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의 서울시 유수율이 흘러온 길-6
급수관 강북은 스테인리스관,강남은 동관으로
아연도강관 추방하자 업계는 외부압력 검찰수사
아연도강관 대체품인 PVC관도 열평창으로 추방
시험부설의 결과 및 신설관 관종 결정
시험 부설했던 동관과 스테인리스관은 시공 단가가 고가로 나타났으나 시공성과 내식성에서 뛰어난 점수를 얻었다. 다만 동관에서 청녹 발생으로 인체에 해롭다는 설이 있었으나 이 당시에는 내식성 점수에만 치중하므로서 그 외의 별다른 단점을 찾지 못해 선택하게 되었다.
이때에 배수본관이나 배수지관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회주철관에 대한 대체관으로 닥타일 주철 관 내부에 시멘트 라이닝관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닥타일 주철관 (DCIP)을 검토 분석한 결과 내식성과 내구성 및 시공성이 월등히 양호해서 바로 선택하려 했으나 84년도부터 특정 업체에서만 생산되는 단일 업체 납품 품목이라는 걸림돌이 되었고 또 다른 주철관 생산 업체로부터 특혜 의혹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어 채택이 불가능 했다. 수년이 지난 후 시장 조사결과 타 업체에서도 생산 납품이 가능하다고 확인된 87년도에서야 드디어 회주철관과 아연도 강관의 사용을 전면 중지시키고 개량사업의 주된 배수관으로는 시멘트 라이닝 닥타일 주철관을 선택하였다,
시험부설 결과에 의거 인입 급수관용으로는 스테인리스관과 동관을 지역별로 나누어 사용토록 결정하고 각각 개량사업의 주된 관으로 채택하여 87년 상반기부터 획기적으로 내식성 자재로 교체 부설하기 시작했다.
87년, 내식성관 전면 교체라는 혁명적 조치에 따라 아연도 강관 전면 사용금지로 인한 강관업계의 반발이 극심했다. 급기야 특혜의혹으로 서울시 관련부서를 고발하고 다방면으로 압박과 뒷조사와 함께 검찰에서까지 압수수색 조사를 실시하였다. 담당 부서에서는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누구하나도 불미스런 결과는 없었으며 오히려 아연도 강관의 사용금지 및 내식성 자재로의 전면 교체 혁명은 성공적인 사업개선이라는 호평속에 아연도강관은 영원히 수도관으로서 결별을 고하게 되었다.
가정인입관 분기부 개선
87년에 혁명적으로 어렵게 내식성 관종을 선정은 하였으나 개량사업 구간의 인입급수관의 분기부는 여전히 재래식 분수전 방법으로 시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로 인해 누수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부분 인입관 분기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정으로 그 당시 시공실태를 설명하면 부끄러울정도로 창피하였다.
.87년 이전까지 사용한 회주철관에서 분기시공은 배수지관과 급수용 본관에서 분수관을 이용하여 인입급수관을 연결하는 공법이었다. 배수지관 본체에 분기공을 만들기 위해 수량이 많은 경우는 전동 드릴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분기공이 소량인 경우 대부분이 배관공이 직접 강철제 일자형 끌로 관체에 적정 분기 지점을 수회 집중적으로 인력을 가해 두드려서 분수관 직경에 맞도록 구멍을 내었다. 여기에 분수관 접합부를 마닐라 산 삼실로 감아서 박킹 처리를 하고 분기공에 두드려 박아서 연결을 하는 것이 당시 주된 시공 방법이었다. 이같은 미천한 시공방법은 시공후 시간이 지나면서 대분분 조금씩 이탈되는 등 접합 부분에서 크고 작은 누수가 발생되었다.
