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있다.
길 가득 꽃이 누워있다.
좁쌀알갱이처럼 뒹구는 느티꽃.
빛바랜 버들개지처럼 누운 은행꽃.
느티와 은행은 원시에 가까운 겉씨식물이어서
바람의 조랑말을 타고 온 신랑을 맞아야하는 신부는
벌과 나비의 유혹에 필요한 화장술로 곱게 꾸밀 필요가 없어
꽃받침이나 꽃부리도 없이 파름한 원시의, 꽃이 아닌 꽃으로 머무는 것이다.
스스로 사랑을 선택할 수 없는 느티소저나 은행낭자의 운명을 슬퍼하진 말자.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수억의 사내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리다
오직 하나만이 사랑에 성공하고 나머지는 모두 추락해,
스러지는 참혹함으로 한이 맺힌 몽달귀신들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지분거리는 소리로
늦봄의 밤은 끈적이고 소란한 것이다 ;
보라, 모든 매스컴에서 터져 나오는,
그녀의 입을 대신하는 놈이 저지른 추악한 국제적 성(性)의 향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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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과 초여름이 만나는 날.
사내꽃이 길에서 도랑으로 흐르다
바람 잔 모퉁이에 무리로 머문 꽃무덤에
추모의 가슴 한 조각, 고요히, 무겁게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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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와 은행은 군주(君主)이어서
태양이 둘이 아니듯 홀로 존재하기에
지금도 이들은 당산나무로 대접을 받으며,
세상에 느티숲과 은행숲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리 도도한 군주의 후예들을
가로에 일렬로 벌려 세우고
푸름을 재촉하고 있으니,
군주의 도도함을 잃고 늘어선
저 느티와 은행은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
들에 있는 꽃은 아름답지만 장례식장의 꽃은 처연하고
홀로 우뚝한 당산나무는 경건하지만 가로의 저들은 무람하다.
들의 꽃처럼 아름답고
당산나무처럼 경건한
소리여울의 정악모임,
나, 수꽃 하나로 날리다
문득 소리의 암꽃 만나
소리의 잉태를 바라지만
늦봄의 저들 꽃처럼 스러진들 어떠리.
아름다운 소리의 꿈을 함께 꾸었나니.
첫댓글 맞어!맞어! 정말 그러네!
나무 하나에도 그들의 본질이 있으니
있을곳이 따로 있음이여!
자연 만큼 더 질서를 지킴이 무엇이겠는가?
美 醜가 한덩어리속에서 그 진가를 보여주나
인위적으로 파괴된 자연의 생태는 '처연'하기만 한것 같습니다.
무관심으로 지나쳐버릴 모두의 감각들도 이렇게 살려 주시니
빠달선생님의 인기는 가히 안 좋아할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없을듯...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남녀는 구별이 있어 여자만 좋고 노소는 구별이 없으시다고...^^ 소인도 당첨되었사옵니까?._()_
참 신기하지요.
느티나 은행의 수억의 수꽃은
몇 십리를 바람을 타고 날아가 뭇 씨를 뿌리지만
이들이 숲을 이룬 땅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으니
고고(孤高)한, 외롭고(孤) 우뚝 높은(高) 나무이지요.
(소나무는 高하지만 孤하지는 않기에 사람의 제물을 먹을 자격이 안 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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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인을 좋아하는 까닭은
모든 여인은 어머니를 품고 있으며
눈은 별을 보고 머리는 꽃을 담으며
감각은 섬세하고 가슴은 풍성하며
허공에 떠도는 미세한 감각을 잡아내는 감수성과, 예지능력이 뛰어나고
자연과 세상과 사회에 순응하지만 때로는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는
그 기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랍니다.
당연 여로님도 예외 아님.
사람의 삶과 얽혀진 각 나무들이 품고 있는 에너지의 쓰임이 참 재미있네요.
그러게요. 소나무는 당산 나무 자리에는 없지요. 내 놀던 옛동산에서 추억들을 만들어 주는 역할로 충분...^^
이러한 세밀하고 부드러운 관찰력으로 여심을 흔드시니 "나를 안 좋아는 여자는 좀 모자라는 여자일거라고...ㅎㅎㅎ" 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