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도 그 여자지만 그 남자는 그게 뭔가? 그들의 행태를 결코 좋게 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떡하다 이렇게 된 겁니까? 늙은 부모는 자식들에게 짐일 뿐이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자살을 아내가 도와준 겁니다. (남편은 60, 아내는 50 정도)
그 아내는 후처였습니다. 남편은 지병으로 날이 갈수록 고통스러워했고 아내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지요.
이 경우나 그 경우나 자식들이 있습니다.
뉴스를 접하니 최윤희씨의 자녀들은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하네요...
자살대국 대한민국,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입니다.
문득 옛날 일이 떠오르네요. 1985년 초등교사 사표내던 해입니다.
4학년 여자 아이가 반장이었는데 가정방문했다가 그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딸이 어렸을 때 한 번은 엄마에게 묻더랍니다.
"엄마, 영생이 뭐예요?"
그걸 왜 묻나 싶어 물어보니까 꿈 이야기를 들려주더랍니다.
꿈에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이 흰옷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아이가 물었습니다. 사람은 왜 죽는 거냐고...
예수님이 대답했습니다. 영생을 얻는 거라고...
천주교 가정이었는데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허무와 타락의 근원입니다.
어쩌다가 이 나라에서 늙은이들이 짐짝으로 변한 겁니까? 젊은이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됩니다.
동방예의지국이 동방무례지국이 된 거 아닌지요?
저의 아버지는 90을 살다 가셨습니다.
57세에 상처하셨고 그뒤 잠시 어떤 분과 동거하시긴 했지만 평생 혼자 지내셨습니다.
고약한 양반이셨고(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보통양반이 아니셨습니다.(정말 모시기 힘든...)
가실 때는 모든 것 털어버리고 회개하고 가셨지요.
저는 우리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리워합니다. 무얼 존경하는냐?
유산 한 푼 남겨 두신 거 없어도 당당하셨습니다.
"너희들 효도해야 복 받는다." 성경에 있다는 거지요.
어찌하여 늙은 부모는 자녀들에게 짐짝일 뿐이며 늙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짐짝이 되기 싫어 자살을 택하는 겁니까?
심지어 자살을 위장한 자식의 타살도 있습니다.
내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복이 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온통 관심이 이 세상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늙을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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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1(금) -가을에는 어머니가- (8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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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몇인데! 여든 셋이나 되는 노인이 어머니가 그립다고 하면 남들이 웃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 걸 어찌합니까. 초가을이 되고, 내 생일이 다가오면 어머니의 그 품이 그리워지는 것이 팔십이 넘은 늙은이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 인생 팔십 삼세의 결산인가요.
나의 가까운 친구의 어머니는 올해 백세입니다. 거동은 못 하시고 벌써 일 년이나 병상에 누워계십니다. 요새는 요양병원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데 내 친구는 계란찌개와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매일 같이 찾아갑니다. 다녀와서는 한숨 집니다.
그 친구는 모르지만 나는 그 친구를 부러워합니다. “내게도 어머님이 살아 계시다면, 비록 거동은 자유롭지 못하여 병상에 누워계셔도 찾아가 뵐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내가 하는 줄을 내 친구는 짐작도 못하겠지만 내 마음은 그렇습니다.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아들·딸이 그나마 ‘성공’해서 잘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런 속상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무는 좀 조용하게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어주질 않고, 자녀는 어버이를 섬기고 싶어 하나 기다려주지 아니하신다.” 중국의 옛글인데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글입니다.
부모가 아직 살아계신 사람들, 돈 버는 일보다도, 출세하는 일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부모를 섬기는 일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속히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첫댓글 제가 고인이 되신 최윤희님의 입장에서 온전하게 말씀드릴수 없겠지요.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올 기사와 정황들을 봤을때 최윤희부부께서 자살을 선택하신건 자식들의 효심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병으로 인해 남은 여생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음이라 생각합니다.
종교적인 믿음이 약하여 자살한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최윤희님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한 저의 노력은 그저 안타까움이 크게 묻어날 뿐이네요.
