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 일기
송 봉 현
우리는 대지 어느 곳에선가 귀하게 태어나 푸른 하늘 한 줌씩 쥐고 살아간다. 인연의 끈으로 만나 교제하고 어울린다. 그 만나는 분들로 인하여 내게 일어나는 뜻밖의 일도 있다. 다가서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더 큰 이익으로 전변 한 경우도 있다. 혹은 기쁨으로 마지한 일이 재앙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꽃처럼 피어나는 우정, 시대의 수례바퀴에 끼어 넘어가며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이로움과 해악으로 다가선 그 무엇.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옛 말씀을 돌아본다. 70 넘은 나이엔 좋은 친구 나쁜 친구가 어디 있는가. 다 털어내고 경험의 채로 거르며 어울려 지내면 된다. 어울림 그 자체가 복이다.
하나원 방문은 내가 가봐야 할 곳으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7년 전 몽골여행 때 만나 교제가 지속된 최 동무로 인해 가게 됐다. 통일선교회에서 추진한 하나원 방문에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고 내게 담당 팀장 안내를 요청한 최 동무. 그는 방문 팀 명단에 이름이 오르자 나를 향해 함께 가자고 한 것. 담당 박 팀장은 18명인데 딱 한자리 남았다며 즉석에서 끼워 넣어버린 것이다. 하나원은 북한을 탈출하여 우리사회에 정착하기 전에 3개월 간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일요일 가벼운 위문품을 준비하여 찾아가 위로와 선교가 목적이다. 그런 연유로 신앙심이 자리 잡지 못하고 성경지식도 척박한 내 형편으로는 팀에 낄 개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홀리듯 팀의 일원이 된 것이다. 최 동무는 60대 후반이다. 그는 토·일요일 마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까지 오가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열정을 쏟고 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오른 것일까. 신앙심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 신앙의 깊은 샘물 맛을 나는 아직 모른다.
우리 일행이 하나원을 찾아간 날은 겨울비가 추적거리는 을씨년스런 날씨였다. 10시 조금 지난 시각. 하나원 내 교회에선 담임목사님 설교가 진행 중이었다. 목사는 말미에 000 성도들과 특별한 만남이 이어진다고 소개하자 의례적인 박수를 쳤다. 제199기, 200기, 201기 생 중 개신교를 믿는 자매(남성들은 화천하나원에서 교육)들과의 만남이다. 다른 건물에서는 목탁소리가 아스라이 들려 왔다. 어느 방에선가 천주교 모임도 있을 것이다. 하나원 생들에게 종교의 자유로움과 평등성을 보여준 셈이다. 일행은 각자 7-8 명씩 마주하여 한 시간 정도 얘기하는 프로그램이다.
개명천지. 발달한 교통과 통신이 뒷받침하여 온 지구가 한 마을처럼 자유롭게 오가는 세상. 그런데 통제와 감시의 눈과 총칼 앞에 하나뿐인 목숨 걸고 탈출하는 절박함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 위험스럽고 슬픈 상황이 우리가 살고 있는 북쪽 동포들의 실상이라니. 그 험난한 북한 탈출과 중국에서 겪는 갖가지 고난스런 삶. 다시 동남아 여러 가시밭길을 헤쳐 살만한 희망의 땅이라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 온 동포가 2만 7천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국정원에서 레이저 빛보다 강할지 모른 의심의 눈빛 속에 일정기간 검증을 거친다. 그런 뒤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국가에서 지역별로 주선한 곳으로 간다.
그들의 심신 상태를 헤아려본다. 조바심과 불안 등으로 심하게 지쳐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땅. 가족과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탈출할 수밖에 없는 비통함. 아무리 주체사상으로 세뇌 되었다지만 백성이 목숨 걸고 도망치는 상황이라면 그 체제는 모래성으로 봐야한다. 이곳에 오기까지 기나 긴 어렵고 눈물겨운 시간에 그들은 시쳇말로 파죽음 상태와 비슷할 것이다. 북한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와 조그마한 주거 시설 제공 가능한 일자리 연결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 중 이십오 퍼센트 정도가 자리 잡았다 한다. 나머지는 방황 속에 하루하루 살아간다니 참으로 딱하다. 더하여 탈북민이라면 기피하는 남쪽 동네 정서. 학교에서도 왕따 당한다며 감추고 산다고 한다. 세월이 이 괴리를 메우리라 낙관한다. 통일 선발대로 보는 나는 그들이 잘 되어 아름다운 통일 본보기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주일이면 그들의 손을 잡고 잘살기를 빌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한 안타까움이다.
