독 위 밥알들이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그릇 수만큼 채워진 가마솥
곤두선 부지깽이 진 두 손
솥뚜껑 두께만큼 구둔 살 박힌 각질
두고 온 죄지은 세월 속,
아 좋아, 아, 좋아
가슴 저미게 좋을 때마다
누군가의 온기를 뺏어
첫눈이 녹아 버린 다음에야
겨울 눈꽃이 포근하게 쌓인다는 것을
그 땐 왜 몰랐을까
그 해 딱 한번 배앓이 했던
피붙이보다 더 붉은 겨울꽃 같은 새언니
태화강 비애/
수심이 깊을수록 갈 길을 돌아서
반탕골 수문을 지키던
절로 범람하는 강물에 비가 내리는
달빛도 반쪽 숨은
수면 위 때늦은 한 마리 새
보폭 젖은 날개 짓을 하는
적층으로 쌓여진
물옥잠 붕어마름의 속삭임
광활한 물의정화 모래알이 채굴되는
수심이 낮을수록
대숲을 잡고 타오르던 물수세미
추억의 모래성을 쌓고
연어 알 같은 어린 꿈들이 숨을 곳이 많던
아직 부유하는 영혼과 정박 못한 그리움이
빈 강물에 침몰하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
남을 동정하는 인간은 농땡이를 치지 않는 거지
가슴까지 욕망이 차오르면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여자
흥건함 잠재우는 원초적인 색色 발산하면
따뜻한 물 집 앞 개울로 강물로 흐른다지
낚싯대 드리운 인류학을 한다는 늙은 남자
미늘에 달려오는 인간감별법
양아치 종소리 농땡농땡 울린다지
복잡한 생각은 모두 소용없고
즐기는 게 남는 거지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즐길 기력이 남아 있지 않더라는
욕망이 차오르는 따뜻한 물
집 앞의 개울로 흘러들어 고기들을 살찌우지
불쑥불쑥 기력을 낚아
아득한 다산의 풍요로움
강물과 바다를 낚아 올리는 십계十界 넘어 고래잡이를 가지
실직한 픽픽한 웃음 조롱석인
나이 들면 단순해지는 공평한 나눔의 부활을 즐기지
*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일본의 이마무라 감독의 영화제목
고산서원/
갈퀴를 자르고 재촉하던 가을비
온 몸으로 젖고 있던 고산서원
대청마루 애절한 어미의 기원소리가
구멍 뚫린 가슴에
정화淨化의 눈물로 고이게 하는 것이
밤을 새워 마음과 귀를 열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절벽 같은 풍장風葬의 세월
그 옛날 유생의 뜻을 기리고 싶은 것이며
저 험난하고 고독한 세상에 합류하는
낙동강이 되고 싶은 것이며
가슴만으로도 여유로움을 주는
암산유원지가 되고 싶은 것이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의 몸부림이 되고 싶은 것이며
그리하여
천년만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솔나무 측백나무의 그늘이 되어보고 싶은 것이며
밤새워 너른 마음 펼쳐놓은
삼세를 이어가는
대산大山의 참뜻을 흠모하고 싶은 것이며
그리하여
내 마음이 네 마음이며
네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억겁의 세월에 새기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충주호/
세월의 흔적
돌이끼로 피어나던 중앙탑
가슴벅찬 삼국합일
충주호에 담아놓고
탄금대 넘어 일불승을 기다렸나.
박달재를 넘고 넘어, 마즈막재 재를 넘어,
나루마다 닿는 마음 물결위에 찍고 보니
물보라도 웃고 있는
인연 따라 달려왔네.
지인들의 글벗모임
목백일홍이 우륵인가?
반색하며 반기는데
물결 따라 고인 마음 충주호에 담아놓고
음률 따라 흐른 마음 탄금대로 흘러가면
지인들의 화합마당
우륵미소 금수산과 돌이끼
중앙탑이 옷자락을 잡아끄네.
생태공원조성 /
수술시간 7개월
수술목적 자연보호
인공미인 꿈꾸며
나의 온 몸 조형도 문신으로
도려낼 부위 접목시켜야 할
줄기세포 해부도가 내 몸에 그려진다.
원형탈모증 앓아가던 십리대숲
돌아가는 분쇄기에 순서를 기다리는
잘려진 나의 몸통
불면증에 시달리며
동맥 경화증 앓는 태화강 옆
번호대기표를 단 채
잘려져 누워 있다.
수요공급 기호가치 떨어져
태화강 둔치 일차 수술자국
시퍼런 흉터가 뒹굴고 있다
자연적 조형물로 내 눈을 가려도
조화로운 두 바퀴 공회전 속
이별의 강인한 잡초들은
또 어디로 가야하나
짜-앙 짜-앙
예각으로 베어진 몸 위로
발그레 태양이 걸어간다.
첫댓글 황말남 시인님 처음접한 싯글, 저 가슴에 찡 하게 울려 오네요. 이렇게 좋은 글 쓰고 계신줄 몰랐어요. 맑은 웃음처럼 언제나 고운글로 보는이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어 가길 바래요. 멜 알려주시면 대마도 사진 보낼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