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기억이 지워져 갑니다.오래된 기억은 잘 잊히지 않는다는데 내겐 그마저 소용이 없나 봅니다.반딧불이.이틀 동안, 우리 고향 표준말을 떠올려봤지만, 영 기억이 안 나더군요.익산 어느 마을 대나무숲에 반딧불이가 출현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가기로 했습죠.누가 그러더군요."시글시글한 모구땀시 신체포기각서 쓰고 가셔야 합니다."익산 금마.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죠.나는 이곳에서 너끈히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이틀쯤은 즐겁게 보낼 수 있답니다.반딧불이... 개똥벌레...그런데 우리 고향 표준어는 뭐였지?개똥벌가지?아녀.여름이면 지천으로 출몰하는 반딧불이를 몇 마리씩 잡아서 호박꽃속에 담아서 놀았지라.그 빛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오후 서 너 시 경부터 미로처럼 이어진 대숲 사잇길마다 작가님들이 삼각대를 세우고 포진하기 시작하더군요."그렇게 길을 다 막으면 안됩니다. 지나갈 수 있는 통로는 남겨야죠."배가 풍성하고, 꽁지머리를 한 관리인(?)은 잘 생긴 개와 함께 수시로 순찰을 돌더군요.쪼그려 앉아서 기다린 4시간.스멀스멀 어둠이 대숲으로 밀려오자 여기저기에서 반짝이는 불빛 불빛들 ..."거기 후래쉬 끄세욧""자꾸 앞으로 나가지 마시라구욧"잠깐 이어진 혼란이 가라 앉고 대숲은 정적에 휩싸입니다.나는 잠시 어릴적 추억속으로 빠져듭니다.옆 사람이 조용히 말한다."카메라에서 떨어지세요. 그래야 가까이 옵니다."어둠속에 춤선이 가리워진 현란한 불빛들이 어지럽다.순간, 외쳤다.그래 우리 고향 표준어는 "개똥불"이야.순창, 남원, 임실로 이어진 4일의 여정은 까닭없는 행복감이 내내 스며있었다.개똥불.소박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내 고향 표준어인가. ㅎ***개똥불 사진은 한꺼번에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난무하는 건 아니고요, 셔터를 1분 동안 개방한 컷을 7-12컷 씩 합성한 사진입니다.
출처: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 원문보기 글쓴이: 사처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