직사각형 탁자에 7명의 자매와 마주앉았다. 난 준비 안 된 팀원이지만 스스럼없이 가슴 열고 대화하는 유익한 시간이어야 한다고 다짐 했다. 내가 태어난 가난으로 찌든 어린 날의 고향, 나이 이름을 대며 인사 했다. 자매들은 함경도와 자강도 출신들이다. 이곳에 오기 전 교회를 만난 일이 있는지 물었다. 중국에서부터 기독교신앙을 영접한 두 분이 있었다. 성경지식이 허술한 나는 그 분들의 간증을 청해 듣기로 반짝 머리를 굴려 청했다. 다행이 따라 줬다. 파란만장의 삶 속에 맞이한 신앙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구구절절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나왔다. 눈물은 영화 ‘국제시장’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만 흐른 게 아니었다. 두 자매의 간증이 슬픈 영화요 질곡의 드라마다. 이어서 교회에서 나눠 준 교안에 따라 예수얘기를 조금했다. ‘다섯 자매는 동료들의 간증을 내 말보다 귀하게 받아들이라’고 했다.
우리사회의 기회와 어두운 측면도 들려 줬다. 꽃제비와 같은 노숙자도 많다고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분들도 일하며 어울려 살고 있다. 성공한 분도 실패한 분도 있을 것이다. 말이 통하고 같은 동포인 자매들은 한결 나을 거라고 힘을 실어줬다. 장차 사회에 나와 길에서 만났는데 내가 알아보지 못하면 하나원 201기생이라 하세요. 반드시 점심은 사겠다하니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먹는다는 것과 사랑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 신분 높낮이를 넘어 즐거움서열 앞자리임이 확인 된 셈이다. 우리들은 손잡아 흔들며 반갑게 작별 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여러 상념들이 고개를 쳐든다. 우리역사가 열린 뒤 빈곤을 털고 선진국부근에 이른 것은 불끈 일으켜 세운 과학기술 역량으로 비롯된다는 것을 백성들이 몇 분이나 인식하고 있을까? 과학기술이 쳐지면 곧 설자리가 없다는 절실함을 지도층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찬찬히 살피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는 흙 아래 박힌 뿌리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눈엔 풍요로운 숲만 보일 뿐 영광을 피어나게 한 근원인 뿌리는 간과 한다.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메아리도 없는 과학기술진흥을 외쳐대던 일. 과학기술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 주어 돋우며 살아온 일이 북한을 뛰어넘고 세계를 뛰어넘는 장한 보람이요 행복 일 줄은 솔직히 몰랐다.
우리에게 분단 70년은 무엇인가. 일본 강점이 분단의 원죄다. 일상에서 만나는 일본 백성은 심성이 곱고 도덕도 높아 보여 본받을만하다. 그런데 정치화의 물결에 휩싸이면 승냥이로 돌변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분단의 공동정범이다. 러일 전쟁 뒤 미국은 한국을 일본에 귀속시키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국제사회엔 없다. 강대국들이 쳐놓은 그물을 이제 찢을만한 힘이 생겼다고 믿는다. 민족차원의 필수공통과목인 통일. 우리가 북한보다 40배 넘는 국력이라고 자랑한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지원하며 돕는다. 지혜로운 통치자라면 국민의 뜻을 한데로 모아 행복한 나라 만들기와 통일을 밀고 갈 때 아닌가. 비록 깡만 남은 탕자 같은 북한실세들일지라도 아우르고 다독여 품어 녹이는 넉넉함과 금도를 누구에겐가 보고 싶다. 그것은 곧 민주평화통일의 길이라 믿는다. 얼마 남지 않았을 내 생애에 통일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뜬금없이 찾아간 하나원이 던진 과제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ㅎ
첫댓글 힘들지만 의미있는 봉사 하셨네요. 좋은 가르침에 하나원 자매들도 희망의 끈을 잡은 느낌일 것입니다. 여러가지 상념들이 동시폭발 하신 것은 그만큼 생각이 많고 깊기 때문이겠지요?
갑짜기 하나원 방문 깜짝 놀랐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감동적으로 글을 잘 쓰셨는지? 하나원 자매들이 큰 교훈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와있고 이만큼 경제가 발전한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다고 생각이되는데 어떤 정신빠진 국회의원은 그 지도자를 나치에 비유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 하였던 좋은곳 다녀오셔서 봉사도 잘하셨고 수고 많으 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하나원 방문 일기 잘 읽었습니다.
하나원 일기 잘 읽었습니다. 처음엔 하나원이 무엇하는곳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조국통일에 앞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아주 필수적인 곳임을 알게 됐습니다. 송시인의 글은 언제나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끝을 맺는데 참으로 애국적인 성향으로 본받아야 할 패턴입니다. 존경하는 후배 에게 고개 숙입니다.
송시인의 나라사랑, 과학기술사랑, 통일소원은 우리의 통일을 앞당길거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즣은 글로 많은 생각을
마음속에 담아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평소에 궁금해 했던 곳을 다녀 오셨군요. 3개월 동안에 교육을 받아서 남한 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좀 더 사랑의 마음으로 저들을 한 민족, 한 형제로 대해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하나원 방문 일기에 많은 감동 받게 해주신 송 시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원 방문 심금 기에 깊은 감명을... 조속한 민주평화통일의 날을 모든 분과 함께 간절히 기원합시다!
격려의 글 남기신 분과 다녀가신 회원님들께 감사합니다
참 어려운 일 하셨습니다.
하나원 방문 잘 하셧습니다 하나원일기 감명깊게 읽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