.또 한가지 사례는 소구경(50mm 이하) 아연도 강관에서는 정자관(티)을 사용하여 인입관을 분기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연도 강관의 인입분기는 정자관 시공은 설치품과 재료비가 크게 소요되므로 이를 아끼기 위해 실제 시공 시 감독관의 눈을 피해 사제품인 강판으로 만든 새들 분수전을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경우 고가의 스테인리스 강판 제품이 아닌 일반 강철로 만든 제품이어서 이나마도 오래 못 가서 부식으로 누수가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89년초에 닥타일 주철제품인 새들(Saddle) 분수전과 전용 부단수 천공기를 국내 업체에서 개발한 제품(부덕실업)을 검토하였다. 경쟁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업체에게도 특허제품이 아닌 일반제품으로 조달청 품목으로 등록하도록 하고 경쟁 조건하에서 이를 과감히 선택하게 되었다. 노후관 개량사업 등에 전량 관급으로 사용토록 공개적으로 개량사업 지침에 적용하여 사용토록 하였다.
이로서 가정 인입관 연결부속 자재 개선의 혁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존의 사제 새들(Saddle) 제품 및 회 주철관용 분수관은 전면 사용금지 조치하였다.
이후부터는 공무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특정 업체와 함께 연구 개발하여 해당 업체에서 제품을 생산 후 특허를 받은 경우 그 특허 제품을 채택 사용함과 동시에 그 해당 공무원에게는 근무성적에 가점을 주어 우대하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소블록 급수구역 개념의 유량감시 체계 관망형성 추진
유수율 저조의 주범은 누수량으로서 철저한 누수방지 대책은 유량감시 체계에 의한 누수탐사 방법뿐임을 터득하였다. 노후관 개량사업에 신설관 부설까지 과감히 시행하여 추후 블록 단위 고립으로 유량 조사가 가능토록 관망 형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89년 개량사업 지침에 새롭게 소블록 구축요령을 삽입하여 각 수도사업소에서 시행토록하고, 더욱 철저히 추진하기 위해 관망형성의 기본 원칙인 송수관이나 배수지에서 분기되어 나오는 배수본관을 구분하였다.
배수본관으로부터 소블록 형성의 기반이 되고 유량계측이 가능한 배수지관을 분기하였다. 따라서 각 골목으로 인입관을 연결하는 급수용본관을 분기 하므로서 관망형성 체계가 자연적으로 수립되는 원칙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같은 방식으로 년차별 계획(안)을 수립하여 각 수도사업소에서 상수도 사업본부에 먼저 제출하고 이 제출된 (안)을 본부에서 사전 심사 후 통과 조건으로 각 사업소에 당해 년도 예산배정을 하는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동시에 89년 말 발족한 상수도 본부 산하 조직인 “수도 기술 연구소”에서 유량계측에 따른 누수방지 업무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설치하여 각 사업소 관련 직원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각 사업소별로 소블록의 관망 형성의 필요성과 구축 요령을 조속히 인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효과로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상 유량계측이 가능한 유입부와 블록내에 배수본관 및 지관의 개념으로 급수지역내 소블록 관망 정비계획이 서서히 실현되어 갔다.
가정인입 급수관의 개량범위 개선 (조례 개정)
개량사업 초기에는 급수시설의 책임한계인 택지 경계선(담장선)까지이므로 개량공사 구간의 가정인입관은 담장선 까지만 새로운 신설관으로 교체하고 담장 안의 급수관은 기존관으로 남게되는 장벽이 있었다. 녹물출수의 원인을 완전 해소 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공사를 하게 되는 결과가 되어 민원 발생의 원인을 제고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와같은 불합리한 공사로 인하여 악덕 시공업체에서는 처음부터 가정인입관의 전부를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새로 부설한 급수용 본관이나 배수지관에 연결하므로서 개량사업 목적에 위배되는 사례가 속출하게 되었다.
이 원인은 서울시 수도조례(당시 급수조례) 제8조 제5항 규정에 급수 시설물 소유의 관리 한계를 대지경계선으로 한 것이 그 결과를 낳게 했다. 이 경우 개량 사업구간이라고 하여도 대지내 급수공사는 수용가에서 자부담으로 설치하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례 제 8조 2항을 1988. 8. 2. 자로 조례를 내용을 개정해서 대지 경계선 내부에 설치된 수도계량기 까지는 신관으로 연결하여 노후한 급수관의 개량교체 목적을 완전하게 달성하게 되었다.
