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
강돈묵
어린 날의 추억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문득 되살아난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한없는 늪으로 나를 끌고 간다. 그곳에는 젊은 내 부모님이 계시고, 바짓가랑이 터서 입고 논바닥을 뒤지던 내 어린 시절이 남아 있어서 좋다. 배고파 감나무 밑을 서성이던 보고리 든 점순이의 모습이 있고, 호주머니 터지도록 알밤을 주워 담은 쇠돌이의 흘러내린 바지가 보여서 참 좋다.
농약을 쓰지 않은 논에는 많은 것들이 살고 있었다. 논두렁에 빗대선 감나무에서 도사리 감이 떨어져도 개의치 않고 주어먹어도 되었다. 완전 무 농약의 논에는 미꾸라지, 송사리, 개구리 등이 살았다. 거머리는 발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피를 빨았다. 발목에 붙은 것을 손으로 잡아당겨 겨우 떼어버리고 나면 어느새 또 붙어 있다. 대단한 흡혈귀였다. 손으로 잡아당겨도 미끈거리며 길게 늘어나는 그 모습은 보기에도 징그러웠다.
논바닥에서 자라는 미꾸라지는 힘이 좋았다. 잡으면 그 특유의 점액으로 내 손을 잘 빠져나갔다. 살이 제법 오른 미꾸라지는 우리의 건강식이 되었다. 일 년 내내 고기 한 점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가을 논바닥이 마르면 물꼬 밑을 뒤졌다. 그곳에는 개구리와 송사리가 있었고, 미꾸라지도 있었다. 개구리는 뒷다리를 떼어내어 호박잎에 싸서 구워 먹었다. 송사리는 배를 따서 고추장 풀어 뚝배기에 끓이면 맛이 그만이었다. 골라내진 미꾸라지는 소금 한 주먹 던져 놔두었다가 기력이 다하면, 알 불에 석쇠를 걸치고 그 위에 올려졌다. 미꾸라지가 다 익기를 기다리며 그 앞에서 흘린 침이 얼마이던가.
지금도 나는 들판에 초가 하나 지어놓고, 정원을 꾸미고 사는 것이 꿈이다. 손바닥만 한 정원 하나 마련하여 그곳에 고향의 야생화를 키우고 싶다. 어린 날 내가 즐겨 찾던 고향 뒷산에 올라 야생화를 구해 옮겨오고 싶다. 할미꽃, 엉겅퀴, 우산나물, 고사리, 취나물 모두 구해 심어 놓고 관상할 것이다. 담에는 인동초를 올려 노란색의 꽃도 보고, 그 향에 젖어 어머니도 그릴 것이다.
마당 한가운데엔 연못도 만들어 금붕어도 키우고 싶다. 부용 사이로 노니는 금붕어에게 산소를 주기 위해 물레방아도 걸어야겠다. 냇가에 나가 민물고기도 잡아다가 넣어줄 것이다. 바닥에서는 미꾸라지가 졸고, 돌 틈에서는 가재가 숨 쉬고, 따사로운 봄볕 앞에서는 금붕어가 제 빛깔을 자랑하는 연못을 가지고 싶다.
이른 새벽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몸이 흠뻑 젖어 있다. 그 지독한 거머리에 피를 빨리다가 겨우 헤어났다. 아직 어둠이 짙게 남아 있는 침실에서 꿈을 되살려본다. 짙은 어둠 속을 헤치고 꿈속의 장면들이 생생히 살아난다. 꿈속의 나는 집을 짓고, 꽃동산을 만들고, 연못을 근사하게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연못에 기를 민물고기를 구하러 냇가에 나와 돌 틈을 뒤지고 진흙 속을 더듬고 있었다.
진흙을 뒤지자 살이 오른 미꾸라지가 나왔다. 몸의 길이는 정상이었으나 그 굵기는 보통의 것보다 너덧 배는 되어 내 손 안을 가득 채웠다. 어찌 보면 기형으로 보였다. 몸엔 윤기도 돌고, 입 주변에는 수염도 서너 개씩 있었다. 그러나 그 특유의 점액은 없어 나무대기를 잡은 것 같았다. 어린 날 손에 잡기만 하면 빠져나가던 그 미끈거림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 미꾸라지를 나는 다섯 마리나 잡았다.
더 잡기 위해 진흙을 뒤지다 보니, 미꾸라지는 어느새 거머리처럼 내 종아리에 붙어 있었다. 다섯 마리가 모두 종아리에 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지독한 놈들이었다. 손으로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 발목으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잡아당기니 길게 늘어나기만 한다. 실로 짜 놓은 도장집이 풀리듯 미꾸라지는 당기면 당길수록 길게 늘어났다. 양팔을 펴서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질 않았다. 미꾸라지는 고무줄처럼 늘어나 거머리로 그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미꾸라지로 위장했던 거머리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엄청난 거머리였다. 몸의 길이가 한 발은 되게 늘어나는 지독한 거머리였다. 제 모습을 감추고 앞에 나타나 나를 현혹한 거머리였다.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 거머리와 몸부림을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악몽이었다. 등줄기에 습기가 느껴졌다.
꿈속의 상황에서 빠져나와 깊은 상념에 젖는다. 나의 바람은 분명 이것이 아니다. 농약 쓰지 않고 살던 시절이 그리웠고, 배는 곯아도 법 없이 살던 어린 시절처럼 살고 싶었다. 모두가 순리대로 살고, 가지고 있는 감정 서로 나누며 부대끼며 살고 싶었다. 자연과 벗하며 날이 서는 마음을 다스리려 했다. 그래서 정원에는 고향의 야생화를 심으려 했고, 연못에는 민물고기를 키우려 했다. 그런데 내 연못에는 위장한 가짜만이 우글거린다.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만이 끼어들어 방해만 한다. 살이 올랐던 그 미꾸라지가 어찌 거머리였단 말인가. 근사한 놈이라 내 연못에 놓고 마음 주며 키우려 했는데, 그놈이 위장한 거머리였다니…….
이젠 어느 미꾸라지를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내 자신이 위장한 거머리를 가려내는 능력을 익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날이 올 때까지 막연히 기다린다는 것은 내 삶이 너무 한심하다. 더러 시행착오를 범해도 정원은 꾸며야 하고, 연못은 만들어야 한다. 다만 내 안에서 곰실거리며 일어서는 미꾸라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누르는 일이 더 시급하다. 속과 겉이 다른 몇 마리의 거머리로 인하여 미꾸라지에 대한 나의 인식이 흔들리고, 정원과 연못을 포기해 버린다면 안 될 일이다. 그래도 냇가에는 아직 농약에 병들지 않은 순수한 물고기들이 많을 테니까 그들을 벗하며 살면 될 것이다.
베란다에 나와 밖을 내다본다. 넓게 뻗은 공간으로 나는 달려간다. 그곳에는 냇물이 흐르고, 둠벙이 있고, 들풀이 바람에 허리를 굽혔다가 일어선다. 들풀 사이로 가랑이가 터진 바지를 입고 내 유년시절이 달려간다.