최윤희님과 남편분이 삶에 대한 통찰이 부족한 분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보통의 자살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자살에 대한 찬반을 논하기는 싫고요~ 다만 최윤희님과 남편분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니 ㅠㅠ
반갑습니다. 토정신과학선생님^^ 최윤희부부께서 자살을 선택하신건 자식들의 효심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병으로 인해 남은 여생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음이라 생각하신다고... 제 생각에도 그게 맞겠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이야기는 한편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안해근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신앙은 없지만... 자살이 경우(안락사 등)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다 또는 그렇지 않다라는 판단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진실로 사랑했던 저 노부부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아내를 보내야 하는 남편은 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하는 생각에서 유서를 올린 것입니다. 그것이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또는 신앙의 관점에서 잘못된 것일지라도 같은 인간으로 '오죽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연민의 감정있잖아요. 그렇게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정말 죽고 싶었고... 그러나 죽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내 참혹한 시체를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야 정원일 간사님의 존재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희망입니다.^^^^
유서를 남편과 같이 읽으면서 흐느껴 울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안해근님께서도 정말 죽고 싶은 시절이 있었군요. 저는 그런 고통까지 아직은 느껴보지 못했구요. (무의식중에 고통을 맞이하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했는지 고통을 회피하면서 살았더라구요.)그렇지만, ...올해 친정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폐암투병시 제가 안타까웠던 것은 마음에 고통을 맞이하지 못하고 고통속에서 지낸 모습이었습니다. 몸의 고통은 의사가 마약 성분으로 고통을 견디게 해 주었지만, 마음의 고통은(두려움, 잡념등) 아버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가족들의 격려와 지지도 중요하지만
죽고 싶었다지만.. 저 부부의 고통만큼은 아니었지 않나 싶습니다. 마음의 고통은(두려움, 잡념등) 환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곁에 있는 가족들의 지지와 체휼(體恤)이 필요하다는 뜻에 공감이 갑니다.
아버지 스스로의 몫이 컸습니다. 저도 처음에는아버지가 좀더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기를 바랬고 안타까워 했지만, 아버지 마음과 같이 고통에 머물어서 함께 하는 마음이 중요했음을 가신뒤에 알고 통곡했습니다. 그 고통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고통으로 배우고 있는 것은 그분들의 자라온 환경과 상황등 여러가지 함께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그 어느 누구라도 판단할 수 없음을 알게되었지요.
또한 예상치 못한 고통이나, 어려운 문제는 그 것을 마음에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과정이 필요함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이나 사회정서에는 그러한 교육이나 삶의 지혜가 흔치 않음에 안타까움이 많네요.
예상치 못한 고통이나, 어려운 문제는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과정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것.. 오늘날 호스피스가 상당부분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혜택 받는 분들은 전체환자들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하네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08/2010100802109.html
우리 교육은 ~ 해야만 된다라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이성적 판단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고, 사람들의 다양성과 그 다양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중요성에는 저조합니다.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거나 행복하지 못하는 요인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제 의견이 길었네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라서 이해바랍니다.
안해근님께서는 행복전도사님같이 공인이 그러한 선택에 많은 사람들이 미칠 영향에 걱정이 되셨는지요? 남아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뒷마무리를 걱정하는지요?
우리교육.. 그저 공부 잘해야 된다. 출세하고 성공해야 한다. 좋은 대학 들어가야 된다는 식이지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들도 이에 못지 않고... 다양성을 흔쾌히 받아주고 다름을 인정하는 도량이 여전히 아쉽지요. 사교육광풍을 일으킨 근원을 살피면 무언가 해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직종간 계층간 소득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화된 것 하며...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관조하고 인생의 아름다운 뒷마무리를 위해서는 종교에 귀의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안해근 님의 글에 의도가 그런 뜻이었군요. 좋은 말씀이네요.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니깐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언제가는 죽음에 이를 것이고, 그 앞에 후회가 없기 위해서그리고 신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떤 가치로 살 것인지? 묻고 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때론 버겁고, 좌절스럽고, 고통스럽습니다. (신의 가르침대로 살면면 고통없이 살수있는데...)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러한 고통을 느끼기에 다른 사람의 좌절과 고통 역시도 크기, 강도의 차이가 문제마다 다 다르구나! 볼수 있었습니다. 나와 엄청 다른 상대를 세심히 살피는 것이 진정한 존중임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은 이성적인 지식적으로 안 부분이 매우 큽니다. 감정적으로 그것을 느끼게 잘하려고 하면 먼 길이겠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러나 큰 장애가 있는데 그것은 삶에 실천없는 이성적 아는 지식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상대의 감정에 비를 같이 맞아주기 보다는 우산을 씌어주고 싶어서 답을 주고 있는 오래되고 무거운 저의 습관입니다. 이 습관 오래되고 무겁기에 바로 바뀌지 않음을 인정하기에 나 자신과 타인들에게도 조급하게 바라지 않게 되는 마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나가 이렇게 나름대로 노력하는 과정이겠지요. 이 과정속에 종교의 가르침과 함께 하면 더 힘이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안해근님!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다시 마음을 정리하게 되기도 하고 오만하고 자만한 나를 더 관찰해서 겸손해 지고 싶어 집니다.
오늘 다시 최윤희님의 유서를 읽으면서 아쉬운점이 생각났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나의 일이기에 마음이 더욱 아파서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 생각나네요. 자살한 나름의 고통이 크고 힘들었겠지만 계속 우리의 희망이 되어으면 했던 기대가 있었는데 그 부분이 아쉽네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고 아쉬운 부분일꺼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우리 자신이 희망이 되면 되지 !' 라는 생각도 들지만, 행복전도사로서 기대가 있었서 그랬나봅니다. 아쉽고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