이 모든 시행은 유수율 향상을 위한 누수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배급수 노후관 개량사업이 이루어졌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추진 사항은 내식성 자재로 관종 및 급수관 분기부 (새들) 전면 교체 시행과 유량감시 체계 관망인 소블록 형성을 위해 과감히 노후관 개량교체와 신설관 부설을 함께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후관 개량사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배급수 관망형성 정비 사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소블록 정비사업에 힘입어 94년도에 북부수도사업소에서 표본으로 소블록 1개소를 완전 블록을 고립시키고 야간최소유량 측정에 의한 누수탐사를 최초로 시행하였다. 그 결과를 1996년 3월 26일 개최된 “상수도 업무개선 사례 발표회의”에서 야간 최소 유량계측에 의한 정밀 누수탐사 추진내용을 발표하므로서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이같은 실무자자들의 노력속에 상수도 본부가 발족된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목적한 유수율이 향상되지 않았다. (98년 현재 유수율 64.2%,계량계측의 불확실성과 요금징수에 대한 정확도의 불확실성이 유수율향상을 저해시키는 요인도 있었다)
급기야 98년도에는 상수도 본부에서 유수율 대책반을 신설하고 유량측정이 가능한 관망이 형성된 2037개소의 소블록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누수탐사 업무를 실시했다. 외부 용역없이 서울시 자체 직원들이 참여하여 허용누수량 범위까지 누수를 찾아 내기 위해 밤을 새워야 했다. 하수도 내부 탐색과 노면 음청탐사등의 피나는 노력한 끝에 2006년에 비로서 서울시 유수율 90%를 달성하는 효과를 보았다.
전반적으로 산업화와 도시화 집중현상속에 서울시 상수도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시절 상수도도 격변의 격변을 거듭했다.
관로매설부터 불용관처리,관로 품질의 한계로 인해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도 부식과 누수는 여전했던 시절의 암울함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흐름만을 조명한 것이 아니다. 시책개선과 교육환경의 변화,기업인들의 사고전환, 새로운 제품의 개발,조직의 전문화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룩한 그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향후에는 수도용어의 정립과 관과 밸브,유량계,계량기, 블록 시스템구축등 수도행정의 과학화와 전문화등이 좀더 세밀해지고 AI등을 접목한 새로운 실증 실험이 가속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통계의 과학화를 통한 미래시대에 걸맞는 안정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수도행정이 절실하다.
*6회에 걸친 심재영의 ‘서울시 유수율이 흘러온 길’을 마감한다, 그동안 ◄말썽많은 회주철관에서 닥타일주철관으로 교체(24.4.22)◄동관은 기술보다 정치적으로 서울시에 접근(24.4.18)◄
PVC관,아연도강관 파손과 품질위해성으로 전면금지(24.4.7) ◄누수탐사 전문기업을 만들자(24.3.29) ◄ 노후관개량 사업 유수율은 오르지 않고 조직개편으로 업무 일원화(24.3.26)를 연재했다. 인력조직의 비전문화와 기술의 미흡등 실제적인 수도행정의 어려움과 외부적으로는 급격한 도시의 집중화와 산업화에 의한 상수도관의 진화와 개혁적 변화를 읽어갈수 있었다.수도관의 진통과 애환을 담은 ‘서울시 유수율이 흘러온 길’은 서울시 유수율백서에 담겨지지 않은 서울시 상수도본부의 실무자가 겪었던 수도행정의 애환과 고통속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상수도관의 진화를 더듬어보게 한 소중한 체험기이다.
서울시 상수도행정의 관로분야에서 심재영,임동국(급수공사 정액제 실시,상수도본부차장역임),정규영(상하수국장역임),김홍석(상수도본부 차장역임),수도행정에 몸담았다 기업을 운영하는 김원택(새들분수 국산화 성공,부덕실업대표), 김진배(서울시건설안전본부장 역임)등의 활약도 기억해야 할 서울시 상수도의 산 기술전문 책임자들로 모두 소중한 인적자산이었다.
그러나 수도행정의 격동의 기류가 끝나고 안정기에 접어든 현실에서는 기술의 맹장과 용장들이 사라지고 전문성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서울시가 시급히 개선하고 개혁해야 할 제 3의 과제로 남았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심재영 전 서울상수도본부 누수방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